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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 7. 오전 1:12:23

글자

입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환상이란 삶의 도피이며 정면대결에의 회피라는 생각은 좁은 편견의 오류일 뿐이다.

삶과 정면대결하여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들은 모두 어둡고 습습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추정되는, 환상(幻想) 또는 허상(虛想)에서 비롯되어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양식(糧食)이 비롯되는 곳은 환상이다.

......................

 

기형도의 소설

’환상일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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