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5일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내 주님 메시아 (마르12,35-37)
제1독서<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2티모3,10-17)
사랑하는 그대여, 10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11 내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박해를 견디어 냈던가!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12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사람들과 협잡꾼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화답송시편119,157.160.161.165.166.168(◎165ㄱ) ◎ 주님,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가 넘치나이다.
○ 저를 뒤쫓는 원수들이 많사오나, 저는 당신 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
○ 당신 말씀은 한마디로 진리이며, 당신의 의로운 법규는 영원하옵니다. ◎
○ 권세가들이 까닭 없이 저를 박해하오나, 이 마음 두려운 것, 당신 말씀뿐이옵니다. ◎
○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 넘치고, 그들 앞에는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나이다. ◎
○ 주님, 저는 당신 구원을 바라며, 당신 계명을 따르나이다. ◎
○ 제가 가는 모든 길 당신 앞에 있기에, 당신의 규정과 법을 저는 지키나이다. ◎
복음<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마르12,35-37)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연중 제9주간 금요일 (2티모3,10-17)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15-17)
본문은 티모테오가 유대인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어려서부터'로 번역된 '아포 브레푸스'(apo brephus ; from a child)는 신약 성경에서 본문에서만 등장하는 매우 드문 표현이다. 특히 '브레푸스'(brephus)는 '어린 아이' 또는 '태중에 있는 아이'(루카1,41.44), '젖먹이', '유아'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티모테오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가 그에게 매우 어릴적부터 성경을 가르친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2티모1,5) 그런데 '어려서부터'라는 어구는 티모테오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생애 속에서 그가 성경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네가 ~알 고 있다'로 번역된 '오이다스'(oidas)는 본래 '알다'라는 뜻을 지닌 '에이도'(eido)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서, 진행 완료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성경'으로 번역된 '타 히에라 그람마타'(ta hiera grammata ; the holy scriptures)는 '구약성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티모테오가 어렸을 적부터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나 어머니 에우니케로부터 성경을 배웠음이 자명하고,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구약성경에 익숙해 있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바오로 사도 당시 어린 자녀들을 구약성경으로 훈육하던 유대인 가정의 관례와도 일치한다.
'구원을 얻는 지혜를 줄 수'
15절부터 17절까지는 성경의 영감과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매우 유명하고도 중요한 구절이다. 시편 19장 8절에도 "주님의 가르침은 안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라는 말씀이 있다. 시편 119장 98절에도 "당신의 계명이 저를 원수들보다 슬기롭게 만들었으니,그것이 영원히 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구약성경이 '구원을 얻는 지혜'를 제공하는 것임이 잘 드러난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라는 어구를 덧붙임으로써, 그리스도 없는 성경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란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보는 구약 성경만이 참된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본문은 성경 전체가 하느님의 감동, 즉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파사 그라페 테오프뉴스토스'(pasa graphe theopneustos ; all scripture is given by the inspiration of God) 에서 '테오프뉴스토스'라는 형용사는 한정적 용법이 아닌 서술적 용법으로 쓰였다. 성경 모두는 전부 하느님의 영광에 의해 기록된 것이며, 그 모두가 유익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 스스로가 말하는 성경의 자기주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된 '모든 성경'(파사 그라페)은 위의 15절의 '성경'(히에라 그람마타)과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차이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여기서 언급된 '모든 성경'의 범주에는 구약성경만이 포함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서들 곧 신약성경 역시 포함되는가?
거의 모든 학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성경의 범주에 "교회 안에서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교회에 의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된 모든 성경" 이 포함됨을 주장한다. 즉 이 말은 구약성경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가 '모든 성경'(성경은 전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구약성경의 정경화는 A.D.90년경 얌니아 종교회의 결정에 의해서이고, 신약성경의 정경화는 A.D.397년경 카르타고 공의회에 의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구약 성경의 권위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아 정경이 된 것은 단순히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경이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에 하느님의 말씀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정경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정경이 되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기서 정경(正經: canon)이란 일반적으로 신앙과 실천에 대한 권위있는 규범으로 인정한 "책들의 모음"이나 "목록"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교회가 인정하는 진짜 성경의 정전(正典)목록(canon biblicus/canonicus liber)을 말한다.
한편,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로 번역된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는 '하느님'(마태3,9)을 뜻하는 명사 '테오스'(theos)와 '(바람이)불다'(마태7,25;요한3,8), '호흡하다'란 뜻의 동사 '프네오'(pneo)의 파생어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본래 '하느님께서 호흡하시는'(God-breathed)이란 뜻을 지닌 것으로, 신약성경에서는 본문 이외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처럼,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명의 숨(생기)을 불어넣어 사람이 영혼이 깃든 존재가 된 것과 같이, 성경 역시 하느님의 호흡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처럼, 성경이 하느님의 감동(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은 성령께서 성경의 저자란 의미이다.
성령께서는 인간 저자의 존재를 압도하거나 그 인격을 말살하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 저자의 인격과 개성, 그리고 특성 및 처해있는 역사적 상황들을 고려하여 유기적으로 역사(役事)하신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제 1 저자가 성령이시라면, 제 2 저자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데 유익합니다'
이 구절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이를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유익성이 무엇인지 밝히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다. 바오로는 성경의 유익함을 네 가지로 제시하고 이다. 그 네 가지 중, 첫 두 가지는 교리적 요소와 관련되고, 나중 두 가지는 실천적 요소와 관련된다.
먼저 '가르치고'(교훈: teaching) 로 번역된 '디다스칼리안'(didaskalian)은 티모테오 전서 5장 17절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거기서 바오로는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애쓰는 원로들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명확하게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는 지적 활동으로서, 그리스도이 몸인 성교회의 건설에 기초가 된다.
또한 '꾸짖고'(책망: rebuking) 번역된 '엘레그몬'(elegmon)은 문자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교회의 건설과 성장을 훼방하는, 일체의 거짓 교설과 행위에 대해 심판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책망의 주된 대상이 에페소에 침투된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에게 집중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 다음, 성경이 주는 유익함 중에 두 가지 실천적 요소가 거론된다. '바로잡고'(바로잡음: correting)로 번역된 '에파노르토신'(epanorthosin)은 본래 '추를 바로 세우다'라는 뜻을 지닌'에파노르도오'(epanorthoo)의 명사형이다. '꾸짖고'(책망)가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보다 긍정적인면, 곧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여 교정하고, 옳고 곧은길로 향하도록 지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또한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의로 교육하기: instruction: training iin righteousness)로 번역된 '파이데이안 텐 디카이오쉬네'(paideian then dikaiosyne)에서 '파이데이안'은 '어린 아이의 훈육'과 관련된 표현으로, '훈련'(교육)이란 뉘앙스를 더 많이 함축한다. 또한 '디카이오쉬네'는 법률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엄격한 정의'라는 뜻을 함축하기 때문에,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다'(의로 교육하다)라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표준으로 삼는 한에서, 그리스도인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신구약 성경은 상기에 제시된 활동, 곧 교리적인 면에서건 또는 실천적인 면에서건, 유익함을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instruction) in righteousness)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17절이 16절에 언급된 네 가지 유익함이 지향하는 목적 혹은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임을 드러낸다. 즉 성경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번역된 '호 투 테우 안트로포스'(ho tu theu anthropos)는 티모테오 전서 6장 11절에서도 나오는 표현인데, 이것이 구약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의 예언자들'(선교사들)에게 적용된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모든 신도들 중에서도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특별한 '그리스도교 교사들'이 가장 큰 대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당시 에페소 교회에 침투하고 활동하고 있던 거짓 교사들, 곧 '사탄의 일꾼들'과 명확하게 대비된다.
한편, '유능한 사람이 되게'로 번역된 '아르티오스'(artios)는 본래 '적합하다' 라는 뜻을 지닌 '아로'(aro)에서 파생한 형용사로서, '특별한 적응된', '완전히 적합한' 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또한 '능력을 갖춘'으로 번역된 '엑세르티스메노스'(eksertismenos)는 본래 '충분히 공급하다'라는 뜻을 지닌 원형 '엑사르티죠'(eksartizo)의 완료 분사형으로, 앞서 언급한 '아르티오스'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강한 뉘앙스를 함축한다. 즉 그것은 온갖 선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제 종합하면,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주요한 네 가지 유익, 즉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움으로 교육하는 데 있어 유익함을 제공하고'(16절),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교회를 세우는 그리스도인 교사들을 그 사명에 '적합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며, 나아가 교회의 건설과 성장을 도모하는 온갖 선한 봉사들에 힘쓸 수 있는 '준비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복음(마르12,35~37)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36~37)
여기서 '성령의 도움으로'에 해당하는 '엔 토 프뉴마티 토 하기오'(en to pneumati to hagio; by the Holy Spirit)에서 '엔'(en; in; by; with)은 장소나 도구를 나타내는 전치사이기에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보통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말로 의역도 되는데,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적으로 기록한 시편 110장 1절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꼐서 내 주님께'에 해당하는 '퀴리오스 토 퀴리오 무'(kyrios to kyrio mou; The Lord to my Lord)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예흐와 라도니' (yehwa ladoni), 즉 '야훼께서 내 주께'로 되어 있으며, 새 성경에는 '주님께서 내 주군께'로 번역되어 있다.
유다인들은 '야훼'라는 이름을 나타내는 4개의 문자를 거룩한 문자로 성별(聖別)하여 함부로 쓰거나 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야훼'로 기록된 부분을 읽을 때는 그 음을 직접 읽지 않고 '아도나이'(adonai), 즉 '주'(主)로 읽었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구약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은 시편 110장 1절의 본문을 '주님께서 내 주님께'(주님께서 내 주군께)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새 성경에서 앞의 '주님'은 '야훼 하느님'을, 뒤의 '주님'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1인칭 소유격인 '내'에 해당하는 '무'(mou; my)는 시편 110장의 저자인 다윗을 가리킨다.
이처럼 다윗이 자기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불렀다고 하는 것은 다윗 자신도 그리스도의 인간적 계보에 연연하지 않고, 신적(神的) 계보 즉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성(神性)을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마르코 복음 12장 37절의 '다윗 스스로'에 해당하는 '아우토스 다위드' (autos David; David himself)에서 '스스로'로 번역된 '아우토스'(autos)는 마르코 복음 12장 36절과 마찬가지로 '친히', '그 자신이'라는 뜻을 지닌 재귀대명사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스스로' 그리스도, 즉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주님'으로 고백한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신다.
다름아닌 다윗 스스로가 '주님'으로 부른 대상이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반문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메시아되심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오해를 날카롭게 꼬집고 계신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적 명칭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통해 여러 번 불리워졌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주(主)가 되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에, 이것을 분명히 정리해 주시는 것이다(로마1,3.4; 마태1,1; 요한8,58; 요한1,1참조).
2026년 06월 05일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어제 복음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성전은 딱딱한 돌과 제도의 공간이지만, 아울러 군중의 숨결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이 출렁이는 광장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신학적 질문을 던지십니다. ‘율법 학자들이 말하는 메시아, 곧 다윗의 자손’이라는 통념을 출발점으로 삼으시면서도, 그것을 해체하시고자 물으십니다.
‘메시아’는 단순히 ‘기름부음받은 이’라는 종교적 표지가 아니라, 다윗의 약속에(2사무 7장 참조) 뿌리를 둔 정치적 종말론적 희망이 응축된 이름이었습니다.
유다 전통은 그가 왕조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이 전통을 부정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시편 110(109)편 1절을 인용하시며 물으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다윗이 메시아를 “내 주님”(마르 12,36)이라 부른다면, 어떻게 메시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다시 묻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을 넘어, 다윗보다 위에 놓여야 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 물음으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새로이 보게 하며, 유다 전통에만 머물러 메시아를 기다리고 희망하는 무뎌진 믿음에 경종을 울립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우리에게도 물음을 남깁니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예수님의 이미지 또한 너무 작지는 않은지요.
인간의 생각과 습관과 상식 안에서 그저 우리의 기대와 욕구를 채워 주시는 존재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넘어 ‘주님’으로 다가오십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은 성전의 돌기둥 사이에서, 한 칭호가 무너지고 더 큰 이름이 열리고 있음에 기뻐합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 또한 날마다 낡고 굳어진 것을 비워 내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더 깊고 넓은 신앙의 고백은 우리의 좁고 편협한 언어를 허무는 데서 시작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9주간 금요일]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
(마르12,35-40)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 병행복음으로 보면 마태오복음은 바리사이들, 루가복음은 사람들이라 전한다. 그러니 성전 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씀이다.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시편110,1)’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그 부분을 (로마1,3-4)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피조물), 그의 육을 통해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늘의 영이신 그리스도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성자 하느님이신 당신께서 어떻게 피조물의 자손,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피조물들과 하나(한몸)가 되시기에 육을 통해(입은)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육의 자손일 뿐, 영의 후손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곧 피조물의 인성의 아들이지 신성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성령의 귀로 알아들어라)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자 한 것이다.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나탄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우리가 심겨 져야할 그 자리, 그 한곳이 그리스도이시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곧 십자나무의 대속, 예수그리스도 이시다. 그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불안 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불의한 자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곧 뱀의 말(선악)을 먹은 사람들, 그들의 선악의 논리, 그 심판이 주는 죄와 죄의식, 그 모든 불의에 괴롭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죽음, 피, 그 구원의 새 계약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다 씻겨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히브6,16-19)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심을 말씀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우윗 시대의 육의 구원, 곧 육적 영화를 위한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죄인들을 구하려 오신 것이다. 우리의 소원, 뜻을 들어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죽으러 오신분이 아니다.
*이 모든 말씀을 기쁘게 받아 드렸는지, 오늘 본문(37절)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고 전한다. 순간적, 일시적 기쁨이다. 병행 마태복음은 그들은 한마다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본문 다음 구절에서 율법학자(사람)들의 그 선악의 그릇된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래서 대신 심판을 십자가로 받으신 그 주님을 진리로 믿지 않는 것이 죄, 불의이다. 그런데 선악의 논리, 그 인간들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준다면 하늘의 용서, 자유, 구원이 없는 그 헛된 신앙으로, 과부의 삶을 살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38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 긴 겉옷,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의 옷이시다.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 윗자리-권위의식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래서 구원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 그분의 뜻을 깨닫지(낳지) 못한 것이 과부, 고아이다. (그래서 성경에 과부, 고아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 곳, 십자가. 그 새 계약이다.
(예레31,31-32)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율법- 제사, 윤리)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 새 계약- 대속(피), 그리스도이시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그 한가지 일만 말씀하셨다. 교회 에서도 그 새 계약, 그 한가지만을 전해야(말해야)한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 성령께서 보이는 문자,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낳아) 하신다.(요한14,26) 성령께서 제사와 윤리, 그 법의 신앙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구원릐 진리, 구원의 새 계약으로 증언하시며 가르치신다. 그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하늘의 용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이 모든 말슴을 받지 못한 것이 과부이다. 그 과부들에게 새 계약을 주지 못하고 계속 제사와 윤리로 열심한 신앙을 살게하는 것이 과부를 등쳐먹는 것이다. (내일 복음과 연결됩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