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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 ''시복시성을 위한 핵심주제'' 심포지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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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주교)는 9월 28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하느님의 종' 124위와 최양업 신부 시복 추진에 이은 2차 시복시성 추진 과정에서 '하느님의 종'이 될 수 있을지 검증 대상으로 떠오른 인물들을 재조명했다. 심포지엄 주제는 '시복을 위한 핵심 주제 : 반역ㆍ병사(病死)ㆍ살인ㆍ행방불명'으로,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과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 안중근(토마스, 1879~1910), 6ㆍ25전쟁 전후 납치된 성직자와 신자들이 그 대상이 됐다. 과연 오늘날 교회 안팎에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황사영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지,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순교자라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증거자로 봐야 하는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의 시복시성은 가능한지, 전쟁 중 행불자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이 이뤄질 수 있을지 꼼꼼히 살피고 시복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반역
그렇다면 이렇게 큰 논란을 낳은 황사영을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 윤민구 신부는 '황사영의 백서와 시복 추진에 대한 검토'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우선 대박 요청에 대해 면밀히 살폈다. 황사영 백서 사건 이전, 또는 그 이후에도 조선교회에서 계속되는 대박 요청은 단순히 서양의 큰 배나 선교사 영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윤 신부의 주장이다. 윤 신부는 "조선 신자들이 영입하려고 한 것은 단순히 선교사가 아니라 중국에 처음 천주교가 전파됐을 때 그랬듯이 마테오 리치(1552~1610)와 같은 성격의 선교사들, 곧 과학이나 예술에 능한 선교사들이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직접 배를 타고 조선으로 오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럴 경우 그들이 조선에 와서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박해를 누그러뜨리고 왕이 조선에서 천주교를 믿는 것을 허락해 줄지도 모른다는 요청이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조선 신자들의 대박 요청은 황사영의 대박 요청과 그 성격이나 목적이 판이하게 다르고, 황사영의 대박 요청은 신유박해(1801년)로 분별력을 잃고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황사영에게 내려진 죄명은 대역모반죄일뿐 아니라 처형 방법도 능지처참형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정치적 이유로 처형했을 가능성이 크고 순교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주교구 배론성지 관리소장 여진천 신부는 "교회의 전통적 순교 관점에서 볼 때, 역률이나 모반부도죄로 사형을 당한 103위 성인들의 죽음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신앙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박해자들은 황사영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을 정치적인 이유를 구실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사
우선 브뤼기에르 주교의 죽음을 놓고 의학자나 역사학자가 보면 '병사', 신앙인 관점으로 보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고 믿으며 죽음을 맞았기에 '선종', 직무와 그 수행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순직', 그리스도교의 정점인 신앙과 교회의 진리를 증거하고 드러내고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관점으로 본다면 '증거', 박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순교'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죽음은 병사와 선종, 순직, 증거, 순교라고 모두 칭할 수 있고 역사적, 교회법적, 사목적으로 모두 사용가능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고 최 신부는 밝혔다. 최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증거자로 시복시성을 추진하면 박해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순교자적 삶이나 순교정신으로 목자직을 수행한 순직자적 삶과 덕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순교자로 시복시성을 추진하면 현재까지 그의 죽음을 순교로 보지 않았다는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과정에 있는 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브뤼기에르 주교의 죽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최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순교자로서 시복시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며 "왜냐하면 지금까지 브뤼기에르 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보지 못한 것은 우리가 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나 연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논평자로 나선 서울 홍은동본당 주임 한영만 신부는 "엄밀하게 보아 브뤼기에르 주교의 죽음은 과로사로 보인다"며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심, 피곤과 박해를 무릅쓴 조선 입국시도 등은 그가 신앙의 증거자로서 훌륭한 생활을 했고 모범적 생활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증거자로서 시복시성절차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살인
황 박사도 안중근의 이토 저격 살해가 사람을 죽인 측면에서 살인행위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으로는 명백히 살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살인은 이기적이거나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하느님 정의에 수용 가능한 살인이라고 본다. 이른바 '의로운 전쟁(Just War) 이론'으로, 잔 다르크 사건에서 선례를 찾았다. 안중근에 대한 하느님의 종 선정 여부는 교회가 판단해야 할 사안이지만, 안중근의 이토 저격은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느님의 의를 증거한 행위의 시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황 박사는 강조했다.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이동호(가톨릭교리신학원 부원장) 신부는 윤리신학적으로 직접 무력행위를 포함해 '살인죄마저 용인'되는 정당방위 또는 의로운 전쟁의 조건을 갖추려면 △당시 합법적 권위가 존재하고 있었는지 △그 공동체가 불의한 공격을 실제로 받았는지 △제거된 인명이 공격의 직접 책임자이거나 관련자였는지 △개인적 이해나 증오 관계는 아닌지 △무력사용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거사 이후 더 큰 희생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그 신분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의병 신분인지 등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방불명
박 교수는 "피랍된 가톨릭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들은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까지 가톨릭 관련자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지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미8군 병참관구 범죄과 문서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민간인 납치 살해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으로 전쟁 중 행불자들에 대한 시복을 추진할 경우 참전국 사료 가운데 찾아봐야 할 문서고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앞으로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박해로 희생된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에 대한 진상을 좀 더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이들의 업적을 정확히 자리매김해 줘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성근(사바) 신부는 "한국교회가 20세기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한다는 것은 한국전쟁 전후 체포 또는 납치된 후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자들의 물리적 죽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 교수의 논문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와 신자들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한 범교회적 위원회를 설립해 총체적인 진상조사 재착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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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신문 2011.10.10 | ||||||
(기사) [특집] 반역,병사,살인,행불자도 "하느님의 종" 될 수 있을까
2011. 10. 18. 오전 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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