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고, 얻고, 들어선 이의 할 일

2005. 2. 17. 오후 1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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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얻고, 들어선 이의 할 일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언제 들어도 든든한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이 말씀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꼭 기억해야 할 예수님의 좋으신 말씀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우리의 간절한 청을 말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그것을 얻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행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그리고 바라는 것을 얻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동이 있으면 분명 보답이 있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곧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그 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적인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청을 드릴 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복음의 첫 머리는 기억하면서도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너무 처음 말씀이 인상에 깊어서일까요? 너무 좋아서일까요. 예수님은 복음의 끝을 이상한 말씀으로 끝맺으십니다.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너무 좋은 말씀인데, 이어지니까 말이 잘 안됩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라고 실컷 이야기하시고는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십니다. 그것도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그대로 우리의 몫으로 돌리고 계십니다. 곧 우리가 해야 할 일, 곧 우리가 스스로 구하는 이에게 주고, 찾는 이에게 찾아주며,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일까요? 아님 서로 너무 다른 이 두 말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요? 이것을 푸는 열쇠는 중간에 설명하지 않고 지나친 주님의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그 청을 들어주실 것이라 하시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다른 복음을 찾아보면 그 더 좋은 것이 등장합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의 원리요, 생명, 숨, 얼 등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 혹은 성령의 흐름을 안고 사는 사람은 곧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하느님께서 내리셨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하느님께 바랄 것 보다는 그가 바라던 것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 하셨던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으로 당신의 일을 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그 청을 스스로 실천하고 남에게 베풀어서 하느님을 닮은 그 소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오늘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구하면서도 나에게 무엇을 애타게 구하는 이를 찾아보고,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을 찾으면서도 그와 같은 것을 우리에게서 찾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찾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문을 두드리듯 우리 맘을 두드리는 이에게 우리의 문을 열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신 일들, 사실 알고 보면 바로 그 일들이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 부산교구 정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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