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월

2007. 4. 6. 오전 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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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말씀           2007. 4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22, 27)

 

파스카라고도 일컫는 무교절 날, 예수님께서는 큰 이층 방에서 사도들과 함께 만찬을 드십니다. 빵을 떼어주시고 포도주 잔을 돌리신 다음, 사도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즉 그분의 공동체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분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이루고자 오셨음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지도자와 윗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거슬러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사실 만찬 때에 사도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사랑하는 것은 섬기는 것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라고 끼아라 루빅은 말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마치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일반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섬김을 받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공공기관에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과중한 책임을 맡은 사람을 ‘관리(官吏)’라고 부르며, 이는 ‘작은 자’, ‘섬기는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또 사회공익사업에도 봉사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봉사하는 관리에게 감사하고, 서류를 빨리 처리해주는 직원에게 감사하며, 유능하고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에게서 같은 것을 바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또 그분처럼, 우리 역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나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끼아라 루빅은 그리스도교 정신이 “모두를 섬기고, 모든 사람을 주인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종이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인 것입니다.

“봉사하고 아래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복음적으로 첫째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모두를 섬기면서입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은 진지한 것입니다. 약간의 동정이나 사랑이나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자선을 베풀면서 명령하고 억압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까요? 끼아라는 단순한 두 마디 말을 제시합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사는 것”, 즉 “다른 사람 안으로, 그가 느끼는 감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가 느끼는 짐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함께 놀고 싶어한다면 같이 노는 것입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산책을 하고 싶어하는 식구가 있다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아닙니다. 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사랑이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기에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외출하는 사람에게 외투를 가져다주고, 식탁에 음식을 가져다주어야 하나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청하시는 봉사는 추상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육과 다리와 머리를 사용해서 구체적으로 섬기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참되게 봉사해야 합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생활말씀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청에 즉시 응답하며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일을 더 잘하고 능력껏 완전하게 하려고 하는 것도 섬기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멀리서 혹은 우리 주변에서 노인들, 실직자들,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나 홀로 된 사람들이 특별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입양을 요청하거나 먼 나라에서 자연재해나 다른 여러 원조 활동을 위해 도움을 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책임을 맡은 사람은 우리 모두가 형제 자매임을 기억하면서 명령하는 듯한 태도를 접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한다면 오래된 크리스천 격언처럼 “섬기는 것이 곧 다스리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파비오 차르디 신부와 가브리엘라 팔라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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