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2017. 6. 8. 오전 8:23:02

글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다음의 글은 도서출판 "두루마리"에서 펴낸 「다시 보는 성경」에 있는 글입니다. 무단으로 복제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 기초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요, 너희가 여전히 너희의 죄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고전15:17).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신성"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섯 번에 걸쳐서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것과 장사될 것, 그리고 삼일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12:39-40; 20:17-19, 26:30-32; 눅18:31-33; 요2:19-22).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주장하신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권능 있게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자리를 취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사실이 성취된 것인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죄인이 선고받은 대로 자신의 형량을 모두 채우게 되면, 어느 누구도 그를 더 이상 그 곳에 감금시켜 놓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삼일동안 무덤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가 차자 하늘과 땅, 또 지옥에 있는 어떤 권세도 그분을 거기에서 단 한 순간도 더 붙잡아 두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 24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켜 세우신 것은, 사망이 그분을 붙들고 있을 수 없었음이라." 시편기자도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시16:10; 행2:29-32참조). 결국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썩어짐이 이르게 될 네 번째 날이 되기 전에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을 정복했음을 증명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팟모섬에서 요한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께서는 "나는 살아 있나니, 죽었던 자였으나 보라, 내가 영원히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계1:18)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망이 거대한 돌무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썩어짐이 그를 붙잡아 놓을 때까지 그를 가두어 두라. 만일 그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지옥의 벽에 구멍을 낼 것이고, 그 구멍을 통해서 지옥의 모든 포로들이 다 빠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망은 결코 그리스도를 사로잡아 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정복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11:25).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 때, 그분은 "죽음을 폐기하시고 '생명'과 '불멸'을 밝히셨습니다"(딤후1:10). 그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몸의 부활에 의해 죽음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롭게 되도록 준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더 이상 죽음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계21:4). 이러한 까닭에 무덤은 예수님을 붙잡아 둘 수 없었고, 우리들도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주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그분께서 너희 안에 거주하시는 그분의 영에 의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11). 다시 말해서 우리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성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서는 어떠한 의문의 여지도 없습니다. 복음서의 네 명의 저자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코 죽음은 그분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의 뜻에 따라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내게는 생명을 내어놓을 권능도 있고, 다시 취할 권능도 있으니"라고 요한복음 10:17,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요19:33). 그리고 백부장은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막15:43-45).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창에 찔림으로 인해 죽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병사가 자신의 창을 예수님의 옆구리에 찔러 넣었을 때 물과 피가 쏟아졌으며, 이 사실은 그 창이 그분의 심장을 관통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요19:34).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했다 하더라도 그분은 자신의 머리를 둘러맨 수건에 의해 질식되어 죽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그분의 몸이 비밀스럽게 무덤으로부터 옮겨질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것이 확실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무덤은 봉해졌고 로마 병사들 중에 근위병 하나가 그것을 지키도록 배치되었습니다(마27:62-66). 그러나 로마 병사들 이외에 무덤을 지키는 또다른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안식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 밤이 지나 최초의 부활의 날 아침에 하늘은 동쪽에서 자줏빛으로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땅에 큰 울림이 있었고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려냈으며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마28:2-4).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려낸 것이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오시게 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무덤이 비어 있다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아리마대 요셉의 그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목격한 증인들은 많이 있었으나, 그분의 부활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이 무덤으로부터 나오시는 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병사들 역시 그분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돌이 옮겨지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마치 죽은 사람들과 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자들이 밤을 틈타 병사들이 자는 동안 예수님을 도둑질해갔다는 이야기는 얼핏들어도 터무니없는 말입니다(마28:11-15). 왜냐하면 로마 병사가 근무 중에 잠을 자는 것은 사형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모두 잠을 잤다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맞았는지 아니면 그분께서 부활하셨는지, 또 도둑맞았다면 누가 그 일을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봉인을 깨고 돌을 굴리는 일은 매우 시끄러운 작업이었을 것인데, 만일 병사들이 잠이 들었다해도 그 소리로 인해 그들은 잠에서 깨어났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날은 달빛이 밝은 날이었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왔던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 성읍 주위에 장막을 세웠었을 텐데 그들의 눈을 피해 예수님의 시체를 운반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도둑맞았다고 대제사장이 믿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찾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체를 되찾게 되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도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제적인 부활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증거는 사도 요한의 진술에서 나타납니다. 그와 베드로가 빈 무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몸을 쌌던 아마포가 그분의 몸이 눕혀져 있었던 평평한 돌 위에 있었다고 증거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 와서 돌무덤에 들어가 보니, 아마포들이 놓였고, 또 그분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아마포들과 함께 놓이지 않고, 싼 채로 한쪽에 따로 놓였더라"(요20:6-7). 즉 예수님의 옷은 무덤 밖으로 내던져지지도 않았고 버려진 것처럼 한쪽에 내동댕이쳐지지도 않았으며, 장례식에 쓰이는 향료에 의해 뻗뻗하게 속이 빈 누에고치처럼 평평한 돌판 위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수건은 몸에서부터 머리의 길이만큼 떨어져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실 때, 마치 메뚜기가 껍질을 벗고 나오듯이, 수의 속에서부터 나오시며 수의를 그대로 남겨두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이 도난 당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뒤에 자신의 옷들을 남겨 놓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분의 몸이 도난 당했다면 도둑들은 그분의 수의를 벗기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며, 만일 어떠한 이유로 수의를 벗겼을지라도 그들은 그 옷들을 가지런히 남겨놓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이 그분의 몸을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날 아침, 제자들 모두가 주님께서 부활하시는 것을 보기 위하여 무덤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자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슬픔으로 인하여 그것을 잊어버렸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제자들 중 단지 몇몇 여인들만이 그날 아침 무덤에 갔고, 그 이유도 단지 예수님의 죽은 몸에 향료를 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근위병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가 무덤의 돌을 굴려줄지 궁금해했기 때문입니다(막16:1-3). 우리는 이제 그들의 불신에서 지혜를 보게 됩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 주위에 있었다면 그들이 그분의 몸을 훔쳐갔다는 혐의가 더 그럴듯하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들의 부재와 불신앙 자체가 그같은 혐의가 틀렸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부활 이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보았습니다. 수주나 수개월이 지난 것도 아닌, 바로 그분이 부활하신 그날에 말입니다. 만일 무덤에 있었을 때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었다면,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그 무덤에서 탈출하셨다면, 그분께서는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를 지닌 채 육체적으로 녹초가 된 비참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께서는 건강하셨고 자신이 일어나신 날 오후에 자신의 제자들 중 두 명과 함께 엠마오까지 약 10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적은 생명과 건강으로의 회복, 이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날에 다섯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요20:11-18), 그 다음에는 여인들에게(마28:9-10), 그 다음에는 베드로에게(눅24:34), 그 다음에는 늦은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눅24:13-35),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녁에 다락방에 있는 수명의 제자들에게(요20:19; 눅24:36-48)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주일 후 같은 다락방에서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20:24-29). 나중에 그분은 갈릴리 해변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요21:1-25), 그 후에 갈릴리에 있는 산 위에서 일곱 명의 사람들과(마28:16-20), 500여 명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고전15:6). 그 후 야고보에게 보이셨고(고전15:7),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신 후, 올리브 산으로부터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 가셨습니다(눅24:50-53).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후 27년이 지나서 기록된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그분을 일시에 보았던 500명의 증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속임을 당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만일 그들 사이에 이 속임수를 영원히 합리화하려는 공모가 있었다하더라도, 그들 모두가 그 비밀을 지키거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고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등 자신의 원수들에게는 나타나시지 않으셨는가?"라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할 때까지는 자신을 다시 보지 못하며, 그들이 자신들이 찔렀던 그분을 다시 보게될 때, 즉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자신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분은 자신의 가장 큰 원수들 중의 한 명인 바리새인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부활 후 66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는 팟모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증인들의 증거들을 통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증거는 그분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적들로부터도 나온 것이며, 속임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도록 공개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지 의식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더 확실한 증거는 그분께서 다시 죽지 않고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19세기 동안 로마 병사들의 '헛된 이야기', 곧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것만이 서기 30년 4월 9일 일요일 아침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빈 채로 발견되었다는 그 기적적인 사실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었습니다. 반면에 지나간 수세기 동안 가장 고상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의 무게를 달아보았고, 그 결과 그것이 정말 흠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에 관한 한 요한과 다른 복음서 저자들 사이에 어떤 의견의 차이도 없습니다. 새벽에 다른 여인들과 함께 마리아는 그 무덤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돌이 굴려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마리아는 다른 여인들을 떠나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려고 급히 되돌아갔습니다. 그녀가 가버리고 난 후 다른 여인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고 말하는 흰 옷 입은 젊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했습니다(막16:4-7). 그들은 즉시 그 무덤을 떠나서 제자들에게로 갔습니다. 그 동안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고 그들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황급히 그 안을 살펴본 후, 그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요20:3-10).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이 떠난 이후에 무덤으로 되돌아 왔고 자신만 남은 것을 발견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셔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즉시로 그녀는 주님을 알아보았고 그분을 만져보기를 원했으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나의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가서 형제들에게 말하라고 명하신 후 사라지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즉시 무덤을 떠났습니다. 조금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다른 여인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모두 화평하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그 위에 자신들의 손을 올려놓고 경배했습니다(마28:9-10). 우리는 즉시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는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다른 여인들에게는 그것을 허락하셨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답변은 예수님께서 그 동안에 빛의 속도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되돌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희생단 위에 속죄의 피를 드린 후 그 피를 지성소로 가져가 속죄를 드리기 전에 어떤 사람이 그를 만지면, 그 희생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피를 드리셨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피를 드리기 전에 마리아가 그분을 만졌다면 십자가의 사역이 무효화되었을 것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발을 잡은 사실, 그날 오후 수 마일을 걸어서 자신의 두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신 사실, 저녁에는 구운 물고기 한 쪽과 벌집을 드신 사실, 일주일 후에 도마에게 말씀하셔서 그의 손을 자신의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신 사실 등 그리고 얼마 후에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해변에서 아침을 드신 사실 등,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유령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형체를 가졌고 인간의 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비록 예수님의 몸이 변화산 위에서처럼 영광스럽게 된 몸은 아니었지만, 닫혀진 방에 들어가고 의지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을 알려주기까지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앞으로 우리의 부활할 몸이 그 능력 면에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잘 시사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께 대한 제자들의 전체적인 태도를 바꾸어 버렸고, 그들의 삶에 완전한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들의 설교의 중심주제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표준은 "이집트 탈출"(출애굽)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능력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의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십자가 위에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셨으며, 또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행26:8)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서 우리는 주님의 첫날(주님의 날)을 준수하고 침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신 것이 아니며, 모세 율법의 표시로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것이었습니다. "너는 또한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참으로 지킬지니 이는 너희 세대에 걸쳐 나와 너희 사이에 표적임이라"(출31:13; 겔 20:12, 19-21참조). 안식일은 유다인들에게만 속한 것이며, 이방인들(세상)과 교회(그리스도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다민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이나 백성들에 대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꾸짖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유다인들의 규례인 안식일은 결코 일주일 중의 다른 날로 바뀐 적이 없으며 다른 민족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그런 날로 된 적도 없습니다. 안식일은 호세아서 2:11에서 예언된 것처럼 현재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어 있으며 유다인들이 민족적으로 그들 자신의 땅으로 되돌아 갈 때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사66:23; 겔44:24, 46:1-3). 기독교회가 안식과 경배의 날로서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주의 첫날에 모이는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또 하나의 증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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