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우리 부부거든요...

2005. 1. 29. 오후 12:39:57

글자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김혜원기자

 

남편은 이른바 늙다리 사병입니다. 준비하던 시험 때문에 한 해 두 해 미루어오던 입대를 결혼을 하고도 큰아이의 백일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도 아프겠지만 버젓이 아이가 딸린 남편을 군에 보내던 아내의 마음 역시 더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런 아쉬움 속에 입대한 남편의 자대배치 소식을 들은 것은 몇 달 후였습니다. 백일이 지난 아들은 아버지가 없어도 잘 크고 있었지만 1년 5개월여의 결혼생활만에 이별을 하게 된 저의 마음고생은 적지않았답니다.

낮 동안에는 한창 말썽을 부리는 아이를 쫒아다니느라 생각할 틈도 없지만 홀로 잠이 들어야하는 밤이면 잠이든 아기 곁에서 위문편지를 쓰면서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하루는 친정아버지께서 다짜고짜 저에게 면회를 갈 테니 준비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직 정식면회를 하지 못하는 기간이라 면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아버지의 말씀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가자, 가서 보고오자."
"하지만 아버지… 면회가 안된다던데…."
"안되면 부대라도 보고오면되지."

딸의 깊은 시름을 눈치 챈 아버지는 어떻게라도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으신 생각에 무조건 손자와 딸을 차에 태워 남편의 부대가 있다는 가평으로 향했습니다.

얼마만큼 갔을까 길가에 군부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부대 앞에 차를 세우고 남편이 근무하는 부대의 위치를 물어보겠다고 하시며 차에서 내리셨습니다.

그때 마침 지프차 한 대가 부대를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대 앞 헌병에게 물어보러 가신다는 아버지가 부대에서 나오는 차를 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프차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잠깐 동안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차에 오르고 앞서가는 지프차를 따라가면 된다고 하십니다.

"허참!! 우리 애미 오늘 남편 만나게 생겼다. 운 좋게도 저 차가 욱이 애비 부대 부대장 차라지 않냐. 봐라 저게 1호차라는 거야. 부대장들이 타는 차인데… 내가 부탁했다. 우리 사위 얼굴 한번 보여 달라고. 어린 새끼랑 아내를 데리고 왔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특별히 만나게 해주겠다고 따라 오란다."

우연히 만난 1호차 덕분에 저는 생각지도 않게 남편을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각 잡힌 걸음걸이로 달려오는 남편의 모자에는 작대기 두 개가 측은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딸과 사위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아버지는 손자를 안고 나가셨지만 저와 남편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아버지가 다시 들어오실 때까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려 다를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면회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이번엔 아이를 맡기고 저 혼자 면회를 하기 위해 가평을 찾았습니다. 면회를 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기차 안에는 저 말고도 군인 애인을 만나러 가는 여자분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면회소에 나온 남편은 외출 허락을 받았다며 부대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저와 같은 기차를 타고 간 몇몇 여자분들도 군인 애인의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부대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린 가평시내의 한 허름한 여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관 앞에 서있는 군인과 여자. 삼류 통속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입니다.

"괜찮아 우린 부부잖아."
"그래도… 참 기분 이상하네. 창피하고 무슨 사고 치러 가는 사람들 같아."

그렇게 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저보다 먼저 부대를 나선 커플이 열쇠를 받아 방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도 부부야?"

남편은 질문이 우습다는 듯 큰소리로 웃습니다.

"하하하 글쎄 그건 모르지. 우리 부대에 결혼한 사람은 나 하나라던데…."

남편이 숙박부를 쓰고 나니 아줌마가 열쇠를 내어줍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대뜸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저희 부부예요"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합니다. 그때 아주머니의 표정은 그야말로 생뚱맞다는 얼굴이었지요.

이렇게 해서 저는 20개월 터울의 두 아들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이제 고3이 되는 작은아이는 어려서부터 남자답고 씩씩한 기상을 가졌다는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답니다. 이 모두가 대한민국의 씩씩한 군인 아빠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기야! 우리도 늦둥이 하나 갖어볼까.... 셋째는 지원도 많이 해 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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