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심판의 기준은?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이 사순절에 어떠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살고 부활을 맞이 할 수 있어야 하는 지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우리 자신이 죽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축복 받는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다. 이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이 당신 앞에 섰을 때,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계시는 말씀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느냐 영원한 멸망에로 떨어지고 마느냐 하는 조건이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 인간의 구원의 표징이기 때문에 이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이 사순시기뿐 아니라, 매일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실천해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의 기준은 우리의 지식이나, 명성이나, 재산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재산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 한 부분을 떼어 도와주는 것보다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일 수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웃들에게 퍼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것, 병자를 돌보아 주는 것, 감옥에 소외된 이들을 찾아보는 것 등, 우리가 평소에 언제나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깨어있기만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때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이해타산이 없어야 한다. 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기가 무엇을 기대하거나 바래서는 안된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상을 받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 해드린 것인지를 알지 못했었다. 현세적인 보상을 생각지 않고 단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러나 벌을 받는 사람들은 반대였다. 그것이 주님께 해드리는 일임을 알았다면 왜 하지 않았겠느냐고 한다. 그들에게 이웃들은 그들에게 불편만 끼치는 거추장스러운 주님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닮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분을 닮는 것인데, 그것은 그분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그분께로 인도해 줄 것이고, 그분을 닮게 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을 이 사순시기에 실천하도록 은총을 구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최후 심판의 기준은?
2005. 2. 14. 오전 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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