솎아주기

2006. 7. 11. 오전 12: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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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내가 글 쓰며 혼자 지내는 산방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텃밭에 심은 채소를 둘러보시더니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십니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해 오신 아버지는 ‘이걸 농사라고 지었느냐?’고 말씀하고 싶으신 듯했습니다.

그러나 감정의 수위를 아주 낮추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밭이 이게 뭐냐. 상추를 솎아 주어야지. 안 솎아 주고 이대로 두면 밑이 썩는다.”

“아무리 뜯어다 먹어도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몰라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게 게으름 탓이란 것을 압니다.

나는 상추, 고추, 파, 감자, 토란이 잘 자라고 있는 게 고마워서

그냥 지켜볼 뿐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선생을 하고 글 쓰는 일만 해 온 제가 농사짓는 법을 언제 제대로 배웠겠습니까.

아버지는 집고 계시던 지팡이를 내려놓고 밭에 들어가 상추를 솎아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같이 밭에 들어가 겨자상추나 치마상추, 적상추를 솎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 상추를 솎아 내고 풀을 뽑아 주고 나자 비로소 밭이 훤하게 밭 모양을 드러내었습니다.

채소들도 훨씬 싱싱한 빛으로 즐거워하는 가뿐한 표정이었습니다.

솎아 낸 상추만으로도 맛있게 점심을 먹고 또 동생들과 그 날 산방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 보따리씩 상추를 안겨 드렸습니다.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못 되어 상추는 다시 밭 가득하게 자랐습니다.

내가 끼니때마다 뜯어 먹어도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나는 산방에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상추를 뜯어 가라고 했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농약도 치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았지만 빗줄기와 햇빛만으로 잘 자란

신선한 상추를 좋아하며 가지고 갔습니다.

그게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끌어안고 있으면 썩어버리는 것을,

이웃에 나누어 주면 나도 즐겁고 그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이 어찌 상추뿐이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내가 끌어안고 있어서 조금씩 낡아가고 부패해 가는 것이 많습니다.

지식도 그렇고 재능도 그렇고 재물도 그렇습니다.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 어느새 다시 그대로 채워져 있는 것은 상추만이 아닙니다.

재물도 똑같습니다.

그게 본래 내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지갑, 내 통장, 내 곳간을 내가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채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일도 자랑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쓰라고 늘 다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7/9일(주일) 주보에서 펌!! 

댓글 2

  • 2006년 7월 11일 오전 3:42

    <img src=http://bbs.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100&maingroup=2&filenm=mapa%5Fillust%5F1134%280%29%2Ejpg><p>어제 한인성당에서도 주보에 실린 도종환 아우구스티노 시인의 글을 올릴려고 했는데, 이심전심이 통하여 올려주심에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묵상해 봅니다.

  • 2006년 7월 11일 오전 8:39

    <center><img src=http://cfs7.planet.daum.net/upload_control/pcp_download.php?fhandle=M3l2a1VAZnM3LnBsYW5ldC5kYXVtLm5ldDovMTEwMDUzMzYvMC8wLmpwZy50aHVtYg==&filename=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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