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정결례(淨潔禮) (루카2,22-40)

2023. 12. 30. 오후 10: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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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1일 일요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정결례(淨潔禮) (루카2,22-40)

 


1독서<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집회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또는><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창세15,1-6; 21,1-3)

1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21,1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해 주시니,

2 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러 주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3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였다.

 

<화답송>시편128,1-2.3.4-5(1)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2독서<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콜로3,12-21)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또는><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의 믿음>(히브11,8.11-12.17-19)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복음<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루카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 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제1독서(집회3,2-6 12-14)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3~6) 

 

집회서 제1부(1,1~16,23)에서 저자는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천명한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므로 주님을 제대로 알아 모시지 않으면 그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다(1,14). 

여기서 '경외함'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어른을 삼가 공경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먼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언급한 데(1~2장) 이어서 곧바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가르친다(3장).

 

오늘 성가정 축일 독서는 집회서 3장 2~6절과 12~14절의 말씀이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3)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6) 

이 말씀은 탈출기 20장 12절의 십계명을 연상시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공경하라'라고 번역된 '캅베드'(kabbed) '무겁다','존귀하다', '많다'는 뜻을 지닌 '카베드'(kabed) 능동형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존경하라','절대적으로 존귀케 하라' 매우 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카베드'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경외한다는 문맥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부모란 단순히 자식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매체 혹은 이 땅에서 양육하고 지원하는 물리적 후원자 정도의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바대로 부모 이 땅에서 하느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지닌 존재이므로 자녀는 부모 섬기는 일을 하느님 섬기듯이 정성껏 하여야 한다.

 

또한 이렇게 부모를 섬기고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법까지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느님 뿐만 아니라 그 권위를 지상에서 대행하는 우리의 육신적인 아버지이신 부모를 하느님께 하듯 섬겨야 할 것이다. 

 

탈출기 20장 12절에 '오래 살 것이다'라고 번역된 '야아리쿤'(yaarikun) '연장하다', '확장하다'는 뜻이 있는 '아라크'(arak)의 사역 능동형 동사로서 '길게 하여 주다', '연장시키다'는 뜻이다. '아이리쿤'(airikun)는 사역형 동사이므로 '길어지게 하시는' 보이지 않는 주어인 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즉, 생명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생명 연장의 약속이 아니라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삶이 복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로 하느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 인생을 또한 책임져 주시지 않겠는가?

사도 바오로는 이 아름답고 복된 약속을 에페소서 6장 1~3절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자녀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하신 약속입니다."

 



 

 

[성가정축일 복음] 

보십시오. 이 아기는 (루카2,22-40)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4~35)

 

시메온이 축복하는 대상을 '그들', 즉 요셉과 마리아로 밝히고 있다. 당시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꽤 오랫동안 안고 있었으며,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하여 축복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시메온은 자신이 감히 구세주 예수님을 축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부모들만을 축복했다고 본다.

 

이제 아기 예수님의 부모를 향해 시작된 시메온의 축복은 곧 마리아에게로 이어진다.

이것은 아마도 마리아가 요셉보다 더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을 받는 당사자가 마리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즈음에 일찍 죽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리아는 그 이후까지 살아 예수님께 대한 온갖 비방과 더불어 십자가 처형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많은 사람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의 지대함과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이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쓰러지게도 하고'로 번역된 '프토신'(ptosin; falling)의 기본형은 '프토시스'(ptosis)이며, 그 뜻은 '무너짐', '넘어짐'을 뜻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지게 될 자들은 교만하여 꼿꼿이 서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비참하게 넘어질 것이다.

 

반면에 '일어나게도 하며'로 번역된 '아나스타신'(anastasin; rising)의 기본형 '아나스타시스'(anastasis)는 '일어서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니스테미'(anistemi)의  명사형으로 '일어섬'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비참한 죄의 상태(예레17,9)로 인해 절망하여 넘어져 있던 자들은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 은총으로 말미암아 일어설 것이다.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루카 복음 2장 12절에서도 나오지만, 예수님 자신은 '표징'(sign)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표징이 되기 위해서 '정해지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반대를 받는'으로 번역된 '안틸레고메논'(antilegomenon;which will be spoken against)는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lego)의 합성어로서  '반대하여 말하다', '적대적으로 말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는 수동태 현재 분사로 쓰여 '적대적인 말을 듣는', '비방을 받는' 이라는 뜻이며, 이 상태가 예수님께는 항상 현재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항상 반대를 받으신 예수님의 공생활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와 비방의 최고 절정은 인류 구속을 위한 성혈의 제단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자 되심을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멸망'의 표징인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여기서 '칼'로 번역된 '롬파이아'(romphaia; a sword)는 전쟁 때 살상용으로 사용되는 '큰 칼', '긴 창'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여기서 비유적으로 영혼을 가득 채운 '큰 고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당신의 피'로 번역된 '수 ~아우테스'(sou ~autes; your own)는 고통을 당하게 될  대상을 강조하는 표현이며, 직역하면 '너 여자 자신의' 이다.

 

마리아의 영혼에 칼에 찔린 듯한 아픔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루카 복음 2장 34절 후반절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생애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드러내 단죄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배척과 수난과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영혼을 뒤흔들 듯한 고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이 땅에서 수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세사의 섭리 안에서 이미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여기서 '생각'으로 번역된 '디알로 기스모이'(dialogismoi; the thoughts)는 '마음속의 궁리', '뒤틀어진 생각'등을 의미하는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의 복수이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대체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루카5,22; 6,8).

 

여기서도 이 단어를 사용해 장차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실제로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실 것이 예언되고 있다(마태23,25~27; 마르7,20~23).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루카2,22~40)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29)

 

루카 복음 2장 29절부터 32절까지는 일반적으로 '시메온의 고별 노래'라고 불린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데스포타'(despota; Sovereign Lord)는  기본형 '데스포테스'(despotes)의 호격이다. '데스포테스'(despotes)는 '주인', '소유주'라는 뜻인데, 동일한 의미로 성경에서 749회나 사용된 '퀴리오스'(kyrios)와 달리 10회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데스포테스'(despotes)는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분'에 대해서 사용하는 상대방을 매우 높이는 강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사도4,24; 묵시6,10).

 

시메온은 하느님을 '데스포테스'(despotes)라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당신 종', 즉 '톤 둘론 수'(ton doulon sou; your servant)라고 분명히 말하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야'라고 번역된 '뉜'(nyn; now)이 문장의 처음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시메온 개인에게도 구원자를 기다리는 영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뒤이어 나오는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아폴뤼에이스'(apolyeis; depart; dismiss)는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하는 '아폴뤼오'(apolyo) 2인칭 단수이다. 이 단어는 완곡어법으로 쓰여 '죽을 수 있도록 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셨으므로 아무런 미련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시메온이 매우 늙었으며, 지금까지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명과 희망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사명과 희망이 완전히 성취되고 끝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평화로이'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 '레마'(rema; word)는 루카 복음 2장 26절에 나오는 '성령의 알려주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메온은 '레마'(rema) 앞에 '토'(to)라는 정관사를 붙였을 뿐 아니라, 뒤에 2인칭 단수 소유격 대명사 '수'(sou)를 덧붙여서 '성령의 알려주심'을 '성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시메온은 자신이 바라던 바가 성취됨으로 인해 참 평화를 얻었다. 이 평화는 시메온 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도 구원자의 오심의 결과요 선물이 되었다.

 

이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네'(eirene; peace) 하느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주시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느님과 원수가 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구원이며(로마5,1.10),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일 뿐만 아니라(로마12,19), 염려와 근심, 격심한 감정의 혼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이다(로마8,6).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원문의 서두에 나오는 '호티'(hoti; for)는 본문에서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앞에서 말한 자신의 평화로이 떠나감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메온이 '구원'을 본 주체는 '나', 즉 '에고'(ego)라고 하지 않고, '제 눈이' 즉 '호이 옵탈모이 무'(hoi ophthalmoi mou; my eyes)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분명히 보았음을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여기서 '구원'이라고 번역된 '소테리온'(soterion; salvation)은 형용사인데, 명사처럼 쓰여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시편50,23; 이사56,1).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신 어떤 구체적인 영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 자체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했던 시메온은 사도 요한이 표현했던 그 기쁨을 맛보았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1,1)

 

 



 


20231231일 일요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께서 이루신 성가정을 기억합니다.

교회는 모든 신앙인 가정의 모범이 되는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이 가정은 처음 꾸려지는 과정부터 그리 순탄하여 보이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약혼자 요셉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를 잉태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고, 요셉은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하였습니다.

출산한 뒤에도 그들은 천사의 명령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피신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이는 기쁨과 행복이 흘러넘치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을 우리 가정의 모범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도록, 그분께 가정의 중심 자리를 내드렸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잉태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요셉도 당황스러울 법한 그 모든 상황에서 자기 뜻을 앞세우지 않고 늘 주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가정생활에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냅니다.

성가정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로 하느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 가정이 위기에 놓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가정에 바라시는 하느님 뜻을 찾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바치는 기도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를 내드림으로써 우리 가정은 나날이 거룩하여질 것입니다.

성화된 가정은 우리가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장소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가정 축일]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의 사랑, 마음을 알기에 그리운 것이다.


(루카2,21-39)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 할례- 남자(肉)의 힘, 능력을 잘라내고(죽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살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도 그 할례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뜻(힘)으로 일을 하지 않으셨다.

 

(요한6,38)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요한8,28) 28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5,30)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외 14,10 12,49- 5,19 등등)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 예수님의 대속으로 율법을 완성하실 것을 보여주심이다.

 

(갈라4,4)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 한 쌍(작), 두 마리(분열-무리) 예수님의 중재로, 곧 십자가(대속)로 둘을 하나로 완성 시키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善과 惡의 둘, 그 법으로 받아 죄와 죽음의 심판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 법을~靈이신 예수님께서 그 죄의 법을 품으시고 대신 죽으셔서 생명을 주는 그 구원의 진리, 그 사랑의 계명 하나로 율법의 여러 조목을 다 완성하신 것이다.

 

(에페2,15)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 갈망하는 이를 찾아가 함께 하신다.

 

(지혜6,13)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 우리는 얼마나 그분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가~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 성령의 도우심, 이끄심으로 구원의 아기, 곧 구원의 말씀과 하나 된 모습이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성령에 취해, 말씀에 취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시메온은 늘 불안했다. 옛적(창세34장) 시메온 지파가 하느님의 계약, 그 할례를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 이용했기에~(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그 지파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창세49,5- 참조)

그런데 구원의 아기 곧 대속의 말씀, 그 진리와 하나가 되었으니 무서울 것, 두려울 것이 없게된 것이다. 시메온이 자신의 그 죄의 정체성을 몰랐다면 구원의 아기(말씀)를 기다리며 갈망했을까? 자신의 그 죄의 본질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 자비, 용서이신 그분의 마음을 알았기에 늘 기다렸고 만났다는 것이다.

성탄을 맞아 우리의 기분, 감정으로 기뻐하는 그 잘못을 좀 보자는 것이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예수님은 먼저 쓰러지게 하신다. 곧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받아 스스로 의롭다 하는 그들의 그 자신의 가치가 구원의 힘이 없음을 깨닫게, 그래서 自己否認(죽음)의 그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십자가(대속)로 다시 세우신다는 것이다. 자기 부인을 시켜서 새 사람, 새 창조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사람의 교만함을 부수시고 끌어 내리시고 내치시고 쓰러뜨리시어 하늘로 완성하시는 다시 세우시고 올리시기 위한 자비인 것이다. (루가,51~마니피캇 참조) 그러나 그 삶이 우리에게는 시련으로 올 수 있기에 하느님의 힘으로, 힘을 내라고 하신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입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힘 그분의 평화가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내가, 내 안에 말씀이 머무르시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서 일 하시게 하라는 것이다(1데살2,13참조)

 

오늘 독서에서도~

(골로3,12-16)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칼-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가르고 속셈을 드러내시니, 말씀은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것입니다.(히브4,12)

 

(묵시10,10) 10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말씀)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 칼, 말씀으로 하시는 수술 이기에~ 그러나 그래서 산다 말씀으로. 다시 하늘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 갑자기 아세르 지파가 나온다. 저주의 시메온 지파(나)가 구원의 아기(말씀)로~ 축복의 아세르 지파로 넉넉한 양식(창세49,20), 곧 충만한 구원의 양식(제물-예수)을 드리게 된 것을 성경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분의 영혼과 신성을 구원의 제물로 드리게 된 것이다.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 남편과 일곱(7) 해를 살았고 혼자 일흔 일곱(77) 해를 살았으니(7+77=84) 전 생애를 7,77로 하늘의 용서로 안식을 살았다는 것이다. 시메온(나)지파가 구원의 아기(말씀)로 아세르 지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18,22)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7)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77)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오늘 구원의 아기,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 나자렛(망루), 나즈르인(하느님의 사람)의 삶으로~ 주님과 하나, 한 몸 되는 그 완성의 때, 그 날까지~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자세로, 하느님의 뜻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1코린7,24) 24 형제 여러분,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하느님(말씀)과 *함께 지내십시오.

= 말씀으로 자기 부서짐, 자기 부인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참 평화이다.~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아멘!!!

*묵주기도 환희의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

오늘 말씀을 성령께 의탁하는 기도로~ 부모님의 아프신 마음을 주님께 의탁하는 진심된 마음으로 바친다면 恭敬입니다. 또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공경하여 죄를 용서 받읍시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을 위하여 간구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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