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7일 일요일(자선 주일)
[대림 제3주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요한1,6-8.19-28)
제1독서<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이사61,1-2ㄱ.10-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화답송>루카1,46ㄴ-48.49-50.53-54(◎이사 61,10ㄱ) ◎ 내 영혼이 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그분이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
○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
○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네. ◎
제2독서<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테살5,16-24)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22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1,6-8.19-2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림 제3주일 제1독서(이사61,1~2ㄱ.10~1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2)
제 3 이사야로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56~66장)의 내용이다.
이 부분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을 겨냥한다.
특히 이사야서 58장 6~7절과 오늘 독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 공생활의 청사진을 그려내는데 결정적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개 임금들과 대사제들, 예언자들만이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여기에 쓰인 단어들은 특별한 임무의 위임과 관련되며, 동시에 성령의 은사와 더 많은 관계가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에서 '가난한 이들'이란 '아나뷤'(anawim)이라는 히브리 단어이다.
시편에서 종종 인간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신실한 사람들을 나타내는데 사용한다.
이 단어는 '겸비한' 혹은 '고톧받는'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마음이 부서진 이들'(마음이 상한 자)이란 시편에서 종종 '가난한 자'와 병행으로 사용된다.
이사야서 57장 15절에서 처럼 바빌론에서 귀환하기 전, 예루살렘 폐허 주위에 있던 낙심한 유대 사회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ㄷ~2)
'포로'와 '피지배자들'이라는 유대적 의미를 나타내는 은유들인데,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택하신 도구를 통해서 베푸시는 자유가 선포된다.
'해방(석방)을 선포하다'에 해당하는 '리크로 데로르'(lichro deror)라는 말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 '희년'에 대해 사용되는데(레위25장 참조), 매 50년마다 있는 종들의 해방을 의미한다.
예언자들은 포로로부터의 해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
바빌론 유배생활로부터의 귀환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의 권리 회복과 건물의 재건은, 긴 감금으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힘의 남용과 부정한 사용이 절대적이었던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희생자들의 자유와 범죄자들의 처벌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이사 61,1~2).
이 새로운 도시, 예루살렘의 재건과 회복은 석재와 회반죽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
이 새로운 도시가 완전히 아름다워지기 위해 새로운 영과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0)
이사야서 61장 10절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통치자의 고백이다.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 도시로서의 예루살렘의 입장을 지지하며, 정치 체제를 안정시키고 팔레스티나를 완전히 지배한 그의 성공에 대해 하느님께서 '구원'과, '의로움'에 해당하는 '체데카'(chedeka)을 선물로 주시고, 구원을 보장하고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이다.
성전을 재건한 자신에게 구원과 합법성을 부여해 주신 하느님께서는 '새순'과 '싹'으로 상징되는 '새 일'들을 주시며, 팔레스티나의 여러 민족을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통치를 계속 지지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기대한다(11).
우리도 이 대림절에 회개와 자선을 통해 무너진 우리 마음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복구하면, 구원과 의로움을 보증받고 성령의 열매인 기쁨과 즐거움을 영혼의 선물로 받을 것이다.
또한 미래에도 여러 사람들과 공동체 앞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칭송받고, 새 일을 끊임없이 하며 공동체안에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대림 제3주일 복음(요한1,6~8.19~28)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27)
요한 복음 1장 26-27절의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1장 7절에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라고 되어 있다.
'~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번역된 '이스퀴로테로스'(ischyroteros; one mighter than I; one more powerful than I)의 원형 '이스퀴로스' (ischyros)는 마르코 복음 3장 27절과 루카 복음 11장 22절에서는 '힘센'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물리적 힘이나 세상의 권세가 아닌, 특히 '영적인 면에서의 권세의 우월'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 뿐만 아니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지배자 ('사탄'; 에페2,2) 보다 더 힘센, 온 우주 만물에 대한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다(사도17,24; 히브2,8).
그리고 '오시는'에 해당하는 '에르케타이'(erchetai; is coming)는 직설법 현재 동사이다.
'앞으로 오실 것이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오고 계신다'는 뜻이다.
세례자 요한은 아직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 즉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누구신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는 현재형 동사를 사용해서 유대인들을 향해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는 임박한 종말론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그분이 그때 자기 뒤에 오고 계시다는 긴박한 상황을 생동감있게 전해주고 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신발 끈을 풀다'(to untie whose sandal strap)는 표현은 당시 근동 지방의 사회적 풍습과 관련이 있다.
즉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종이 주인의 발에서 신발 끈을 풀어 신을 벗기고, 그 발을 씻겨야 했다.
당시 발을 씻는 일은 가장 비천한 종들이 하는 불결한 일 중의 하나였다.
당시 랍비의 교훈 중에 '학생은 종이 주인에게 하는 것처럼, 그 스승에게 해야 한다. 그러나 종이 주인의 신발 끈(신들메) 푸는 일만 제외하고'라고 되어 있다.
그만큼 신발 끈 푸는 일은 종이 하는 일 가운데서도 가장 천박한 일에 속했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에 대해서는 그런 일조차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극도의 겸손을 갖추어 말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세례자 요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고 칭찬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가 하느님 대전에 높임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준다'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이 주는 세례는 '물 세례'로 번역되는 '에밥티사 휘다티' (ebaptisa hidati)인데 반해서, 오실 메시아가 주시는 세례는 '성령 세례'로 번역되는 '밥티세이 엔 프뉴마티 하기오'(baptisei en pneumati hagio)라고 마르코 복음('성령')과, 마태오, 루카 복음('성령과 불')에 나온다.
세례자 요한의 '물 세례'는 세례받는 이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세례였지만,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람으로 삼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을 부어 주시는 세례'이므로, 세례받는 이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특히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이미지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불'에 해당하는 '퓌리'(pyri; fire)는 성령의 활동과 관련된 은유적 표현으로서 '정화', '심판', '조명'의 뜻이 있다.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자선 주일)
[대림 제3주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대림 시기도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다가올 메시아의 구실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 말씀이 당신을 통하여 실현되었음을 장엄하게 선언하시며 공생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루카 4,16-21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 전하신 소식은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알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이의 마음과 복음을 듣는 이의 마음은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전례 독서는 ‘기쁨’에 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제1독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시아의 기쁨을 노래하고(“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제2독서는 같은 소식을 전하여야 할 제자들에게 기뻐할 것을 권고합니다(“언제나 기뻐하십시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빛’이신 분을 증언하는 기쁨 속에서 사람들을 회개의 삶으로 이끕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들은 성모님께서도 이렇게 노래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화답송).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까?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우리는 언제나 기뻐하여야 합니다.
소식을 듣는 이들에게 기쁨이 전하여지려면, 먼저 소식을 전하는 이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심전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은 특히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향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그런 이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대림 제3주일은 이웃 사랑의 실천을 장려하는 자선 주일이기도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의 전도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제2독서 (1테살5,16-24)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 그리스도인은~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는 게 罪’라는 俗言이 있고 ‘인생은 폭풍이 이는 바다와 같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은 참으로 힘들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시련의 사건들은 용서와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부르심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길을 따라가 구원을 받아야 할 그분의 자녀들이, 인간의 제멋대로의 길을 고집하며 가기에 방향전환, 곧 구원을 위한 회개를 시키려는 하느님의 부르심, 신호라는 것이다.
평화(에이레네)란 두 마리 소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그렇듯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 인간이 한 방향으로 가야 하늘의 평화를 얻는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그 세상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복음에서~
(요한1,23)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 소리(콜-코프+라메드) 다시기억하자. 코프(파괴하고 다시세움) + 라메드(교훈,가르치다), 잘못된 것을 부수고 가르쳐서 다시세우겠다는 콜(소리)이다.
(시편23,4) 4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 예수님을 믿어도 어둠의 골짜기와 재앙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련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라메드), 곧 하느님의 소리가 있기에 위안리 된다는 것이다.
바벨탑으로 가 보자~ 하느님이 지혜로 주신 돌, 진흙 대신,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낸 벽돌과 역청으로, 그 자신들의 이름으로 하늘에 오르려는 그들의 탑(塔)을 부수신다.(창세11,1~참조) 왜? 그 인간의 열심, 노력으로는 하늘나라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을 위한 부수심이 시련이다.
(루가12,51.53)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 세상 평화를 위해 뭉친 가족을 부수신다. 왜? 하늘의 평화를 찾게 하시려고, 주시려고 *하늘의 평화를 위한 부수심, 시련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시련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증표이다.
(히브12,7)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 그러니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로 모든일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과 감사는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肉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기에 할 수 있다는 것, 갈 수 있다는 것이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 보호자 성령과 살아계신 말씀의 힘으로, 곧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 그 힘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獨生子)을 우리의 속제 죄물로 내주신 그 사랑이다. 그 사랑이 하신다.
(이사61,11)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21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22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 구원을 주지 못하는 모든 것, 惡한 것이다. 분별해야한다. 말씀을 깨닫기 위한 신앙이 아닌 자기 의와 뜻을 위한 행위의 종교 생활이다.(마태7,21-23 마르7,7 루가10,39-42)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 완전히 거룩해지는 길은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만 가능하기에~(히브10,14-22) 사도는 하느님께서 맹세로 약속하신(계약) 구원의 계획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히브6,17)
잊지말고 믿으며 희망으로 안심하라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 아니신가~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성령께서 친히 알려주시지 않았는가~(루가1,26-38)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 하느님은 꼭 이루십니다. 하느님이시니까요.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믿습니다.~아멘!!!
☆오늘은 자선 주일이다.
(매일묵상책)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특별 헌금을 통하여 자선을 실천한다.’
= 하였듯이 어려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도록, 기도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특별한 힘(말씀)을 주는 것, 오늘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신 기쁜소식(말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인간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이웃을 위한 -자기 마음, 구제 활동, 돈 등을 내놓고 그것으로 하느님의 일을 했다고 자기 가치, 의로움을 챙긴다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늘 요한 처럼 우리의 빛은 구원의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당연히 나와야 할 말씀 선포(소리)와 헌금이다. 그 둘이 함께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거저 받았음을 알기에 거저 줄 수 있고, 그래서 자기 자랑도 생색도 내지 않을 수 있다. 감사의 인사도 받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의로움으로 챙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이가 더 많이 내 놓는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