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어르신 임종을 지켜드리고 돌아오는데,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시퍼렇게 굳어져 가던 혀의 모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저분의 혀는 하느님 대전에서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 그때 하느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저분의 혀는 하느님 대전에서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 그때 하느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나도 언젠가는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고 그때 하느님께서 오관으로 지은 죄악들을
조목조목 물어 나가실텐데….'
이런 상념에 잠겨 과연 우리는 입으로, 눈으로, 코로, 손으로, 발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런 상념에 잠겨 과연 우리는 입으로, 눈으로, 코로, 손으로, 발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성찰해 보았다. 우리 혀는 사랑과 따스함이 담긴 온유한 말보다는
분노와 질투의 비꼬는 말을 자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남을 판단하고 단죄했을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 돈과 명예와 학벌을 더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이고
기도하거나 성가를 부를 때는 기운없이 소리를 내다가도 노래방에서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영혼의 창문이라고 하는 우리 눈은 또 어떠했을까. 온유하고 사랑스런 눈길보다 남을 깔보고
영혼의 창문이라고 하는 우리 눈은 또 어떠했을까. 온유하고 사랑스런 눈길보다 남을 깔보고
증오하는 눈길을 더 많이 보냈을 것이며,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보기보다는
십자가 없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을 보기 좋아했을 것이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초라한 것보다 화려하고 현란한 것들을 더 좋아했으며,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인정치 않으면서도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는 캄캄한 밤에도
곧잘 찾아냈을 것이다.
늘 열려 있는 귀는 더했을 것이다. 하느님 소리에 맛들이기보다는 유혹의 소리를
늘 열려 있는 귀는 더했을 것이다. 하느님 소리에 맛들이기보다는 유혹의 소리를
듣는 것이 체질화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충고하는 소리에는 귀를 막으려 하고
정작 막아야 할 달콤하고 그릇된 아부의 소리와 우매한 군중의 소리에는 귀기울였을 것이다.
코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맛있고 고급스런 요리냄새에 코를 벌름거리고
고급 향수에 취하고자 했던 부끄러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두 마음을 가졌던 손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손으로 원수와 악수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두 마음을 가졌던 손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손으로 원수와 악수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증오의 손가락질을 음흉하게 해댔을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보다는 부정한 거래에 손을 더 많이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주일미사까지 빠지면서 세상사에 바쁘게 쫓아다닌 발은 얼마나 또 불쌍할까.
주일미사까지 빠지면서 세상사에 바쁘게 쫓아다닌 발은 얼마나 또 불쌍할까.
우리 발은 하느님 뜻보다는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세상 행사에 더 바쁘게
쫓아다녔을 것이다.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일에는 가까운 거리도 멀게 생각해 가지 않으면서
먼 거리에 있는 소문난 요릿집은 한걸음에 달려가지 않았을까.
언젠가 우리 인생의 드라마도 끝이 날텐데
언젠가 우리 인생의 드라마도 끝이 날텐데
우리는 이 모습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하느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우리는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평화신문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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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은.....
제 자신이 먼저 참회를 하면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노원성당의 모든이들은
"어떤 형제 때문에," "어떤 자매 때문에", "어떤 단체 때문에,"...
이 "~때문에"라는 ..단어를 꼭 없애 버릴수 있는 새로운 한해가 되기를,
일반사회의 어떤 구성요소보다 더 못한 모습을 떨쳐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내탓이오,내탓이오,모두가 저의 잘못 이라 할수있는,
진정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흠없는,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노원성당의 모든이들이 될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김 봉철 가브리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