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러야할까..

2002. 1. 12. 오후 8:00:46

글자

지방도로나 국도를 운전하다보면 밤중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나 개, 혹은 옆의 산길에서 튀어나온 청솔모를 많이 보게된다. 이제는 더이상 살아있는 무엇도아닌 그 덩어리들이 그렇게 길바닥에 퍼져있은지 오랜시간이 지났다면 체내에서 빠져나온 피도 다 마르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길에 그냥 무언가 묻은듯한 검은 자국만이 남게 되지만 하루전날이나 혹은 몇시간전에 운명을 달리한 덩어리들이라면 (물론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러한 시체를 피해가긴하지만) 차바퀴가 밟고 지나갈때 무언가 터지는듯한, 그리고 뼈가 부서지는듯한 우드득한 느낌이 바퀴, 시트, 핸들을 통해 내 중추신경으로 전해져 온몸에 소름이 돋을때가 있다.

그 덩어리들도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단순히 쓰레기통을 얼쩡거렸든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핥았든...) 생명을 가지고 자유의지에 의해 움직였을 하느님의 피조물이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우겨댔던 사람들도 결국 죽고나면 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덩어리, 한줌의 재로밖에는 남지 않지않는가....

 

중학교때 내가 한달에 읽던 잡지는 총 여덟권이었다. 자동차 잡지 두권, 프라모델 잡지 한권, rc카 잡지 한권, 군사 정보잡지 한권, 항공기 잡지 한권, 에니메이션 잡지 한권, 만화잡지 한권.  물론 그 많은 책을 다 내가 사지는 않았다. 그당시 나하고 진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처럼 잡다한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함께 반반씩 나눠서 책들을 샀고 한친구는 그저 만화책에만 관심이 있어서 책이라곤 만화잡지 하나하고 간간히 나오는 슬램덩크하고 붉은매만 사던 친구였다.

우리는 사는곳은 각기 달랐지만 등교할때 함께 만나서 학교로 향했고 삼년간 같은반이었던적은 딱 한번이었지만 늘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었고 학교가 끝나면 함께 버스를 타러갔다. 가다가 마음이 맞고 돈이 되면 같이 떡볶이도 먹고 오락실도 갔었고...(물론 셋중 한명이라도 시간이 없어서 안되면 나머지 둘도 안갔다.그땐 그게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중 나하고 잡지를 나눠사던 친구는 집은 달랐지만 우리하고 같이가기위해 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그 폭을 점차 넓혀가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rc카에 대해 알려줬고 난 그 친구에게 프라모델을 알려줬다. 우린 함께 모터쇼를 보러갔고, 함께 카메라 하나만 들고 외제 자동차 중고상을 해맸고, 함께 원하는 기사가 실린 예날 잡지를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뒤졌다. 물론 그때 나머지 친구하나도 자신은 전혀 재미없면서도 우리와 함께 움직이면서 즐거운척을 해줬다.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가끔 한번씩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각자의 진로를 생각할 나이가 됐을때 잡지를 나눠사던 그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림을 잘 그리던 그 친구는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어했는데(그는 람보르기니의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 라는 사람을 특히 존경했다.) 건축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뒤를 이어 건축학과에 진학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짧은 지식을 동원해 여차저차하니 아버지 뜻을 따르는게 좋겠다는 내 의견을 전했고 얼마후 그 친구는 서울에있는 어떤 대학의 건축과에 진학을 했다.

나역시 그 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아돌프 히틀러라는 책을 보고나서 잠수함설계로 진로를 결정했고 조산해양공학과로 진학을 했으니만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의 짧지만 중요했던 청소년기의 인생에 얽혀들었다고 할수있겠다.

 

나보다 삼개월 먼저 군대에 간 그 친구는 훈련소를 거쳐 나와 같은 운전병으로 자대에 갔고 내가 입대하기 얼마전 짚차를 몰게됐다는 편지를 받았었다.

그리고 틀어진 휴가 날짜로 입대후 한번도 그 친구를 만날수 없었다. 가끔 부대에서 편지나 주고 받곤했었다.

그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아마도 그 친구 군대가기 얼마전 그친구와 나, 그리고 중학교때의 다른 한친구와 셋이서 술을 퍼마셨을것이다.

이번 휴가를 나오기얼마전 나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군대를 면제받은 다른 한친구에게서 먼저 입대했던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12월초쯤에...운행을 나갔다가 눈길에 미끌어졌다고. 같이 타고 있던 중령은 살았지만 그 친구는 죽었다고. 나에게 얘기를 해준 그친구는 왜 저세상으로 갔다라던지, 혹은 병원으로 갔지만 눈을 못떴다는 표현을 놔두고......죽었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썼던걸까.

죽었다. 그렇게 그친구는 갔다. 그리고 그친구의 죽음은 사고사례 전파를 통해 여러 부대로 알려졌다. "육군 중령을 중태에 빠뜨렸으니 죽어마땅하지."라는 전달자의 개인적 견해가 섞일수도 있었겠다.

그래. 육군 중령하나를 만드는데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니 그 친구는 죽었어도 길가에 누워는 고양이였던, 개였던, 청솔모였던 덩어리들보다도 못한놈이 될터이다.

 

죽음은 우리가 태어난것처럼 우리의 뜻이 아니다. 사람하나가 나고 죽는건 순전히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뜻일테지. 나역시 신앙 생활을 하는 가톨릭신자이다. 매주 주말 주일미사 참례를 하고 영성체를 모시고 때가 되면 고해성사를 한다. 따라서 그 친구의 어머님처럼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신을 원망할수 없을테니까.....

 

시간이 흐르면 길위의 덩어리에서 피가 마르고 그 덩어리마저 가루가 되어 결국 자국조차 없어지는것처럼 마음속의 원망도, 그 친구를 향한 그리움도 시간이 흐르면 다 잊혀지게 될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기억의 일부를 하나씩하나씩 지워 나가야하는 망각의 동물이니까....근데.....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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