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신부 "십자가를 진 자만이 천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2012년 03월 05일 (월) 09:46:17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한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밀알과 성체의 신비가 도움이 될 것이다.
밀알의 신비: 남을 살리기 위해서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 이 얼마나 벅찬 복음인가? 부활신앙은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입니다”(1요한 3,1)라고 고백하게 한다. 이는 죽으면 할 수 없는 고백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여기서 이미 우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셨다.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셨다. 부활을 믿는 자는 이승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승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봉사하게 한다. 부활을 믿는 자는 섬기기 위하여 세상을 산다.
성체의 신비: 성체는 영생의 신비를 깨우쳐준다. 그리스도의 몸은 쪼개지면서 우리 몸속에 들어와 완전히(영원히) 사라진다. 그분은 사라짐을 통하여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한 몸이다. 이를 깨닫는다면, 부활을 믿는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영원히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
무너진 틈새의 빛을 따라 하느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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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갈라지는 체험과 함께 그분은 만물의 속으로 들어가 만물의 마음을 체험하셨다. 겉을 가를 때 사물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가름을 방해하는 것은 부와 힘과 명예 등이다. 이것들에 대한 집착이다. 그 마음을 가르고 가난한 자, 고통을 당하는 자, 감옥에 갇힌 자, 우는 자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
하늘이 갈라지는 체험을 하신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마르 15,38). (마태오와 마르코와는 달리 루카는 숨을 거두시기 전에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기록한다. 루카 23,45-46)
성전은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사제와 일반인을 구분하던 휘장이 찢어졌다. 이로써 거룩한 대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속된 사람도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성과 속,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놓는 벽이 무너졌다. 이 무너진 틈새의 빛을 따라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났다. 하느님의 생명이 온 누리를 덮게 되었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인류에게 부활의 삶을 사는 길이 열렸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부활의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유다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갈라놓는 마음을 찢어라. 모두를 가슴에 안아라. 안지 못하는 마음을 찢어라. 이웃과 원수, 성과 속, 선과 악을 가르는 마음을 찢고 그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라. 그들 안에 와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찢음을 죽고 난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18-21)
마르코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한 백인대장을 마음을 찢어 그리스도에게 처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으로 내세운다. 백인대장의 고백은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이 아니라 사형을 집행한 백인대장이 자기가 죽인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이방인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찢어진 성전 휘장 틈새로 비추는 빛을 체험하며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라고 고백한다. 수석 사제들이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마르 15,31)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성전 휘장을 찢으며 이방인이 당신의 생명을 체험하게 하셨다. 이 이방인이 이제 당신의 죽음을 확인하며(15,44-45) 부활을 증언한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오류 중에 하나는 부활을 십자가를 내려놓은 상태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진 자만이 천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구경꾼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향하여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구나.”(마르 15,31) 라고 조롱하며 던진 말에 그분의 삶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분은 남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존재를 죽음에 붙이셨다. 사람들은 십자가가 남을 살리고, 십자가에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을 몰랐다. 남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만 부활하여 행복을 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분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4-35)
*이 글은 이제민 신부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필자가 다시 보완정리한 글입니다.
이제민 신부/

마산교구 소속으로 1980년 사제품, 1986년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거쳐 구암천구교회와 반송천주교회에서 본당 사목을 하고, 지금은 마산교구 명례성지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교회-순결한 창녀', '하느님의 얼굴', '우리 아버지', '녹지 않는 소금', '교회는 누구인가?', '우리가 예수를 사는 이유는?', '사랑이 보일 때까지',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 '그분처럼 말하고 싶다',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내 안에 그리스도가', '제3의인생-수동의 영성', '말은 시들지 않는다', '만남 속으로'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