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선문(禪門)에 들 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반골의 동지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 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脫俗)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