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대와 ''그 사람''

2005. 1. 7. 오후 6:47:11

글자

(배경음악: 영원을 꿈꾸며 - 이용현 곡)

<가톨릭다이제스트 1월 - 심명희/약사> 

 

 종대를 처음 만난 것은 유치원 가는 골목길에서였다.  어느날 아침, 불쑥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는 종대의 기괴한 모습에 혼비백산, 걸음아 날 살려라 오던 길을 돌아서서 집으로 도망쳤다.  아침마다 머리보다 더 큰 혹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불쑥 나타나는 난쟁이 꼽추 종대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나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1년후 초등학교에서 그와의 재회는 여전히 공포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종대''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낙타'' 혹은 ''꼽둥이''라고 불렀다.

 

  정신지체에다 꼽추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여기저기를 떠돌던 종대 어머니는 동네에서 이집저집 불려다니며 다행히도 제법 일거리를 얻자 눌러앉게 되었다.  우리집 역시 종대 어머니의 일손을 자주 빌렸는데 어스름 해질넠 쯤이면 대문밖에서 집안을 기웃거리며 엄마를 찾는 종대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 주변을 맴도는 종대의 존재는 내 목에 걸린 작은 가시였다.

  그러나 다행히 고향을 떠나 인근 도시로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종대는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방학 동안 잠시 고향에 들를 때면 시외버스정류장 구석의 초라한 구멍가게 희뿌연한 형광등 아래서 늦은 밤까지 가게를 지키고 있는 종대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무거운 혹 덩이를 등에 짊어진 구부러진 낙타처럼.

 

  대학졸업 후 우연히 종대 모자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종대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시외버스 정류장이 시외곽으로 이전해 종대네의 유일한 생계였던 구멍가게는 헐값으로 넘어가고 겨우 월세방 한 칸 얻은 두 사람은 시내 모텔의 청소와 세탁일로, 식당의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하는 일당 잡부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던 때였다.

  종대가 어머니의 결사 제지를 물리치고 모텔로 뛰어들어가 자고 있던 주인을 식칼로 찌른 것은 밀린 두달치 월급도 받지 못하고 해고당한 채 한없이 울고 있던 어머니를 본 그날 저녁이었다.

  관절염으로 부어오른 손마디와 무릎의 통증을 한움큼의 진통제로 견디며, 죽을래야 종대가 눈에 밟혀 죽을 수 없다는 성치 못한 어머니의 성치 못한 자식 걱정 어눌한 넋두리 앞에서 그동안 가맣게 잊고 있었던 종대의 존재가 새롭게 내 의식에 들어와 자리잡기 시작했다.

 

  몇년후 힘들게 찾은 종대의 집은 전쟁통에 폭격맞은 폐허였다.  4차선 도로 확장공사로 담장은 허물어졌고 반쯤 기둘어진 낡은 초가집채의 을시년스런 모습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종대 어머니의 아들 살려달라는 호소문과 동네사람들이 내 불행인 양 적극 나서서 서명해 준 연판장 덕분인지 8년 형량이 5년으로 줄었지만 종대 어머니는 종대가 출소하기 1년을 앞두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성당에 가면 종대를 만날 것'' 이라는 종대의 행방을 듣고 막 집을 나서는 순간, 깨진 장독대 위에서 반짝거리는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용 흰 고무신 한 켤레였다.

  종대는 매일 아침 거의 종교의식에 가깝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흰 고무신을 정성스레 씻었다.  그리고는 집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마당 한 가운데의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반질반질하게 닦고 또 닦은 흰 고무신은 철거직전의 흉물스런 폐가에서 종대를 지키는 수호천사처럼, 겨울햇살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저녁 어스름 무렵에야 텅 빈 성당 등나무 아래에서 술에 취한 채 혀 꼬부라진 고함을 지르는 종대를 만났다. 한 눈에 봐도 식음을 전폐하고 술로 버티는 알콜중독자의 모습이 완연했다.  횡설수설하는 그와 이야기가 통할 리 없었다.  가지고 있던 만원짜리 지폐 몇 장 안주머니에 넣어주고 편지와 연락처를 남겼다.  찬 바람이 칼날같이 파고드는 성당 뜰에 종대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지난 8년 동안 종대는 내게 질문을 해왔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대학로를 지날 때마다 함석헌님의 시비가 던졌던 그 질문의 답으로서 종대는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서 내게서 자신의 작은 자리를 찾았다.  종대에 대한 유치원 시절의 어두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종대의 반짝이는 흰 고무신 한 켤레는 종대야말로 ''그 사람을 가진'' 행복한 사람임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편집자주: 숨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심명희는 봉사가 몸에 밴 사람이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 틀과 제도와 조직보다는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댓글 1

  • 2005년 1월 8일 오전 12:20

    나는 방관자처럼 지나다가 만나는 그런 현실에 그냥 지나치다 못해 피해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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