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본성을 거슬러 (2/19)

2005. 2. 19. 오전 11:47:07

글자
인간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으면 나의 주변 관계를 돌아보면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들어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인간은 관계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생활합니다. 한 가정 안에서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 형제간 사이에서 그 관계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 간에 가장 원수 같은 관계로 발전하는 체험도 합니다.

또한 이웃 안에서 인간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상처 입은 영혼은 결국 상처를 준 사람을 마음에서 지워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되갚아 줄 생각만으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 사이에 돌이킬 수없는 깊은 상처만 남깁니다. 그래서 인간은 원수를 만들어가고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관계의 불편함을 겪고 생활 하는 우리에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또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또 무슨 마음에서 하신 것인지 알아 들을 수 없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던지시는 것은 믿음을 지닌 자로서 희생과 사랑을 우리가 가장 하기 힘든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희생과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자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우리의 태도를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모든 이에게 공평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미워하는 그리고 박해하는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닌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와 친한 사람만을 위하여 희생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이를 위하여 하나 뿐인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외치던 그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고 기도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말씀을 직접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모범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사명이 또한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자신의 것만을 채우려 한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들여 주신 말씀은 전혀 우리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면서 그 분이 보여주신 실천적인 삶을 이웃과 세상 안에 실현시켜 갈 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우리 안에서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구원의 삶은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관계 안에서 사랑을 실천해 갈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보여주신 모든 관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신 사랑의 길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걷고자 하는 사랑의 길은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하신 말씀처럼 아버지 하느님을 부단히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의 끊임없는 수련을 통하여 얻는 길입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 강우현 요아킴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묵상 강론 매일미사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