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2지구 복음화위원회 위원교육이 4/13 ~ 7월까지 진행되었는데 15구역장 정장영 요셉형님과
참석했습니다.교육 내용이 너무 좋아 같이 나누기 위해 간략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이번주는 복음화에 대해 다음주는 소공동체에 관해 다다음주는 복음나누기7단계입니다.
강의는 지금동 주임신부님께서 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교회를 구하다 ㅡ이 시대의 예언자 교황 요한23세(1958~1963)
라틴어 격언처럼 "교회는 종말까지 개혁을 필요로 하다"했으나 역사안에서 많이 변질되고 중세시기
성직자들이 권위주의로 물들면서 봉사자가 아니라 대접받는 권력자가 되었다.
1900년대초....가톨릭교회는 늙고 병들어 있었다.노쇠한 가톨릭교회.....
시대적으로 근대가 끝나고 현대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변화되는 세상앞에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랐는데 교황청의 보수적인 고위성직자들은 '옛날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확고하게 지키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함에 따라 개혁적인 신학자들이 쇄신과 개혁을
요구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이에 많은 사람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시기에 1958년,비오12세(1939~1958)의 뒤를 이어 늘 유머와 웃음이 풍부하고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같던 론깔리추기경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요한
23세였다.
이 당시에만 해도 교황에 당선되면 바티칸과 라떼란성당,그리고 휴양지인 까스텔깐돌포에만 머물러 있어야한다는 전통에 따라 교황은 '바티칸의 포로'라고 불리었다.
전임 교황들이 주로 귀족출신인데 반해 가난한 농부집안 출신인 교황 23세는서민적이었고 개방적이었으며 교황좌에 착좌한 해 병원에 가 어린이 환자와 성탄을 보냈고 한 교도소에 방문하여 죄수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이때 '여러분들이 올 수 없었기에 제가 왔습니다'하며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교황은 늘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들고,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하지 마라'는 말로 좌우명을 삼았다.
또한 항상 본인에게 '안젤로야,너를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일기장에 쓰곤
했다.
교회의 정치 무대에서 성공할 중요한 연줄도,강력한 후원자도 없었으므로 당시 여러 파벌이
고령이라는 이유로 절충했던 대안 후보였으나 세상에 대한 '방어정책'을 적극적인 '적응 정책'으로
완전히 바꿔 교회사에 영원히 빛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교황직에 오른 후에도 '교회가 현대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1963년 6월3일 요한23세는 제2차 회기를 맞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스스로 낮추어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 시대의 예언자 요한 23세는 2000년9월3일 복자품에
올랐다.'착하신 교황 요한'이 그의 별칭이 되었다.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무덤에 누워계 시는데 지금도 교황님들 가운데 인기 1위이며 지난 2000년
대희년때 석관을 열었더니 시신이 부패하지 않아 사람들이 놀랐고 1년동안 순례객들이 참배했다.
우리 이 다음에 구역장 모임을 성지 순례하면서 꼭 인사드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읽어 주셨서 감사합니다.
교황 요한 23세
2012. 4. 16. 오후 9:40:11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