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묻어 오는 겨울의 스산한 기운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색에 잠기게 한다.
바람은 그 무엇보다도 많은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따뜻한 봄엔 꽃 향기를 싣고 불어오는 바람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또 어느 곳이든 마음껏 돌아다니는 바람에게서 가슴 뿌듯한 자유를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쓸쓸히 부는 바람은 마음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만든다.
이처럼 바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바람을 소재로 한 시를 읽으며 바람이 지닌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창 밖은 추위로 몸을 한껏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추위는 바람을 타고 기세 좋게 몰려오고, 사람들은 언 손을 녹이며 반갑지 않은 추위에 짜증을 낸다.
하지만 바람이 반드시 추위만을 몰고 오는 것은 아니다. 추위 끝에 불어오는 따뜻한 기운을 가득 머금은 바람은 봄을 재촉하고, 무더운 여름날 시원스레 부는 사람은 짜증스런 더위를 몰아내고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후련해진 몸과 마음은 젊은 태양처럼 빛난다. 이때의 바람은 낡고 찌든 것을 몰아내고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대체로 혹한의 바람은 시련과 고통을, 생쾌한 바람은 생명력의 충일(가득차서 넘침)을 의미하곤 한다.
바람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미풍, 강풍, 폭풍 등은 상황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을 의인화하고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
삶의 환희와 기쁨
산들거리는 미풍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미풍은 조용하고 다정하게 우리 곁을 방문하여 우리 마음에 밝고 따뜻한 사랑을 심어 준다. 꽃 향기까지 가득 담은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南)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김동환 ’산너머 남촌에는’에서
이 시는 경쾌한 3음보의 리듬을 동반하여 봄의 기대와 환희를 노래하였다. 남쪽 산 너머에는 그리운 누군가가 있으니 거기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할까. 바람이 몰고 온 꽃 향기는 이윽고 가슴 속에 간직했던 임에 대한 사랑에 조용히 불을 지핀다. 이처럼 부드러운 미풍은 밝고 따뜻한 정서를 불러일으켜 우리의 가슴을 화사한 환희로 충만하게 한다. 요컨대 바람은 삶의 환희, 아름다움과 직결된다.
날마다 눈을 뜨면
샘물이 고이듯이
화아한 꽃이 피고
시원한 새가 울어
눈과 귀가 늘 잘 트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새로이 보고,
이것은 천지가
교향곡을 울리는
그 장엄한 것에
깊이 연유가 닿아 있을 것이로다
이 햇빛, 이 바람의
꿈같은 흐름이
기가 찰 만큼 기쁠 따름이로다.
-박재삼 ’이 햇빛 이 바람의’
바람은 꽃을 피우고, 기쁨에 들떠 사랑하는 사람마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바람은 창조적이다. 햇빛과 바람이 꿈처럼 흐르니 기가 찰 만큼 기쁘지 않겠는가. 세상은 온통 환희에 넘친다. 이것은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튼튼한 줄기를 얻고/잎은 흔들려서 스스로/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오규원의 ’만물은 흔들리면서’ 에서)면서 바람에 강하게 흔들리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생명력을 감지하는 삶의 욕망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해변의 묘지) 고 노래했던 그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