새로운계명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 19,18)는 제2의 계명으로 완결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은 불가분의 것으로서 모든 율법의 절정이며 중심이다(마태 22,35- 40 참고).
두 계명의 단일성
예수께서 첫째가는 계명은 주님이신 하느님을 모든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가는 계명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며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셨다(마르 12,29-31 참고). 그리고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0-20)라고 하심으로써 형제애의 중요성과 두 계명의 단일성을 밝히셨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빌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 4,20-21).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요한 5,2)라고 말하며 두 계명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형제애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이웃사랑을 배웠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사랑을 부어주셨기에 우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루가 6,36 참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그 사랑은 우리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사랑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느님의 업적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고(로마 12,5 참고) 한 하느님의 자녀들이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마태 25,40 참고).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1요한 4,19).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새계명
예수께서 당신을 십자가상의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새 시대가 열렸고, 믿는 이들에게 성령께서 새 마음을 주시고, 새 공동체[교회]가 형성되었으니 새 계명으로 살아야 함은 마땅하다.
우리는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라고 하신 예수님의 유언을 세상 끝나는 날까지 지켜야 한다.
새 계명이라 해서 사랑의 본질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며 사회적 지위나 인격에 관계없이 한 사람의 예외도 두지 않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요구하신다(마태 5,44 참고).
- 타인에게로 다가가는, 자기를 내어주는 적극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온 생애와 사도들의 활동에서 그 적극성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루가 10,25-37)로써 이웃사랑을 폭넓게 해야 함을 강조하셨고,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루가 19,5),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고 하시며 이웃사랑의 적극성을 보이셨고,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내 피라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것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필립 2,17) 하며 적극적인 사랑의 기쁨을 알려 주었다.
- 끝없는 사랑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며,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마태 18,22 참고).
- 이웃 안에서 사랑이신 주님을 발견하는 사랑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지체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주님을 뵙게 된다.
- 이러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9).
사랑의 우월성
하느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에 머무신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2).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의 찬가’에서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전제하고 사랑을 설명한 다음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였다(1고린 13장 참고).
[십계명] 새로운계명 | 수계생활
2006. 10. 26. 오후 6: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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