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토요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 (요한11,45-56)

2026. 3. 23. 오전 6: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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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8일 토요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 (요한11,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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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에제37,21-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화답송>예레31,10.11-12ㄱㄴ.13(10)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복음<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요한11,45-56)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52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에제37,21ㄴ~28)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1ㄴ~22)

 

에제키엘서 37장 21ㄴ절, 22절은 남북 선민의 본토 귀환과 통일 국가 형성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중 37장 21ㄴ절은 하느님께서 남부 유다 백성들을 바빌론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에제키엘서 37장 21ㄴ절은 에제키엘서 36장 24절에서 언급된 것과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단어들도 거의 비슷하게 다시 사용하고 있다.

 

에제키엘서 36장 24절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고, 에제키엘서 37장 21ㄴ절은 하느님께서 바빌론 유다 공동체에게 어떻게 말할 지를 가르쳐 주신 내용이기 때문에 주어와 목적어의 인칭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에제36,24)

 

또한 회복된 남부 유다 백성을 우상 숭배 등의 죄에서 정결하게 할 것이라는 에제키엘서 36장 25절의 내용이 에제키엘서 37장 23절에 거의 동일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에제36,25) 

이러한 유사성은 여기서 거듭 제시되는 내용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에제키엘서 37장 21ㄴ절에서 사용되는 주어는 '주 하느님'으로 되어 있는데, 관심을 촉구하는 표현 '힌네'(hinne; behold; '보라')로 시작할 뿐만 아니라 주어를 특별히 강조하는 1인칭 대명사를 '아니'(ani; '내가')가 사용되고 있다. 

즉 인도하고 모으고 돌아가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전능하신 주 하느님이심을 강조하면서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본절에서 사용된 표현들 중에서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사방에서'라는 표현은 선민이 처한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선민이 마땅히 있어야 할 삶의 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들의 땅으로'에 해당하는 '아드마탐'(admatham; their own land)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땅'(그들이 소유한 땅)이라는 의미로서 그들이 마땅히 차지하고 있어야 할 곳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결국 이러한 표현은 한편으로 그들이 본래 있어야 할 삶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서, 하느님의 절대적 구원으로 다시 본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것은 그들이 쫓겨나게 된 원인을 상기시키는데, 이어지는 에제키엘서 37장 23절에서 이렇게 선민의 삶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없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정결 회복과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 예언된다.

 

에제키엘서 37장 22절에서는 단순히 고국에 돌아가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역사가 바로 잡아져서 통일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예언된다. 즉 하느님께서 선민에게 베푸실 회복은 단순히 과거에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것이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회복의 면모는 에제키엘서 37장 25절의 '자자손손이 영원히', '영원히', 에제키엘서 37장 26절의 '영원한 계약'에제키엘서 37장 28절의 '영원히'라는 표현에서도 거듭 강조된다.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22) 

에제키엘서 37장 21ㄴ절에서 흩어진 남부 유다 백성이 바빌론으로부터 해방되어 고국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을 다룬데 반해서, 에제키엘서 37장 22절은 그들이 고국 땅에서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나뉘지 않고 한 민족, 한 나라를 유지할 것이라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에제키엘은 한 민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한 임금에 대해서도 강조하는데, 이것은 에제키엘서 37장 24절 이하의 내용에서 나오는 다윗 왕으로 상징되는 왕, 즉 메시야가 다스리는 메시야 왕국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내용에서도 언급된다.

 

에제키엘은 이러한 온전한 하느님 나라의 회복을 강조하기 위해 에제키엘서 37장 22절 상반절에서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세워지고 한 임금이 다스리게 될 것임을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후반절에서 절대로 두 민족으로 나뉘거나 두 왕국으로 갈라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같은 의미의 내용을 긍정문과 부정문으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그들을 ~ 만들고'에 해당하는 '웨아시티 오탐'(weasithi otham)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으로 만들 것이다' (and I will make them)가 된다. 즉 하느님이 주어이고 선민들이 목적어가 되어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측면이 보다 강조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산악 지방에서'로 번역된 '뻬하레'(behare; on the mountains of)의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산'은 공권력이 잘 미치지 못하는 곳이며 우상 숭배의 자리로 언급되는 곳이고, 북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바로 '산'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서 원문상 복수로 되어 있는 '모든 산에서'에 해당하는 표현은 결국  이스라엘의 구석 구석까지 조금도 반역의 기운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고도 철저한 신정(神政)통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신정(神政)왕국이 세워졌던 때가 이스라엘 역사에 결코 없었지만, 그때 가장 근접하다고 할 수 있는 때가 다윗 임금의 통일 왕국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가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영토 아래 통일 국가를 이루어서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느님을 진정한 왕국의 통치자로 섬기던 때였다. 따라서 회복된 새로운 시대의 왕을 다윗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에제37,24).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뒤(11,38-44 참조) 최고 의회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궁지에 몰리십니다.

죽은 이를 살리신 분께서 반대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위기에 놓이셨습니다.

수난 이야기의 역설적 전개는 라자로의 부활 사건과 오늘 복음이 연결됨으로써 부각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곧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신 사건을 본 유다인들의 반응은 서로 다릅니다.

일부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다른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바리사이들에게 보고합니다.

이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최고 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흔드는 세력을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메시아의 기적을 행하는 인물이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두려워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대립 관계에 있는 로마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무능력한 지도자들을 꾸짖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지만, 복음서 저자는 그의 말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올 결과를 예고합니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분명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널리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대사제 카야파의 말에 따라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오늘 복음 속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앞에 두고 민족주의적 유익만을 계산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는 지금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정진만 안젤로 신부)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일은 하느님께서 하신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요한11,45-55)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 그들은 무엇을 보고 믿게 되었을까?.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 냄새나는 라자로를 살리신 일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부터 하신다.

(요한11,42-44)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라자로의 육의 살아남은 죄인들의 용서, 부활이 모형인 것이다. 보이는 육의 살아남에 그 기적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라자로, 그의 肉은 다시 죽을 몸이지 않은가) 썩어 냄새나는 라자로를 말씀으로 살리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임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죽은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11,25-26)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 보이는 것을 믿고 의지 하려는 것은 사람을 완고하게 한다.

 

(야고3,14-15)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티토3,3-5)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사랑)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말씀)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 십자가 대속의 예언인 셈이다. 구원의 기쁜소식(GoodNews), 곧 복음의 예언이다.

 

(로마5,19)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믿는다면~

(로마1,16)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인, 세상 모든 이들을 지칭한다.

 

(1코린1,24) 24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콜로3,11)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믿지 못하면~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 오늘날은 파스카 예식에 참석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는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정결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히브10,22)

우리의 구원, 용서를 위한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통해 하신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나의 불가능, 그 자기 부인, 비워짐으로 얻는 구원, 용서다.

 

☨은총이시며 사랑이신 천주 성령님! 우리 모두를 비워짐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의탁합니다. ~아멘.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요한11,45~56)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49~52)

 

요한 복음 11장 49절과 52절은 '그해의 대사제', 즉 예수님의 처형이 논의되었던 그 시점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산헤드린 최고의회의 의원들에게 한 말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간의 의논은 분분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카야파가 나선 것이다. 

카야파는 먼저 그들이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하였다. '여러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You know nothing at all)라는 그의 말에 최고 의회 의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모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내노라하는 지성인들인데, 이와 같이 '무식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카야파는 현안 문제를 일사분란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그들의 정책적 대안 부재를 질책했던 것이다.

 전임 대사제 안나스의 사위이자 후계자로서 18년 동안(A.D.18~36년) 대사제 직책을 행한 카야파가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특권을 잃고 싶지 않았고, 설사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따르고자 하지 않았다. 종교든, 국민이나 국가를 빙자하든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두가이의 수장인 대사제가, 3년 내내 주로 예수님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바리사이들을 대신하여 서서히 최종적인 박해의 주체로 나타난다. 

대사제 카야파는 왜 시원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지 그 문제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당시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유익하고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태생 소경이 치유되며,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퀄퀄나는 나자로를 살려내시는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백성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였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유익할수록 상대적으로는 산헤드린 최고 의회에게는 불리한 존재였다. 예수님의 존재는 자신들의 지배와 기득권적 지위, 가르침과 권위 등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반을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할 생각을 하니 명분이 없고, 예수님 편에 서서 명분을 존중하자니 자신들의 재 기반이 위험했다. 이것인 당시 산헤드린 최고 의회의 딜레마였다. 

이에 대해 대사제 가야파가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린 것이다. 

첫째, 그가 내린 처방의 요지는 철저하게 산헤드린 최고 의회의 유익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 의회는 백성들의 유익이나 필요를 고려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또한 무죄하신 예수님을 희생시켜야 하는 데 따르는 양심의 가책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그것은 의외로 간단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장에는 백성들에게 큰 호응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이러한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은 결국 로마인들을 자극하여 민족적 멸망을 자초하게 될 위험한 인물이다.  

예수님깨 대해서는 이렇게 치부만 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하고 나면 다음의 일들은 쉽게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복음 11장 50절의 '위하여'로 번역된  전치사 '휘페르'(hyper; for)가 소유격을 지배할 때는 '위하여'라는 뜻도 있지만, '~대신에'(instead of), '~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때문에'(for the sake of)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이것을 '백성 앞에', '백성 대신에', '백성을 위하여'로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줄 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또한 '멸망하는 것보다'에 해당하는 '메 ~ 아폴레타이'(me ~ apoletai; not~ perish)에서 '아폴레타이'(apoletai)는 '아폴뤼미'(apollymi) 부정 과거 가정법 중간태이다.

'아폴뤼미'(apollymi)의 기본적인 뜻은 '파괴되다', '멸망하다', '죽다' 등인데,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이것을 부정한다. 즉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처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70인역 (LXX)에서 이 동사는 히브리어 '아바드'(abad)의 역어로 자주 쓰였는데, '아바드'(abad)역시 '잃어버리다', '멸망하다', '파괴되다'는 뜻으로 쓰인다.

 

유대교를 상징하는 최고 의회의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당시 유대교의 도덕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 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사제의 발언이 거의 비판없이 산헤드린 최고 의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이것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카야파는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불경건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대사제인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당신의 백성을 중재하는 임무를 지닌 대사제의 말을 사용하여 유일 중재자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밝히는 놀라운 예언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카야파는 실제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의 위협을 막고자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의미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장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임 악한 자의 말까지도 구속 사업의 의미를 나타내는 데 유용하게 쓰실 수 있는 분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당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자주 사용하신다(판관3,8.12.13; 4,1~3; 6,1~6; 10,7~9; 13,1; 이사41참조). 

카야파는 우리가 아는 대로 예언자가 아님은 물론이고,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술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사도23,3~5참조).

 

 

 

 

 

[사순 제5주간 토요일(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서 라자로를 되살리신 것을 보고 많은 유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더러는 믿기는커녕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그 일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몸소 본 이들의 증언을 듣고도 의회에 모인 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정당성을 논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의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하신 말씀을 판단한다는 종교적인 명분으로 의회를 소집하면서도실제로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면서 로마인들의 억압이 더욱 거세질 것을 걱정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 바탕에는 정치적 문제와 세속적 욕망과 악의가 도사리고 있을 뿐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품은 악의는 많은 유다인에게 전염되어 그들도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함께하게 합니다.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자신을 정결하게”(요한 11,55) 하는 대신자신들이 살길이라고 여기며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아 죽이려는 준비만을 할 뿐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이 악한 마음에서 비롯하기보다는 무사유곧 생각 없음에서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의 현실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때 비로소 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넘쳐 나는 악에 쉽게 물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그분을 우리 안에서 죽이는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사순 제5주간 토요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

 

복음(요한11,43-57)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께서 살리셨고 사람들에게 풀어주어 걸어가게 하라?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라자로는 언젠가는 다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 그럼 사람들은 무엇을 믿은 것일까?  라자로의 육적 옛 사람(自我)이 죽고, 말씀으로 영적 새 사람으로 재 창조 되었음을 믿는 것일까? 그것이 신앙의 목적지 이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죄)을 가져가 죽으시고,(이사53장 참조) 대신 당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살리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보고, 깨닫고 믿어야 한다.(히브9,15) 

그래서 사람들에게 율법, 그 옛 계약에 다시 묶여 살지 않도록 그 죽음의 법에서 풀어주어 새 계약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사53,1-6)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주님(야훼)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메시아-예수주님(야훼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병고에 익숙한 이였다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 하느님의 뜻인 새 계약의 길을 잃고 자신의 뜻을 위한 옛 계약의 길을 간 죄악이다. 우리는 새 계약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희망하며 산다. 곧 이 땅의 어둠, 헛됨을 보고 영원한 빛(하늘)을 희망하며 사는 것이다.

놀랍게도 구약에 능통한 유대인들이 이 이사야서 53장을 거의 모른단다. 믿고 싶지 않고, 인정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을 폐기, 잘라버린 것이다.(마태15,6 마르7,9 참조) 하느님은 믿는다면서 그분의 뜻은 믿지 않는,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血)로 거저 얻는 의로움, 하느님의 새 계약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석음으로 보기 때문에(1코린2,14)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행한 그 자기 의로움을 고수하고 있다.(로마10,1-3) 우리들은 어떤가?......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 이기적 시기심이다. 하느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뜻, 욕망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야고3,14-15)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사제의 글 중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사회적,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참된 사랑과 평화이신 예수님의 자리에 부와 권세의 세력들이 차지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사람, 정의, 평화가 빠진 사회는 중심을 잃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로마5,15.17) 15 사실 그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에페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 에프라임(많은 열매를 맺다), 곧 ‘많은 사람을 살리실 때’를 기다리는 머무르심이다. 지금이 예수님과 함께 ‘구원을 기다리는 머무름의 때’이다. 우리는 알기에 때로는 힘들어도, 지루해도 힘들지 않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 ‘축제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헛된 신앙생활이다. ‘무지,무식했던 예전에 내가 그랬다’ 예수님께서 내 죄로 대신 죽으시고 흘리신 피,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용서는 모르고 열심히 고해성사를 보면 되는 줄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용서의 확신도 없었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말씀을 깨달은 지금은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의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드님을 새 계약으로 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진리로 증언하시며 무죄로 새 생명의 확신을 주신 성령님! (로마8,1-4 참조) 그 삼위 하느님께 염치없는 감사를 드린다. 아니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57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신고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

=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지금도 박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상과 하나 된 교회 안에서 다.

 

(요한16,1-3) 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더러운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당신의 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히브2,11), 그 한 분한 사람을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말씀이 사랑으로 자라나 더욱 굳세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0328일 토요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가장 역설적인 순간을 보여 줍니다.

라자로를 살리신 놀라운 기적은 많은 이에게 믿음을 불러일으켰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워하며 모략을 꾸밀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라자로가 되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들 민족의 앞날을 두려워하며 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대사제 카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요한 11,50)라고 말합니다.

카야파는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겠다는 속셈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말마저 구원 계획의 예언으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이 유다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진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하나로 모으는 길이 될 것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인간의 두려움과 정치적 계산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결의 속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향하여 조용히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라 자신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응답하고 두려움보다 진리를 선택하며 흩어진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앞둔 이 시기에 우리도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마음에 새깁시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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