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에게 당신을 세상에 알리도록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아드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아드님을 믿어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영원한 생명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불신,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해야 할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 집 문 앞에 서시어 결단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믿음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라면 믿음에 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하느님 사랑의 깊이는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끝을 모르는 사랑의 심연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심연에 완전히 뛰어내리려면 용기, 곧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내리는 결단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