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보리밭 2

2012. 3. 1. 오전 8:50:22

글자
       어린 시절, 추운 날씨 학교에서 나가 보리 싹들을 밟았습니다.
       꼭꼭 밟도록 선생님들은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 여린 생명을 밟는다는데 마음 아프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떠난 자리를 보면 아무리 어린 우리가 밟았다 해도
       싹들이 죽는 듯이 신음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추운 바람과 눈이 쌓이고 새싹들은 연이어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싹들은 어느 샌가 다시 일어섰고
        만상이 마르고 푸석푸석할 때
        그들만이 푸르름으로 자라나
        어른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모든 이의 양식이 될 거라는 것,
        허기짐의 고통에서 벗어나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리곤 오물을 퍼다 부었습니다.

        보리 싹들이 주어진 운명(? ) 을 이해했을까?
        잠시 스쳐 지나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느새 봄바람에 보리 싹 들은 비단결 같은 아름다움으로
        성장하여 나부끼었습니다.
        종달새의 노래 소리도 들리고
        녹색 푸르름은 모든 것을 푸근하게
        다 안아 주는 듯 했습니다.      
        그곳은 보드랍고 누구나 편안히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마냥 바라보도록 해주는 요람 같았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 늙어감에 따라  
        죽어야 산다는 것, 영원 하다는 것의 신비를 그 생명들에게서
         되 새김하며 배웁니다.   
                   

                ^시골에서 자랐음이 많은 도움이 되네요. 









 

댓글 3

  • 2012년 3월 1일 오후 8:08

    예.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다는것은 큰 축복 인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만 나서 자라고, 시골에 사시는 친척도 없어서 자연과 친하지 않았거든요. 영국에서 13년째 살면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예요..

  • 2012년 3월 1일 오후 9:09

    2년전 성탄때 포인세티아를 샀어요. 그땐 정말 빠알간 잎새가 아름다왔는데, 제가 가지치기를 안해줬죠...괜히 피흘리는 거 같아서. 따뜻한 거실에 놓아주고. 그랬더니 지금은 잎도 아주 작고 무성... 빨개지지도 않구요. 포인세티아가 포인세티아이기를 포기한 채 저랑 같이 살고 있어요. 볼때마다 고통은 그가 그답기 위해 정말 필요하구나 합니다. 물론, 고통을 겪은 포인세티아가 그답다는 것은 부족한 인간의 관점이지만 말이죠...

  • 2012년 3월 2일 오전 5:51

    보리를 밟기 전에, 혹은 보리가 밟히기 전에 칼과 바구니를 들고나가 보리를 캤어요. 그것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어요. 혹은 홍어의 내장을 넣고 끓인 홍어애국에 보리를 넣어 먹었었죠.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건 딱 그 한철이었던 것 같아요. 늦겨울과 초봄 사이.. 나클님의 글을 통해 그 "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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