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여인과 그리스도

2008. 8. 4. 오후 8:46:03

글자
지혜의 여인과 그리스도
(“The Wisdom Woman and Christ”)
Source: “God’s Word Today, February 2003”
By: Irene Nowell, O.S.B.


잠언, 집회서 그리고 지혜서는 장차 우리가운데에 임하실 보이지 않는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준비 시킨다.

한 놀라운 인물이 잠언서에 처음으로 나타나니, 지혜라고 불리우는 여인이다. 그녀는 엄청난 특권을 주장하며 놀라운 약속을 한다. 그녀는 모든 곳에 있으나, 우리 각자에게 말한다. 이 지혜의 여인은 누구인가?

*** 잠언에 나타난 지혜의 여인

지혜의 여인은 짤막한 두 문장으로 소개된다. 잠언의 첫장(1:20-33)에서, 그녀는 행인들에게 소리치는 거리의 예언자로 묘사가 되어있다. 그녀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공포속에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마음 편히 살고 변을 당할 걱정 없이 평안히 살것이라고(1:33) 말한다. 행복에 관한 말들로 가득찬 나중 부분 (3:13, 18) 에서는 우리는 지혜가 어떤 보물보다도 값지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지혜가 주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3:14-16)! 사실상 지혜는 바로 생명나무인 것이다 (3:18). 이 생명나무는 우리가 먼 옛날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바로 그 나무인 것이다 (창세기, 3:24).

잠언 8장과 9장은 지혜의 여인에 대하여 처음으로 우리에게 상세한 묘사를 해준다. 또다시 그녀는 거리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8:1-3). 그녀는 우리에게 그녀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그녀는 경험과 함께 살고 있다고 선언한다 (8:12). 이것은 놀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혜는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지혜는 우리가 무엇을 하던 필요불가결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뜻은 왕은 지혜를 통하여 나라를 통치하며, 고관또한 지혜를 가지고 지위에 맞는 일을잘 하게 된다는 것이다 (8:15-16). 우리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지혜로서, 선생은 가르치고, 의사는 환자를 돌보며, 요리사는 요리를 하고, 대통령은 나라를 통치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성할 것이다 (8:17-21).

이 부분까지 우리는 지혜가 무엇을 하는가를 배웠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단서는 그녀가 생명나무라는 것 밖에 없다 (3:18). 이제는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하느님의 첫 작품이다, 즉,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그녀는 이미 태어났다 (8:22-23).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지혜는이미 거기에 있었다 (8:24-29). 그녀는 단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조언자이며 창조의 설계사이었다 (8:30)! 30절과 31절에 나오는 아름다운 단어인 “뛰논다 (play)” 는 우리 인간이 지혜의 이야기 중에 어디에 끼어 맞추어 지는가를 말해준다. 지혜의 여인은 하느님의 기쁨이며 그녀는 우리안에서 기뻐한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서 기뻐 뛰놀며 또한 지상에서 뛰논다. 그녀는 하느님과 우리사에에 있는 다리이며, 우리가 기뻐 뛰놀 수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지혜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복을 받는다고 (8:33-34)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지혜를 발견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며, 지혜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것이다 (8:35-36). 그녀를 발견하는 것이 하느님에게 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녀를 놓치면, 길을 잃게되고, 결국 죽음을 만나게 된다.

9장에서, 창조의 설계자이면 하느님에게 가는 다리인 지혜의 여인은 우리를 저녁에 초대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다. 그녀는 집을 짓고 소를 잡고 포도주른 준비하여 저녁상을 차려 놓았다. 그리고는 초대하러 사람들을 보냈다. (9:1-3). 우리는 단지 와서 먹고 마시면 된다 (9:5). 우리가 누구와 같이 먹고, 같은 영양분을 나누는 것은, 바로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와 함께 먹는 것은 그녀의 생명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하느님과 생명을 나누는 지혜가 이제는 우리와도 생명을 나눈다. 생명나무인 지혜는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으로 가득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혜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지혜가 여성으로 인격화된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문법적인 이유가 있으니, 하브리어에서 “지혜”라는 단어는 여성이다. 또한 문학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혜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함으로써 잠언의 주요독자인 젊은 남성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우둔함도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위험하고 유혹하는 존재로 되어있다 (9:13-18). 놀라운 것은 이 지혜의 여인이라는 인물은 단지 잠언내에서 뿐인 아니리 성서의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집회서에 나타난 지혜의 여인

기원저 2세기에, 한 예루사렘의 현자는 지혜에 과한 세가지 묘사를 가지고 책을 만들었다 (집회서1; 24; 51장). 24장에 나오는 중심적인 묘사는 잠언 8장과 9장을 묵상한 것이다. 지혜는 또다시 말을 하지만, 이제 그녀는 하느님의 회의실에 있다 (24:1-2). 그녀는 다시 우리에게 자신은 하느님으로 부터 나온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보다 더 구체적이다. 그녀는 하느님의 입으로 부터 나온다 (24:3), 그러므로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 또는 하느님의 숨결이다. 그녀는 온 천하를 돌아다니지만, 머무를 곳을 찾고 있다 (24:4-7). 하느님의 명령하게, 그녀는 예수살렘의 하느님의 백성사이에 장막을 세우고 머무른다 (24:8-12). 우리는 이미 지혜가 생명나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좋은 향기와 먹을 것을 내는, 이 세상의 모든 유익한 나무는 다 지혜라는 것을 배운다(24:13-17). 그녀는 와서 먹으라고 또다시 소리친다.

집회서의 현자는 이제 가장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당신은 지혜의 여인이 어떻게 우리가운데 살고 있는지 알고 싶운가? 그녀는 가장 높으신 분의 계약, 즉 모세가 우리에게 지키기를 요구한 법에 관한 책이다 (24;22-23). 그녀는 성서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집회서는 지혜에 관한 이미지를 하나 더 보여준다. 그녀는 에덴 동산에서 흘러나와 (창세기 2:11-14), 온 세계에 활력을 주는 생명의 물이다 (24: 25-29). 선생인 현자는 작은 고랑을 만들어 이 넘치는 물로 그의 나무들 (학생들)을 흠뻑 젹서준다. 이 조그만 고랑으로 부터 흐르는 지혜의 물은 현자의 상상을 초월하여 멀리 가는 것이다.

*** 지혜서에 나타난 지혜의 여인

집회서의 현자 일세기 후에, 이집트 알레산드리아의 또 다른 현자가 지혜의 여인에 관한 책을 썼다. 그가 솔로몬의 이름을 빌렸기 때문에, 이 책은 종종 솔로몬의 지혜라고도 불리운다. 그는 지혜에 대한 찬사를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 이제 나는 지혜가 무엇이며 그 기원이 무엇인지를 말하겠다. 내가 당신들에게 감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6:22). 그는 지혜로 이르는 길은 인간의 공통경험을 통한다는 것을 안다 (7:1-6). 그는 또한 지혜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모든 좋은 것이 그녀를 통하여 나온다는 것을 안다 (7:7-12). 그는 지혜를 발견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벗이 된다고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7:14).

히브리어로 쓰여진 잠언이나 집회서와는 달리, 이 현자는 희랍어를 사용했기에, 보다 풍부한 어휘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는 지혜의 여인을 모든 좋은 것의 “어머니” (생산자) 그리고 모든 창조물의 “설계자” (기술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그는 지혜의 여인을 스물한개의 형용사로 묘사한다! 수물한개의 형용사는 많은 숫자일 뿐만 아니라, 스물하나는 완전한 수인 일곱에다 또 다른 완전한 숫자 셋을 곱한 숫자이다. 그가 무엇을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묘사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지혜는 어떤 움직임보다도 더 빠르며, 모든 것을 꽤뚫는다 (7:24). 그녀는 태양이니 별보다 더 아름다우며, 빛보다 더 밝다. 그녀는 만물을 다 잘 다스린다 (7:29-30).

그러나, 현자의 지혜의 여인에 관한 칭송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하느님과 아주 가까운 관계라는 것이다. 지혜는 하느님의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전능하신 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없는 빛이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이며 하느님의 활동력을 비쳐 주는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여 주는 형상이다 (7:25-26). 우리느 어떻게 영광과 영광이 흘러 넘침을 그리고 빛과 빛남을 갈라놓을 수 있는가? 그러나 아직도 찬사는 더 있다. 지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우리를 하느님과 예언자의 친구가 되게 하느 것이 바로 이 지혜이다 (7:27). 현자는 지혜와 친해지면 영원히 살수 있다고 (8:17-18) 알기에, 그녀를 자신이 소유하겠다고 맹세하고 하느님에게 그녀를 보내달라고 기도한다 (9:1-12).

이 지혜의 여인은 누구인가? 현자는 우리에게 실마리를 하나 더 제공한다. 10장은 아담에서 출애굽에 이르는 성서적이 역사의 요약이다. 이 장 전체에서 주인공은 “그녀”이다. 그녀 (지혜의 여인)는 세계 최초의 아버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홀로있는 그를 보해해 주었으며 그가 죄를 지었을 때 구해주었다(10:1). 온 세상이 홍수에 휩쓸렸을 때에 지혜는 한 의인을 보잘 것 없는 나뭇조각 위에 실어서 세상을 구해 주었다 (10:4). 지혜는 한 의인을 가려 내어 하느님의 책망을 받지 않도록 지켜 주었으며 자기 자식에 대한 정마저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복돋아 주었다 (10:5). 그녀는 백성을 압제자의 손에서 구해 내었으니, 놀라운 길에서 그들을 인도하였으며, 낮에는 그들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며, 밤에는 그들의 별빛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백성을 홍해을 건너게 해 주었다 (10:15-18).

이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 아담을 키웠는가? 누가 노아를 인도하였는가? 누가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었는가? 누가 백성을 홍해를 건네 주었으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 하였는가? 우리가 이 완벽한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 그리스도: 하느님의 지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위의 질문에 놀라운 답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은 잠언 8장이나 집회서 24장과 흡사하게 들리는 찬미가로 시작하고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 (요한 1:1,3). 그러나, 여기에는 새로운 계시가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 (요한 1:14). 창조때에 있었고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의 말씀은 확실히 지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육체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오르사도는 이렇게 명확히 이야기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이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고린토 1, 1:23-24). 뒤의 서간은 지혜서 7장의 귀절을 빌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골로사이 1:15-16).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형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가? 지혜, 그녀 자체가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란다. 우리는 지혜가 창조이전에 존재했던, 하느님 일의 첫번째 산물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난 최초의 분이 (골로사이 1:18)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혜는 우리를 하느님의 친구가 되게 한다고 들었지만, 하느님이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키고, 곧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리리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지혜는 경험을 통하여 발견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혜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았다 (필립비 2:6)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하느님의 지혜가 기꺼이 인간의 모든 경험, 죽음까지 취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하느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하느님의 방법은 종종 신비스럽고, 때로는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문학적인 인물로 시작된 지혜의 여인이 하느님이 어떻게 우리와 모든 것을 나누고자 하시는지를 우리에게 계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지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선을 나타내는 형상이면, 하느님의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하느님 영광의 티없는 빛이다.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에, 지혜의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되신 하느님의 우리를 압도하는 사랑을 묘사하는 방법이 되었다. 지혜에 매달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영성 자료실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