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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아름다운 한 영혼을 만나 뵙고 무척 부러웠습니다. 비록 극심한 병고로 인해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저는 그분 눈망울에 깃들어 있는 불굴의 신앙과 꺼지지 않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미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눈을 활짝 뜬 그분이었기에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닌 듯 느껴졌습니다. 죽음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 잡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당하고 의연한 그분 신앙 앞에서 나약하고 유아기적 제 신앙이 진정 부끄러웠습니다. 그분의 그 당당함, 거칠 것 없음, 두려움을 모르는 신앙,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분 안에서 저는 성령의 뚜렷한 현존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분의 고통 그 한가운데 분명히 자리 잡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과제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뵙는 일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생활하시는 성령, 우리 인간관계 안에서 살아 숨쉬시는 성령, 이 세상 한가운데 늘 머무시는 성령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성령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고통과 방황, 가난과 비참함으로 점철된 인간조건을 마술사처럼 순식간에 없애주시지 않습니다.
"제발 이 고통 좀 없애 달라"고 하소연하는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예수님 손바닥에 아직도 선연히 남아있는 짙은 상흔을 보여주십니다.
"이 비참함, 이 계속되는 악습의 굴레,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제발 좀 건져 달라"고 울부짖는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예수님 옆구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깊은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만사형통을 약속하시는 해결사이기보다는 십자가 죽음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현존 방식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외적, 일시적, 육체적 기적보다는 참된 회심을 통한 내적 변화, 내적 기적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의 눈을 뜰 것을 요청하십니다.
고통스럽고 비참한 인간 삶의 조건, 그 안에도 성령께서는 항상 현존하시며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심을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살이가 힘겨워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기꺼이 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지나온 제 수도생활을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왜 하필 저입니까? 제가 이렇게 부족하고 나약한데,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세상에 널린 것이 인재들인데… 기본이 잘 갖춰진 사람들이 저리 많은데, 왜 하필 팔삭둥이 같은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그런 제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게는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단다. 결함이 많다 하더라도, 죄가 많다 하더라도, 내게 자주 충실하지 않더라도, 배신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를 선택하는 사람이란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도 다시금 용기를 내어 내게로 다가오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내 사람이고, 영원히 내 곁에 둘 사람이다. 오늘 네 삶이 더없이 비참하다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네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덮어주실 진리의 성령을 네게 보내겠다. 그분으로 인해 네 삶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죄에 물들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진리의 성령'을 보내십니다. 교부들과 성서의 가르침을 종합한다면 성령은 이런 분이십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시는 이정표, 결국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죄인인 우리와 죄인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쇄신시키는 신선한 바람 같은 분이십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위로자,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후원자, 시련 중에 함께 길을 걸어 주는 동반자 같은 분이십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선물로 다가온 이 한 주간, 미풍처럼 조용히, 감미롭게 다가오시는 성령의 움직임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인해 우리의 낡은 인간성이 새로워지고, 세상과 이웃 앞에 새사람으로 떳떳이 다시 서는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퍼 왔습니다.
가브리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