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수녀의 주방일기 - 짬뽕 만들기

2005. 1. 4. 오후 9:17:38

글자

(배경음악 : 나의 가는 길)

 <공동선 11/12월 - 허영란 수녀, 성바오로딸 수도회>

 

  이번 주 주방은 내 차례다.  오늘 식단은 짬뽕, 서원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자매님도 초대했다.  마트에서 오징어, 깐새우, 홍합, 바지락 조갯살, 부추, 생강, 양배추, 생손칼국수도 샀다.  양파와 당근은 남은 걸 쓰면 될 것이다.  그런데 고추씨 기름은 없다고 한다.  다리품을 팔아 근처 재래시장을 뒤졌다.  기름집 한군데를 찾아냈는데, 이홉 소주병 한 병에 4,000원이란다.  값도 비싸다 싶었지만, 박카스 병이면 우리 세 식구에 딱 좋은 양인데... 하는 수 없지, 있는 것도 다행이다 싶어 얼른 계산을 치렀다.  얼큰한 국물맛을 내는 짬뽕의 비결은 고추씨 기름이기 때문이다.

  오후 다섯 시, 저녁준비를 서두른다.  식탁에 오른 짬뽕은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식단이라 평소보다 30분을 앞당겼다.  부추를 다듬고, 양파의 껍질을 벗기니 독특한 매운 내에 금새 눈이 아린다.  생강의 흙을 털어 씻고 껍질을 벗기자 독특한 향내에 입맛이 돋궈진다.  야채를 손질해서 썰어 쟁반에 담는다.  가지런히 놓인 당근, 양파, 부추, 양배추의 색깔들이 따로 이면서 전체로 하나를 이뤄 보기에 참 좋다.  해물은 소금물에 씻어 소쿠리에 바쳐놓는다.  오징어에 칼집을 넣어 무늬를 만든다.

  생강과 마늘을 저민 후 칼 손잡이로 다진다.  저항하지 않고 즐거이 상처를 받는 생강과 마늘, 어쩌면 반기는 듯싶다.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음식이 되어주려고 서둘러 변화되어 가고 있다.  부여받은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면서 생명이 되어가고 있다.  다 다져진 마늘을, 제 모습을 잃으면서 제 존재를 온통 꽃피운 마늘을 종지에 담는다

  프라이팬에다 고추씨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볶는다.  뜨거운 열을 견디며 익어가는 야채들의 붉은 빛깔이 곱다.  생명의 빛깔로 익어가는 게 스스로도 이쁘고 대견한 듯 자글자글 소리를 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반쯤 익었을 때 물을 붓고 끓어오르면 준비한 해물을 넣는다. 한소끔 끓어오를 때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와 후추를 치고, 다시다 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고 불을 끈다.

  냄비 속에서 온갖 것들이 어울려 한 몸을 이루며 내는 조화로움의 얼큰한 짬봉국물 냄새가 향기롭다.  하느님께 바쳐지는 저녁제사 같다.  하느님이라니, 신성모독일까?  날마다 미사 중에 성체성사로 오시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우리가 하느님이 아니라고 거절하면, 우긴다면 하느님은 뭐라 하실까?

  몇 분 후면 초인종이 울리고 식구들이 도착할 시간이다.  스토브 위에 냄비 속에서 얼큰한 냄새로 문을 열고 나보다 먼저 식구들을 반길 짬뽕국물, 그 옆에는 둥근 접시 위에 삶아 낸 국수사리가 얌전히 놓여있다.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 주려고, 그래서 함께 내어주는 몸과 살이 되자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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