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생활말씀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신명기 4, 8)
40년 동안 사막에서 겪은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은 그들에게 시련과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민족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주셨으며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모세는 지난날의 경험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특별히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그들이 함께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인 하느님의 법을 기억하며 모두에게 이것을 실천하도록 요청합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중, 하느님께서 그분의 민족 가까이 계시며 돌봐주셨고, 너무도 지혜로운 삶의 법칙을 가르쳐주신 것에 감탄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그분의 법을 새겨주셨고, 여러 방법과 여러 시대에 걸쳐 모든 민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더 분명하게 그분의 계획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보내셨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보여주시고 단 하나의 계명 안에 하느님과 형제를 향한 사랑의 법을 농축시키시며 온전히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한 민족과 모든 인간의 위대함은 각자의 ‘네’와 더불어 하느님의 법에 응답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응답은 인위적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며, 양도와 같은 의미의 것도 아닙니다. 좋고 나쁜 어떤 운명에 체념하는 것도 아니며, 이렇게 정해졌으니 그렇게 되어야 하며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운명론에 순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느님께서 그 사람 위에, 그리고 전 인류 위에 세우신 위대한 계획을 드러내도록 협력하는 것입니다. 즉 인류를 사랑으로 일치된 한 가정이 되도록 하며, 그분의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모세처럼 다음과 같이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그럼 한 달 동안 이 생활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유일한 사랑의 개념으로 요약하신 거룩한 법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하나씩 살펴본다면,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이 모든 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다른 신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그분께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를 바쳐드리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도둑질하지 않고, 살인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이기적인 기쁨을 위해 형제들을 이용하지도 않고, 형제들을 거슬러 거짓 증언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그의 마음이 충만하고 만족스럽기에 다른 이들의 재산과 다른 피조물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고 하느님의 모든 법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여러 민족과 인종들을 만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특별히 카메룬 폰템의 방과족이 저에게 남긴 인상은 아주 강했으며, 2000년 이 부족은 사랑의 초대를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를 보내며 가끔씩 우리의 행위가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인지 자문해 봅시다. 과연 사랑에 바탕을 둔 행위였다면 우리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이며, 인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데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