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전대미문의 소식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구걸하시고, 인간의 응답이 없을 때 절대자 하느님께서 완전히 무기력해진다는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도록 자유를 선물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분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하느님도 우리의 자유를 강요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동적이기까지 한 사랑의 무력함....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등을 돌리는 우리들이 강요나 간계로써가 아니라 자유롭게 당신 사랑에 응답하게 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다. 하느님 사랑은 언제까지고 기다리신다. 하지만 하느님은 묵묵부답인 우리의 사랑때문에 괴로우시다. 우리가 체험을 통해 알 듯이 응답이 없는 사랑은 늘 괴롭다.
왜 선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당하시도록 내버려두시는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이 불의의 역사 안에 뛰어들지 않고 뒷전에서 가만히 계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며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왜 하느님은 그토록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자유없는 사랑은 생명없는 쇠붙이와 다름없다. 이 자유 앞에 하느님은 불안해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판관"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엔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신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그 진리를 잊어버리고 왜곡할 위험을 늘 가지고 있음을 내다보고 있다.
어찌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나? 그랬다면 그분이 정말 하느님이심을 결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해 "대심판관"에서 추기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대(예수님)는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기적을 통해 인류를 노예로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고, 기적의 신앙이 아니라 자유로운 믿음을 원했기 때문입나다. 그대는 노예로서 황홀감을 맛보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사랑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유의 남용과 그것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고통스럽고 무모한 모험에 뛰어들 만큼 사랑에 큰 가치를 두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십자가로 그 대가를 지불하셨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 친히 개입하시어 사랑의 일을 하고 계심을 우리가 머리로써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게 되기를 그저 기다리실 뿐이다.
-요하네스 브란첸 "고통이라는 걸림돌"에서
사순절이 거의 다 지나갔어요. 사순절 동안 결심은 많았는데 많이 못지킨것 같아요. 예수님과 새로 시작하는게 소원이었는데...
부활절 맞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기도하며 간구해야 할거 같아요.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마지막 기도도 들어주셨잖아요. 우리 모두 예수님 속옷 잡고 매달려요~ ㅡㅡ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