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고을에 앵베르 주교가 성당 터를 닦아 놓았다는 구전 속의 교우촌
백학은 현 지명으로는 화성군 비봉면 쌍학3리에 위치한 곳이며, 태행산과 삼봉산 기슭에 형성된 마을로 교우촌 형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구전과 흔적으로 보아 1800년대 초반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생존한 이들의 증언 및 기타 문서 자료를 토대로 구체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시기 혹은 전성기는 대략 1800년대 후반으로 보는 주장이 우세하다.
태행산 줄기와 삼봉산 줄기가 끝나는 곳,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에 세워진 마을 벌말(쌍학1리)과 배터가 있었던 정주개, 갯벌이었던 개무동에서 백학 교우촌까지는 개천길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길을 걸어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그래서 백학 교우촌은 깊은 산골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을 입구 동네가 개무동이고, 그곳에 현 공소 건물이 있다. 그 위로 동학동, 상동학동, 그위 태행산 바로 밑 옛 공소가 있던 지역(쌍학3리 835)을 점마을이라 부른다. 지금은 산 밑 동네가 없어지고 약 500m 정도 내려와야 마을이 있다. 향토사가 고(故) 한종오 씨의 1983년도 발표문 《남양 지역의 교우촌 형성과 치명 순교 성지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백학 상촌 태행산 밑 기슭에 앵베르(Imbert, 范世亨, 1796~1839, 라우렌시오) 주교가 성당을 지으려고 터를 닦아 놓았다고 전해오는 성당터가 있는데, 백학 교우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태행산 기슭 위로 약 200m 오르면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교회 초기와 박해 시대에 남양 지역 내 백학 교우촌에 대한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현재 태행산 기슭에 400평의 평지가 있는 점 외에도 1838년 11월 앵베르 주교의 서한에, 백학에서 가까운 “갓등이 공소를 사목 방문했음”을 말해주는 기록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서울에서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백학 교우촌을 앵베르 주교가 공소 순방 길에 방문했을 가능성도 추론된다. 그러나 이는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가설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그곳에는 십자가와 제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백학에 관한 기록은 종교 자유의 여명기인 1885년경, 경기도 사목을 담당한 푸아넬(Poisnel, 朴道行, 1855~1925, 빅토르) 신부가 1886년에 신자 수를 파악 기록한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서한에 1886년에 61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한불 조약이 비준된 1887년에는 60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된 것이 첫 번째이다.
수원에서 서쪽 남양쪽으로 12km 정도, 어천(漁川)을 지나 새마을 공장(대우실업)이 있는 '벌말'에서 하차, 남동쪽으로 개무동을 향하면 마을 입구에 닿는다. 산골이 길고 넓어 마치 작은 분지 같고, 낮은 산 사이로 흐르는 개천 좌우로 작은 동네들이 있다. 개천 사이로 동쪽을 바라보면 먼 산이 보이는데, 그 산이 태행산(太行山)이고 왼쪽 높은 봉우리가 삼봉산(三鳳山)이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백학은 현 지명으로는 화성군 비봉면 쌍학3리에 위치한 곳이며, 태행산과 삼봉산 기슭에 형성된 마을로 교우촌 형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구전과 흔적으로 보아 1800년대 초반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생존한 이들의 증언 및 기타 문서 자료를 토대로 구체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시기 혹은 전성기는 대략 1800년대 후반으로 보는 주장이 우세하다.

태행산 줄기와 삼봉산 줄기가 끝나는 곳,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에 세워진 마을 벌말(쌍학1리)과 배터가 있었던 정주개, 갯벌이었던 개무동에서 백학 교우촌까지는 개천길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길을 걸어서 약 40분이 소요된다. 그래서 백학 교우촌은 깊은 산골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을 입구 동네가 개무동이고, 그곳에 현 공소 건물이 있다. 그 위로 동학동, 상동학동, 그위 태행산 바로 밑 옛 공소가 있던 지역(쌍학3리 835)을 점마을이라 부른다. 지금은 산 밑 동네가 없어지고 약 500m 정도 내려와야 마을이 있다. 향토사가 고(故) 한종오 씨의 1983년도 발표문 《남양 지역의 교우촌 형성과 치명 순교 성지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백학 상촌 태행산 밑 기슭에 앵베르(Imbert, 范世亨, 1796~1839, 라우렌시오) 주교가 성당을 지으려고 터를 닦아 놓았다고 전해오는 성당터가 있는데, 백학 교우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태행산 기슭 위로 약 200m 오르면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교회 초기와 박해 시대에 남양 지역 내 백학 교우촌에 대한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현재 태행산 기슭에 400평의 평지가 있는 점 외에도 1838년 11월 앵베르 주교의 서한에, 백학에서 가까운 “갓등이 공소를 사목 방문했음”을 말해주는 기록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서울에서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백학 교우촌을 앵베르 주교가 공소 순방 길에 방문했을 가능성도 추론된다. 그러나 이는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가설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그곳에는 십자가와 제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백학에 관한 기록은 종교 자유의 여명기인 1885년경, 경기도 사목을 담당한 푸아넬(Poisnel, 朴道行, 1855~1925, 빅토르) 신부가 1886년에 신자 수를 파악 기록한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서한에 1886년에 61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한불 조약이 비준된 1887년에는 60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된 것이 첫 번째이다.
수원에서 서쪽 남양쪽으로 12km 정도, 어천(漁川)을 지나 새마을 공장(대우실업)이 있는 '벌말'에서 하차, 남동쪽으로 개무동을 향하면 마을 입구에 닿는다. 산골이 길고 넓어 마치 작은 분지 같고, 낮은 산 사이로 흐르는 개천 좌우로 작은 동네들이 있다. 개천 사이로 동쪽을 바라보면 먼 산이 보이는데, 그 산이 태행산(太行山)이고 왼쪽 높은 봉우리가 삼봉산(三鳳山)이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 소재지 | [개무동 공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4리 [점말]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3리 |
| 지리좌표 | [개무동 공소] 북위 37°14′31.1″ 동경 126°54′08.3″ [점말 십자가 앞] 북위 37°13′17.7″ 동경 126°53′90.4″ |
| 연락처 | 비봉 성당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272-2 ) (031) 355-2254 |
| 홈페이지 | 없음 |
| 미사시간 | [비봉 성당] 평일 : (월금) 오전 6:00 (화목) 오후 7:30 (수) 오전 10:00 (토) 오후 4:00, 7:30 (특전) 주일 : 오전 11:00 |
| 교통편 | [승용차]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나와 동쪽으로 좌회전하여 쌍학리로 약 10분 직진한 후 왼쪽 다리 건너 개무동 공소가 있고, 교우촌이 있던 점말은 계속 직진하여 마을 끝 산 중턱에 십자가의 길과 대형 십자가를 설치한 곳이다. |
『조선지지자료』에는 점촌(店村)인 졈말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박해를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생계를 위해 질그릇을 구운 데서 도자기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 이름에 ‘점’자가 들어간 동네는 거의 옹기나 그릇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