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오랬만에 글을 쓰는군요. 요한복음을 공부하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좀 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종철 삼가 짓다 http://cafe.naver.com/kangjongchul (탈공산방) 2007. 08. 15
요한복음(1.1-1.18) 새 해설
글의 순서
1. 기존 번역 (가톨릭판 ‘성경’ )
2. 나의 새로운 풀이
3. 새로운 풀이에 대한 해설
4. 새롭게 풀이하게 된 연유
5. 보론
1. 기존번역 (가톨릭판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8절까지)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2. 나의 새로운 풀이(성경 원문을 직역한 것이 아닙니다.)
1. 먼저 처음에, 말(계시)이 있었다. 이 말은 처음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우리는 아무도 하느님을 본적이 없는 고로 이 말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알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말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다.
2. 예수는 인자(人子)의 모습으로,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 하느님의 말을 모든 이에게 전 한 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말(계시)이요, 그래서 하느님과 같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3. 바로 이런 예수의 말로 세상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낫고(규정되었고) 이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4. 그래서 하느님의 말을 바로 전한 예수의 말로 인해, 만물이 새 생명을 얻었고, 이로서 사람들은 세상을 새로 밝게 볼 수 있게 되었다.
5. 그러나 예수가 이렇게 밝게 보여주었으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은 나 혼자(요한복음 저자)만의 말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이미 증언한 바이다. -그 증언 내용이 바로 6, 7, 8, 9, 10, 11절까지 반복적으로 다시 이어지는데, 이는 요한복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요한의 이름을 빌어 다시 확인한 것이다. 즉, 예수 당시 최고의 선지자인 요한의 권위를 빌어 예수의 위치를 확인하는 저자의 논지를 다진 것이다.
12. 예수는 당신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었다.
13. 이 말은 애초에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 새롭게 깨달아서 그리되는 것이니 하느님에게서 새로 난 것이라 하겠다.
14. 우리는 예수가 인간처럼 죽은 줄 알았으나 부활하는 영광을 보았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15. 16. 그래서 요한도 그리 말한 것이다.
17. 그동안 하지 말라는 구속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세상을 새로 볼 수 있는 은총과 진리는 예수를 통하여 주어졌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예수를 보니 그가 바로 하느님의 계시(말씀)이 분명한지라, 우리는 그를 통해 하느님을 볼 수 있었다.
3. 새로운 풀이에 대한 해설
자,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8절까지 저의 새로운 시각으로 풀이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풀이에 대해 자세히 해설을 하겠습니다.
기존의 기독교 각 교파와 신학자들의 번역과 풀이에 대한 내용과 내가 성경을 새롭게 풀이하게 된 내력은 다음 4장과 5장 보론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나의 풀이에 대한 해설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세상만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아니, 다시 쉽게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세상 사물을 알게 되었는가. 또, 돌려 말하면 세상 사물을 처음 어떻게 인식하는가. 처음 본 물건이나 사물, 더 나아가 우리 생각 등을 어떻게 머릿속에 정리하고 수용하는가. 이 말이 헷갈리면 아기가 처음 태어나 사물을 인식하고 점차 자라나 무언가를 요구하고 욕구를 밝힐 때 어떻게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도 되겠다. 아니면 아주 먼 곳으로 가서 처음 보는 풀이나 동물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우리 생각에 담아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무엇이냐. 이러이러하게 생겼고, 먹어보니 이런 맛도 나고, 또 저렇게도 보이니, 이제 이것을 무어라고 말하자.’ 즉, 이름을 붙이자.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의 모양이나 모습을 말해주고 다음에 말할 때 먼저 말했던 그것의 이름을 말해서 서로 간에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만약 여기서 그것에 대한 명칭에 대해 서로 가르키는 대상이나 의미하는 바가 다르면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 서로 상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상통하기 위해 외국어도 배우는 것이다.
말이 안통하면 서로 통할 수 없고 어떤 물건이나 대상이 있고 생각이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매일반이다. 이는 옛날 원시인들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밖의 대상이나 안의 생각들을 말로 하나하나 만들어 간 것이다. 일종의 창조과정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어떤 사물에 어떤 뜻으로 이름을 붙였으나 나중에 그것의 새로운 의미와 쓰임새를 더 알게 되면 뜻을 추가하거나 이름을 더하기도 한다.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자, 그래서 인간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에 이름도 붙이고 생각에도 뜻을 새겨 말로서 서로 의미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人智)도 발달하고 세상은 인간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의 대상을 생각해 보자. 바로 ‘신’이라는 대상을, 그러면 과연 이 ‘신’도 (하느님이라고 해도 좋고, 하나님이라고 해도 좋고, 알라라고 해도 좋다. 아무튼 인간이 ‘신’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말이다.) 신이 과연 인간이 다른 대상처럼 이름을 지어 뜻을 새겨 서로 의미를 주고받는 대상인가. 여기서 요한복음 저자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포한다.
아니다! 신은 인간이 인간들의 죽음을 보고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자연의 거침을 보고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스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나타났느냐. 바로 말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계시’라고 한다. 비록 인간이 세상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새겼지만 그 이전에 인간에 의미를 새기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인간보다 먼저 있는, 인간에 선재(先在)한 신이다. 이 내용이 바로 요한복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한복음 1장 처음의 의미이다.
이것은 말로 인간에 전해진 것이며 바로 이 말을 계시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이 계시가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졌다. 이 선택받은 자를 선지자라 한다. (만약 이글을 읽는 당신이 계시를 받는 다면 한국말로 주어질 것이고, 당시 유대 족속들에게는 그들의 말로 주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이 생물들이, 분명 선택받은 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을 듣지 않고 선지자를 의심하거나 아니면 제멋대로 그 계시의 뜻을 왜곡하여 왔다. 그 사실은 구약에 보면 매우 잘 나와 있다. 구약은 바로 인간들이, 특히 유대족속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았으며 그래서 어떤 벌을 받았는가를 기록한 문서이다.
그래서 보다 못한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바로 드러날 수 있도록,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하느님의 말씀, 계시를 보냈으니 이 이가 바로 예수라, 하는 것이 바로 요한복음 저자가 요한복음 1장에서 선포하는 내용이다.
이런 살아있는 인자의 모습으로 계시를 현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더구나 유대족속들은 그를 의심했으며, 살아있는 하느님의 계시를 십자가에 매단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저자인 내말만이 아니고 예수 당시 선지자이고 가장 권위있는 자인 세례 요한이 한 말이다, 하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과거 낡은 율법에 묶여 있는 만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구습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새롭게 해석했으며, 이를 선포하는 중에 의심하는 자들을 위해 일부 이적도 보여주었다. 이렇듯 만물에 새로운 생명을 지어주고 인간들에게 만물을 밝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인간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지라. 그래서 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예수가 한 말(하느님의 계시)를 바로 적어 사해인간에 제대로 알리고자 한다. 아마 이것이 요한복음 필자의 전체 복음서 집필 의도일 것이다.
11절부터 18절까지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풀이만 보아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아주 소략히 성경 중의 에센스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1장 초입부분을 뜻풀이하고 해석했습니다. 다음 장에서 기존 기독교의 제 파의 해석과 일부 성경학자들의 해석을 일별하고 왜 이들이 요한복음 초입을 이해하기 쉽고 바르게 해설할 수 없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로서 기본적인 서술은 마쳤습니다. 과연 누구의 해설이 더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바로 와 닫는가 하는 평가는 이제 읽으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 성경은 그 뜻을 새기기에 어렵지 않을 뿐더러 어려워서도 안 됩니다. 기본적인 의무교육만 받은 이들도 알기 쉽게 쓰여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신학교나, 신학대학을 나온 목회자나 박사학위를 주렁주렁 걸친 이들의 어려운 해석을 통해서만 그 뜻이 분명히 들어나는 그런 이상한 책이 아닙니다. 예수 활동시의 제자들도 태반이 글을 몰랐고 당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거의 배움과는 거리가 먼 무지렁이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모두 예수의 말을 듣고 잘 이해했으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이들이 성경을 어려워하고 잘 모르는 것은, 또 이를 쉽게 바로 알리지 않은 것은 하느님과 예수를 독점하고 이용하여 제 일파, 제 한 몸 이득을 보려는 자들과 게으른 성직자들과 어리석은 학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