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2013. 9. 19. 목)<겸손, 감사>(루카 12,15-21)

2013. 9. 19. 오전 5: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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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2013. 9. 19. 목)(루카 12,15-21)

 

<겸손, 감사>

  

어떤 부유한 사람이 많은 소출을 거두어서 더 부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의 많은 재산을 쌓아 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길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0-21)."

 

그 부자의 첫 번째 잘못은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기가 부유하다는 것과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는 것에 대해서 가장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렸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두 번째 잘못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잘나서(자기의 능력이 좋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잘못은 이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잘못은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먹고 마시며 즐길 생각만 했다는 점입니다.

몸만 생각하는 사람은 몸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부유한 왕이었습니다(1열왕 10,23).

그러나 그의 지혜와 부귀영화는 전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1열왕 3,10-14).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버지 다윗이 걸은 것처럼, 내 앞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바르게 걸으며,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실천하고 내 규정과 법규를 따르면, 나는 너의 왕좌를 이스라엘 위에 영원히 세워 주겠다(1열왕 9,4-5)."

"그러나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나에게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계명과 규정을 따르지 않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예배하면, 나는 내가 준 땅에서 이스라엘을 잘라 버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버리겠다(1열왕 9,6-7)."

 

구약성경에는 솔로몬이 많은 왕비와 후궁들 때문에 타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1열왕 11,3-4), 그것보다는 자기의 지혜와 부귀영화에 대해서 교만해진 것이 타락의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교만은 하느님의 은혜를 잊게 만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기는커녕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1열왕 11,5-8).

젊었을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왕이었지만 늙어서는 그 지혜를 모두 잃었습니다.

그리고 부귀영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둔 일이 나중에 왕국 분열의 원인이 되었고(1열왕 12장),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됩니다.

결과를 보면 그의 부귀영화는 아주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솔로몬의 영화는 들꽃 한 송이보다 못하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루카 12,27).

우리는 흔히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전체 생애를 생각하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왕입니다.

 

다시 복음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느님께서 부자에게 경고를 하신 시각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오늘 밤'이라는 말은

회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여유를 주셨음을 뜻합니다.

('지금 즉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 여유는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시간 여유는 회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라는 말씀은 확정된 결과를 예고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되찾아 갈 것이다.' 라는 말은 사람의 목숨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라는 말도 재물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겸손하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일은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으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2코린 9,10-15).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산의 관리인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재산을 남들보다 더 많이 맡기셨다면, 그것은 남들보다 더 많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송영진 모세 신부

 

 

 

 

<탐욕>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3-15)
어떤 사람이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예수님께 와서 하소연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산 분배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그런 세속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죽은 이들의 일은 죽은 이들이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루카 9,60).
세속의 일은 세속의 법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동생이 아니라 형을 겨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산을 나누어 받기를 바라는 것이 탐욕이 아니라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 차지하는 것이 탐욕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라는 말씀은,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다.' 라는 뜻인데, 돈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라는 말씀은 하느님보다 돈을 더 믿는 부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난해도 돈만 밝히면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더 좋은 병원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아서 더 건강하게 살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가난해서 약도 못 사고 치료도 못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의 생명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그 문제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19-20)"
어리석은 부자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으로 즐길 생각을 했다는 것은 자기가 최소한 '여러 해'를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단 하루'의 여유도 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처지입니다.
모든 것을 손에 쥔 절대 권력자들도 죽음 앞에서는 하루살이와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의학이 조금 더 발달했고, 평균 수명이 조금 더 늘어났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평균 수명은 평균 수명일 뿐이고, 그게 자기의 수명은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사는 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지금 어떤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의 경우에, 하느님께 다 맡기고 치료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진짜로 잘사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루카 12,21).
또 재산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루카 12,33)."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또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방법은 '믿음, 정의, 선,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래도 가난에 쪼들리고 궁상맞게 사는 것보다는 좀 더 품위 있고 여유 있게 살면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인데, '혼자서만'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이기심과 탐욕은 늘 짝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가난과 궁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배부르든지, 함께 굶든지...)
품위 있고 여유 있게 자기가 먼저 배불리 먹고 나서, 그 다음에 조금 남은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에게 주면서 생색내는 것은 위선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추석 명절미사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느님과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부모와 이웃에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명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합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부모, 형제, 친척,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사랑의 정을 키우는 날입니다.

아무쪼록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니 만큼 찬미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생명의 근원이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은에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부모에 대한 효의 실천은 세가지 양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첫째가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길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벼슬길에 올라서 부모의 이름을 드높여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고 효도함은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를 통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써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생이 계속됨을 믿었고 살아계실 때와 같이 가족공동체와 계속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죽은 이들을 계속 공경함으로써 효도를 이어가는 방법이며 결국 제사의 의의는 은혜를 갚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아무 마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예를 드리는 것은 신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이는 죄나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성균관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되셨는데 매스컴은 추기경님께서 과연 성균관의 예법에 따라 절을 할 것인가? 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서슴없이 절을 하셨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었다면 그게 우상숭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는 제사문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조상공경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우상숭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철폐하였고 이는 부모의 은덕을 망각하는 인륜을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무리라고 하여 천주교신자는 죽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939 128일에 이르러서야 교황청은 조상의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게 효성을 표시하는 미풍양속이며 민족의 훌륭한 유산이므로 수용해야 하고 토착화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신주 문제입니다.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는데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신주에는 조상의 혼이 마물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혼백()의 갈림길이라고 믿었고, 이 혼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데 떠돌아 다니게 그냥 두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혼이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주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때는 바로 그 신주를 모셨습니다. 신주를 모신 것은 돌아가신 이를 섬기기 위해서는 볼 수 있는 상이 필요했고 신주는 바로 돌아가신 이의 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돌아가신 이를 만나는 하나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영혼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9,27) 그리하여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연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 다닌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근본적으로 대치됩니다.

만약 죽은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면 세상은 난리판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허술한 하느님을 누가 하느님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주를 모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번은 제대 앞에 기억하는 분들의 이름을 달지 않았습니다. 바로 신주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음식을 잡수시러 온다는 사상과 조상들을 잘 공경하면 조상이 복을 준다는 사상은 바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아가신 분들이 음식을 잡수러 오시기 때문에 음식을 차렸다면 신앙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음식을 잡숫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못해드린 음식을 차려 대접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것이지 조상이 와서 잡숫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복을 주고 안 주고는 조상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을 부르고 음식을 차리고 거기에 복을 기원하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이 천상에 들지 않았다면 천상에 오르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천상에 계시다면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심을 믿습니다. 제사의 핵심은 효요,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제사는 무엇입니까? 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신 십자가의 죽음을 제사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시며 이 제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명하셨습니다. 명절에는 특별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천상의 영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 연옥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 하루빨리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미사는 바로 교회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세상을 떠난분들을 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미사봉헌을 하여 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유한 미풍양속인 제사를 봉헌하며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부모,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참고로 불교의 49재를 말씀 드립니다. 49재는 한마디로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 즉 불공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25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을 한 후 득도하여 48년간 설법을 하셨고 49년째에 세상나이 8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49라는 숫자가 중요하고 또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데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49재를 치르는 날 사이의 기간을 중유라고 하여 이 기간에 생전의 업에 따라서 다음세계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중생은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싸우다),아귀(다툼),지옥의 여섯 세계를 윤회하며 이 가운데 아수라, 아귀, 지옥을 삼악도라 하여 고통과 지옥으로 가득찬 세계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49재는 죽은 자가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비는 불공입니다. 49일째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9재 미사를 봉헌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명절귀신

 

 

 

명절 때 쫄쫄 굶은 조상 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귀신이 말했다.

 

“설날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

 

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진 조상귀신이 말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프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

 

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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