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시내 성당 12 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그런데 전차가 와야 할 시각인데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고 뭔가 이상했다.
벌써 떠났나? 생각하면서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전차가 지나 갔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늘은 버스, 전차가 다니지 않고 데모하는 날이란다.
몇 십 년을 살아도, 그리고 아무리 TV, 라디오 이런 것들과 설사 거리가 멀다 한들 나는 스스로가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시내 성당 서너 군데의 미사 시간에 맞추어서 다니며 좋은 시간 갖는다 해도 결국 나는 손님으로 들려서 대접받고 오는 것이지 그 안에 있는 어려움이나 함께 해 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이방인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신앙의 정체감에 대해서도 요즘 새삼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늘 생각하고 있는 그분이라고 생각하는 그 분과 나는 어떠한 관계인가?
친밀한 관계인가? 물속에 흡수되지 않고 떠다니는 관계? 치유되어야 할 환자? 잔칫집의 밥상 을 받고 행복해하는 거지?
하지만 언제나처럼 더 이상 깊게 생각할 것 접고 있던 터에 엊그제 형성모임이
있었던 피정 장소인 쇤스타트 대 성당 안에서 얼핏 읽었던 구절이 이제 스쳐 지
나가는 것이다.
적절한 표현을 못하겠는데 뭔가 어렸을 적부터 내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음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그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살게 해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합니다`
아무튼 이왕 나온 김에 그리 멀지 않은 곳, 두 정거장만 지나면 나오는 우체국에도
들리고 물건도 살 겸 해서 짧은 구간이지만 전차길옆의 오솔길에서 큰 길로
나가는 길을 택해서 걸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이어서 인지 어느 사이 길 가에 달래가 자라 벌써 억세진 느낌이었다.
내가 보는 달래, 냉이 이런 봄 나물들은 꼭 이런 곳, 개들의 대 소변 처리 장소에서 잘도 자란다.
걷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는 나는 질질 걸으면서 그래도 할 것 하고 나중에는 비가
부슬부슬 나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나만이 안다고 생각되는, 깨끗한 장소에 자라나는
달래를 보러갔다.
올 해는 이상하게 한군데만 보였다. 해마다 오면 군데군데 자라나있는 달래를 보게되고 나는 몇 발자국 떼어 다니며 대부분 밑부분에서 자르곤 했다.뽑을수 있으면 뿌리를 뽑기도하고.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시절 집 뜰에 자라난 달래로 참기름에 밥 비벼먹든 추억에
젖는다. 햇살은 다사하고 그 밥 먹고 나면 여지없이 낮 잠에 빠지곤 했었든... 여기서는
달래 맛도 없고 향도 없고 그 당시의 밝고 맑은 햇살도 아니다. 하지만 달래가
내 눈에 보여지고 자라나준 자체만으로도 나는 밝음이 가득한 시간으로 되 돌
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언니들에게 주면 시골에서 자란 남편들이 우선 잘 먹기에 고맙게 받는다.
한 주먹 정도 도 채 안되 는 작은 양이긴 하지만 나는 봄과 맛을 선물하는 셈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