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2004. 12. 11. 오전 5:36:48

글자

지금 계절이 겨울이 맞나?

날씨가 겨울 답지 않게 너무 포근하다. 작년 이 맘땐 눈이 오고난 후라 참 추웠는데 ,

나에게 대녀가 둘이 있는데 오늘은 첫째 대녀의 첫 기일( 제사 )이다. 김지애 엘리사벳 . . .

새벽에 연미사를 드렸다.지금은 주님 곁에서 평소의 그애 답게 생글거리며 밝고 명랑하게

예수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애 부모님과 나의 가슴 한 구석엔 남겨진이들의 슬픔과 아픈 추억이다.

그 아픔과 슬픔도 많이 희석되어 가고 있지만 . . .

 

작년 8월 말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가고 남쪽 지방의 심한 태풍피해 상황을 뉴스 특보로 밤새워

보여주고 있고, 더 큰 피해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 졸이고 잠을 설치고 있는데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에 전화 벨 소리에 온 몸이 불안으로 소름이 돋았다.

빗소리에 섞인 그애의 목소리 . . . 이 시간에 전화 할 아이가  아닌데 . . . 가슴이 쿵쾅 거렸다.

- 어머니 . . .(엘리사벳은 나를 한번도 <대모님>이라 불러 본 적이없다.언제나 <어머니>라고 불렀다.)                    평소의 밝고 높은톤의 목소리가 전혀 아니다. 난  ' 혹시 빗길에 교통사고? ' 라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후 다시

- 어머니 . . . 저 아파요 . . .기도 좀 해주세요 -

이 시간에 전화를 하다니 기도해 달라고 . . .

- 그래, 엘리사벳 어디야? -    너무 불안해서 어디 아프냐고 감히 묻지 못하고 어디냐고 물었다.

 

고대 구로병원 ,  남편과 아이들이 이 태풍속에 어디를 가느냐고 날이 밝으면 가라고 말리는데도

빗속을 달렸다.

 

8월초, 두살아래 남동생이 결혼을 먼저해서 조카 돌 잔치를 했는데 그날 먹은것을 다 토했단다.

여름이라 식중독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약국에서 약사먹고 괜찮아서 지나갔다.

3주후 심한 통증으로 밤에 자다가 응급실로 실려왔는데........위암 말기 !!

담당의사 표현으로 왕소금을 한 웅큼 뿌려 놓은것 처럼 장기 전체에 점점이 퍼져있었다고 . . .

그래서 손도 대지못하고 그냥 덮었다고 . . . . 남은 시간은 3개월을 넘기지 못할것 같다고 . . .

학기초( 남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다 )에 학교에서 단체로 건강검진을 했는데 그때는 이상이 없었단다.

이렇게 어이가 없을수가 !

엘리사벳은 만능 스포츠 우먼이다.여름이면 수상스키와  윈드서핑을 하고 겨울엔 스키장에서 아예

살고있다.봄 가을엔 전국 산에는 다 다닌다. 2년전에는 히말라야 5000m 트래킹도 하고왔다.

그런데 어째서 . . .그 충격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통곡 할 만큼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서가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나만은 이 병(암)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 . . .

 

34살 미혼, 영세 한지 10년,

7년 열애 끝에 남자친구에게 모질게 실연당했다. 그 녀석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운동선수인데

엘리사벳을 버리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여자 연예인과 결혼해 버렸다.

나쁜놈!! 우연인지, 필연인지, 숙명인지, 그 나쁜 녀석은 내 제자이다.

그녀석이 떠난 후 3여년 동안 엘리사벳은 정말 힘들게 지냈다.

겨우 마음이 정리되어 평정을 찿아가는데 하느님이 빨리 데려 갈 준비를 하신것이다.

환자가 차츰 완쾌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는게 아니라 반대로 아무 치료 방법도 없이 

통증으로 고통스러울때 진통제로만 버티는것  . . .점점 고통은 심해지고 진통제 투여 횟수는

잦고, 본인의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도 없고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고문에 가깝다.

어느 누구도 엘리사벳에게 아무것도 해 줄수있는 방법이없다.

기도 외에는 . . . .    고통없는 당신곁으로 빨리 데려가시라고 . . . .

난 매일 병원으로 갔다.마침 내가 후원회로 있는 프란치스코 마리아 전교회 수녀님이 원목실장으로

계셔서 수시로 와 주시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엘리사벳 부모님은 전통 불교 신자시고 남동생은 장인이 개신교 목사님이라  개신교에 나가고

친척이나 가족중에 가톨릭에 대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엘리사벳이 나와 수녀님만 찿았다.

그리고 내 딸이니까 내가 하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기도도 같이 해야하고,봉성체도 도와 줘야되고,종부성사는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강남 성모병원 원목실에

계시는 지영현 신부님을 모시고 가서 총고백을 보게하고 종부성사를 봤다. 엘리사벳이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모습에서  난  내 모습을 보고있었다.그래서 더 함께 아팠다.

엘리사벳도 그걸 안다. 그래서 나만 찿았을것이다.

내가 엘리사벳보다 5개월 먼저 암 수술( 담낭암 )받은 같은 환자이니까  . . .

거짓말 처럼 엘리사벳을 만나러 매일 병원에 가는데 내가(환자 ) 아픈걸  잊어 버리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세시간 거리인데 그 거리가 먼줄을 모르고 다녔으니까.

우리 식구는 그몸으로 가지말라고 난리고, 엘리사벳 부모님은 오지말라고 난리이고,

하지만 내 딸이 나보다 먼저 죽어가고 있는데 . . . .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 . . .

 

엘리사벳이 고통속에서 가을을 다 보내고   2003년 추운 초겨울 12월 10일 오후 2시 정각에

수녀님과 내가 한손씩 잡고 임종기도중에 눈을 감았다.고통이 없는 곳,  영원한 여행으로

주님의 품으로 갔다.

 

엘리사벳집이 등촌동이라 화곡동 성당 영안실로 옮겼다.

화곡동성당 영안실 봉사자들과  등촌동성당 연령회 회장님과 연령회원들의 도움으로 모든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연도를 하러 연도객들이 모여 드는데 엘리사벳가족들은 가톨릭신자가  아무도 없어

내가 상주가 되어 그 많은 문상객과 연도객을 다 받았다.

연도, 장례미사, 벽제에서 예절과 기도들 . . .엘리사벳 부모님은 부모보다 먼저간 자식의 화장은

보지 않는다고 벽제에는 같이 가지않았다.남동생만 따라갔다.

추운 날씨에도 벽제까지 오셔서 끝까지 도와주신 등촌동 연령회원들 그날 정말 고생 많으셨다.

 

엘리사벳의 분골은 엘리사벳이 여름이면 수상스키를 타던 청평호가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 산에

남동생이랑 같이가서 묻었다.(불법이지만...)

엘리사벳분골을 묻고 산에서 내려와 늦은밤 실례를 무릎쓰고 연령화장님댁으로 찿아가 삼우제, 49제

미사예물 봉투 드리며 미사 부탁하고 집으로 와서 기절했다.

깊은 잠을자고 일어나 눈을 떴는데 내가 다니는 삼성의료원 병실이다.

4일만에 깨어났단다.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우리가족들을 내가 초죽음으로 몰고갔다.

참- 식구들에게 못할 짓을 저질렀구나.정말 미안했다.나때문에 가뜩이나 조마조마하며 사는데 . . .

 

하느님의 씨앗은 어디에서나 싹을 튀운다.

엘리사벳부모님께서 지난 성모승천대축일에 세례를 받으셨다.엘리사벳 장례를 치르고 바로

예비자 등록을 하고 교리교육을 받았는데 결석 한번없이 나가셨단다.

대부모는 연령회회장님 내외분이 되셨고  부부레지오를 그렇게 열심히 하신다.

 

오늘 나는 나의 첫대녀인 엘리사벳을 이제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낸다. 

첫기일 연미사이자 마지막기일 연미사였다. 하느님이 나에게 새 선물을 주셨기 때문이다.

세번째 딸을주신단다. 하나를 데려 가시고 하나를 새로 주신거다. 

32살, 미혼,백정숙 비비안나

비비안나를 맞이하기위해 매일미사와 묵주기도로 준비를하고 있다.

당신의 귀한선물을 깨끗하고 예쁘게 받고 싶어서 . . . 

 

 

12월 12일 일요일 오후5시 새 딸을 만난다.

어쩜 엘리사벳 첫기일에 맞춰 새딸을 주셨을까?

댓글 2

  • 2004년 12월 11일 오후 11:32

    가슴 뭉클한 이야기! 참 훌륭하십니다. 애덕이 넘치는 실천하는 신앙, 본받아야 할텐데요..

  • 2004년 12월 27일 오전 3:49

    뒤 늦게 이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신은 성모님의 변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