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남긴 옥중서한

2007. 1. 24. 오전 6:29:26

글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남긴 옥중서한(스물한 번째 서한)
+ 면형무아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서한을 읽기에 앞서, 신부님이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로 서품 받고 입국하신 후,
이듬해 장렬히 순교하시기 까지 신부님 발자취를 잠시 회고해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2년 전인 1845년 10월 강경 황산포나루 나바위에 입국한 김대건 신부님은
서울을 거쳐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용인 땅 은이공소로 소임하면서
은이에서 감격스런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사랑하는 아들신부님 돌아오기를 일구월심 꿈에도 그리던 고 우르술라 어머님도 만나게 됩니다.

이듬해 4월이 되자,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의 명에 따라, 4월8일 은이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를 신자들과 함께 봉헌 하고,
5월 14일 한양 마포나루를 출발하여 연평도 백령도로 뱃길을 향하게 됩니다.
파리 외방전교회로 보내는 주교님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만주 땅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메스트로 신부와 동료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입국 루트를 개척하기 위한 중대한 사명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6월5일 백령도 인근 순위도에서 임무를 수행 하던 중,
신부님은 관헌에게 체포 되어 해주감영으로 압송된 후 6월 19일 한양 포도청으로 이송됩니다.

신부님은 옥중생활 3개월여 100일간 40여회에 걸쳐 혹독한 고문과 무수한 취조를 받으신 후
9월 16일, 한강 새남터 형장에서
만 스물다섯 젊은 나이로 장렬히 순교 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신부님은 순교하시기 전, 어두운 감옥 차디찬 흙바닥에 앉아 주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신부님들과 주교님, 신자들에게 남기는 세 편의 회유문(廻諭文) 육필 서한을 쓰셨는데,
베르뇌, 메스트르, 리브와, 르그레즈와 신부께 쓴 편지가
음력 1846년 6울 8일(양력 7월 30일)자 작성된 ‘열아홉 번째 서한’이고,
양력 8월 26일에 <페레올 주교님께> 편지를 올렸으며,
<교우들에게> 8월말에 쓰신 회유문이
김대건 신부님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인 ‘스물한 번째 서한’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을 소개 하오니,
교회 전례용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21편의 서한이 있는데 우선은 그 마지막 편을 먼저 올립니다.
* 미리내성지 <홈페이지 - 자료실>에 올린 글입니다.
제게 '순교자'를 알게 해주신 순교복자수녀회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2007년 1월 한국순교자영성센터 면형강학회원, 미리내성지 자원봉사자
미리내 성지에서 임성빈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스물한 번째 서한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서한 (옥중에서, 1846년 8월말)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께서 무시지시(無始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 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模像)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爲者)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領洗)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이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效驗)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恩)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得罪)하면 아니 남만 어찌 같으리요.
밭을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추어 밭을 갈고 거름을 넣고, 더위에 신고(辛苦)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 밭 거둘 때에 이르러 곡식이 잘되고 염글면, 마음에 땀낸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흠복(欽服)할 것이오, 곡식이 염글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만 있으면, 주인이 땀낸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 내고들인 공부로써 그 밭을 박대하나니, 이같이 주께서 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降生求贖)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사, 자라고 염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 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염근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義子)로 천국을 누릴 것이요, 만일 염글지 못하였으면 주의 의자(義子)로서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으리라.
우리 사랑하온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로조차 성교회(聖敎會)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예수 승천 후 종도(宗徒) 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러 성교(聖敎) 두루 무수 간난(無數艱難) 중에 자라니, 이제 우리 조선이 성교 들어온 지 50~60년에 여러 번 군난(窘難)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熾盛)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 중을 당하니, 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哀痛之心)이 없으며, 육정(肉情)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교(聖敎)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께서 돌아보신다’ 하고 ‘모르심이 없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듯한 군난이 주명(主命)이 아니면 주상 주벌(主賞主罰)아니랴. 주의 성의(聖意)를 따라오매, 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의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황황(遑遑)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力量)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友愛)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앗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광영(爲主光榮)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여기 있는 자 이십 인은 아직 주은(主恩)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 사람의 가족들을 부디 잊지들 말라.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紙筆)로 다하리. 그친다.
우리는 미구(未久)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희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主祐)을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혼 대사(靈魂大事)를 경영(經營)하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 구령사(事主救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萬萬修治)하여, 성교회 영광을 더으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義子)가 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부감 김 안드레아


* 신부님께서는 이상과 같이 간절한 사랑의 인사를 이 세상에 남기신 후
잠시 옥중에서 남은 힘을 더 모으시어
신자들에게 다음의 하직인사를 추가해 남겨 주셨습니다.


세상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이오, 막비주상주벌(主賞主罰)이라. 고로, 이런 군난도 또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甘受)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大事)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해 더 착실한 목자를 상(賞)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김 신부 사정 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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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옥중서한입니다.
흔히 “김대건 신부가 조선 교우들에게 보낸 마지막 회유문(廻諭文=깨우치게 하여 인도하는 글)”
으로 불리는 이 서한은 김대건 심부님의 ‘21편 서한’ 중에서는 유일하게 한글로 씌여진 것입니다.
현재 그 원본은 유실되었고, 오늘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1885년에 필사된 것으로,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필사본은 1885년 당시 시복조사를 담당하고 있던
뮈텔(Mutel, 민덕효, 후에 조선교구 8대교구장, 대주교) 신부가 명동 대성당에서 발견하여
시복 조사 기록을 담당하고 있던 로베르(Robert, 김보록) 신부에게 필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제1집 : 출처>

신부님의 서간 추신 마지막 부분에
‘이 땅에 착실한 목자를 속히 보내 주십사’고 소망하신 ‘신부님의 간절한 말씀’이 이내 이루어져서,
그 로부터 만 3년 3개월이 지난 1849년 12월, 당신의 동창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꿈에 그리던 조국 땅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7년 동안의 다섯 차례에 걸쳐 국경 입국을 시도한 끝에 성공한 입국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옥중 생활 4개월을 포함하여 사제생활 총 1년 1개월 만에
맑은 순명으로 마침내 치명하셨으니, 일찍 떠나심이 우리에게 아쉬움이 크지만은
그 사목과업을 이으신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이 함께 계셨기에,
우리 교회사에 영원히 빛나는 두 분의 사제 영성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곧,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못다 이루신 사목에 진력 하시어서,
전국 5개도 127개 공소에 땀과 눈물과 끈기로 숲길 새벽이슬에 온 몸을 적시고
한해에도 7천리 길, 열 두해 동안 문경새재 진안리 근방에서 마지막 쓰러지는 날 까지
사목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가난하고 힘없고 연약한 이들이게 '그리스도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라고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면서,
당신의 십자가를 ‘순교의 피’로써 증거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소원이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묻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전능하신 하느님께 자신의 자유를 바치고
하느님의 자유를 받아 누렸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 증거자의,

주님에 대한 한없는 ‘순종과 인내의 영성 ’ ‘따듯한 사랑과 나눔의 영성’
‘하느님과의 일치의 영성’을 마음깊이 간직하고 묵상하면서,
삼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께 지극한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댓글 2

  • 2007년 1월 24일 오전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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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월 25일 오전 11:35

    선생님 감사 합니다. 항상 좋은 자료 수집하여 올려 주시니 저희는 차려준 밥상을 받는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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