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 마리아의 향유(香油) (요한12,1-11)

2026. 3. 24. 오전 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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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0일 월요일

[성주간 월요일] 마리아의 향유(香油) (요한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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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그는 외치지도 않으리라.>(이사.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6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화답송>시편27,1.2.3.13-14(1)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악인들이 달려들어 이 몸 삼키려 해도,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다 쓰러지리라.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쳐도, 내 마음 두렵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나도, 그래도 나는 안심하리라.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복음<이 여자를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42,1~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1)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2)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3) ~~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4)  ~~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7)

 

첫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이사42,1~9)중에서 이사야서 42장 1절이하 4절까지는  주님께서 소개하시는 주님의 종의 선한 성품과 하시는 일들 제시된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1) 

'여기에'에 해당하는 '헨'(hen)은 '보라'라는 뜻으로서 동사가 아니라 감탄사이다. 당신이 소개하는 종에게 관심과 주의를 가질 것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내가 붙들어 주는 이'에 해당하는 '에트마크'(ethmak)는 '붙잡다', '지지하다', '떠받히다','지키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마크'(tamak)의 미완료형이다.

미완료형은 미래에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그렇게 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동사는 하느님께서 그 권능의 손길로 이 종을 굳게 붙들어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보호하시고 높이 세워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이' 해당하는 '뻬히리'(behiri)의 원형 '뻬히르'(behir)는 동사 '빠하르'(bahar)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임의적으로가 아니라 어떠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자를 신중하게 선택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주님의 종이 구원사업을 능히 수행할 수 있기에 선택하였다는 뉘앙스와 이를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의 능력을 보증하신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함께 있다. 

'내 마음에 드는' 해당하는 '라체타'(ratsetha)의 원형 '라차'(ratsa)는 '기뻐하다', '받아들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제사규정을 다루고 있는 레위기에서 하느님께서 제물과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레위1,4; 7,18; 19,7; 22,23).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드려진 희생 제사라 할지라도 제물에 흠이 있거나 제사 드리는 자가 율법에 합당한 자가 아니면, 그 제사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레위10,1~11; 19,7; 22,23). 그런 점에서 본문의 마음에 든다(기뻐하신다)는 표현은 그가 인류 대속을 위해 드려질 제물로서 조금도 흠이 없다는 사실과 나아가 제사를 드릴 대사제로 완벽한 분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1)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 에서 완료 시제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완료시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로 역사적 완료 본다면, 하느님께서 그의 종 메시야에게 인간으로 육화(강생)하기 전에 천상에서 말씀으로 존재하였을 때 (요한1,1; 필리2,6) 이미 영을 충만하게 부어 주셨음을 나타낸다.

 

둘째로 예언적 완료 본다면, 이 본문은 메시아께서 강생하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사건을 내다보는 예언이 된다. 

따라서 본문의 완료 시제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주님의 종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임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 즉 하느님의 뜻과 능력으로 구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임을 보여 준다. 

 

'공정'에 해당하는 '미쉬파트'(mishipath)는 '재판하다'라는 의미의 '샤파트'(shapath)에서 유래하며, '심판', '재판'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정의'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것은 하느님의 본질적 속성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말해서 하느님의 통치가 온전히 구현되고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인간들 상호간에 평화롭고 올바른 관계가 서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2) 

거의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세 개의 부정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주님의 종이 이방의 열왕들처럼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크게 드러내고자 하지 않으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거짓 예언자가 자신을 과시하며 떠들어대는 것과 전혀 다르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에 조용히 그러나 호소력있게 진리를 전달하며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전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마태26,62.63; 27,14; 마르15,5; 루카23,9; 요한8,6; 14,30).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3)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나는 갈대는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나일강 주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주요 무대인 팔레스티나의 요르단 강 유역에서도 많이 자라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식물이었으므로, 고대 근동 문학과 성경에서도 상징적,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갈대는 연약하여 바람에 잘 흔들리므로 연약한 인간의 면모와 관련하여 종종 사용된다(1열왕14,15; 마태11,7). 

 

여기에서 '부러진 갈대'(상한 갈대)에 해당하는 '카네 라추츠'(qaneh ratsuts)는 문자 그대로 반쯤 부러진 상태의 갈대를 나타낸다. 비유적으로 사용되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은 상태와 특별히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더러워진 인간의 상태 말한다. 

 '꺾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이쉬뽀르'(yishibor)의 원형 '샤바르'(shabar)는 완전히 박살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레위6,21; 1열왕19,11). 사실 상한 갈대는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에 박살내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

 

이러한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종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상태 모든 면에서 절망적인 상황, 비관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세상의 왕들처럼 무자비하게 심판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유하며 새 생명을 주실 것을 나타낸다.

한편 일상생활의 필수품인 등불 역시 갈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꺼져가는 심지' 해당하는 '피쉬타 케하'(pishitah kehah)는 '희미한 심지'(꺼져가는 등불), '연기나는 심지'라는 의미이다. 즉 본문의 등불은 기름이 없어서 깜빡이면서 이제 막 꺼져버리려는 순간이나 혹은 꺼져서 연기가 나는 상태의 등불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우 그 등불은 연기가 날 뿐, 등불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러한 상태의 등불은 꺼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주님의 종은 이런 등불을 결코 끄지 않으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없다고 꺼서 내버릴지라도 주님의 종은 이러한 상태의 등불도 소중히 여기신다. 

 

이것은 주님의 종이 그 어떤 사람도 거부하지 않고, 자비와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심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님의 종의 봉사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4) 

'섬들'에 해당하는 '이임'(iyim)은 이사야서 40장 15절과 41장 1절, 5절에 사용된 표현으로 '가장 먼 곳'이라는 의미로서 세상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을 다 포함하는 모든 백성들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교훈)에 해당하는 '울레토라토'(uletorato)의 기본형 '토라'(torah)는 율법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이다.

'고대하리라'에 해당하는 '예야헬루'(yeyahelu)의 원형 '야할'(yahal)은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기대하다', '기다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러를 앙(仰)'과 '바랄 망(望)'이 합쳐져서 '앙망하다', '우러러 바라보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백성들이 하느님의 율법의 말씀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주님의 종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하느님의 공의가 완전하게 이루어져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하느님을 경외하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의미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7)

주님의 종의 일은 아시리아나 바빌론 제국의 왕들처럼 수많은 민족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 아니고, 이 땅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세속적인 기업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종의 일은 고통과 괴로움에 처해 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자들'(눈먼 자들)에 해당하는 '이우로트'(yiuroth)는 '이우웨르'(yiuwer)의 복수형으로서 '시각 장애인'이란 기본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고,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는, 지치고  피곤한 자들과 하느님 앞에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사람들을 말한다(이사56,10). 

이것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어떤 생명력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 아무런 소망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나타낸다. 

 

'뜨게하고'(밝히고)에 해당하는 '리프코아흐'(liphqoah)의 원형 '파카흐'(paqah)는 닫혀 있는 것을 활짝 열어 젖히는 것을 의미한다(1열왕6,20).  이것은 메시야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랍고 획기적인 일을 통해서 절망과 고통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생명과 희망의 빛을 가져다 줄 것을 나타낸다.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갇힌 이들'에 해당하는 '앗씨르'(assir)는 '노예', '죄수', '포로'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고독한 자', '가난하고 궁핍한 자', 죽이기로 정해진 자'라는 표현과 병행하여 사용되는 표현으로서 실제적인 노예와 죄수 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매우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받고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진리와 생명에서 격리되어 죄와 죽음의 법칙에서 얽매어 어둠의 권세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함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들의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감옥에서'에 해당하는 '밈마쓰케르'(mimmasger)의 원형 '마스케르'(masger)는 '지하감옥'이라는 의미로서 빛이 들어오지도 않고 눅눅하고 침침한 토굴을 지칭하며, 이곳에서는 누구도 탈출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이 그야말로 완전한 절망적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 준다. 사실 하느님을 떠한 인간은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어둠'에 해당하는 '호셰크'(hoshek)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을 의미하며(창세1,4; 탈출10,21), 비유적으로는 큰 슬픔이나 불행을 당하거나 파멸에 이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2사무22,29; 욥17,23). 즉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이란, '눈먼 이들'이나 '감옥에 갇힌 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정신적, 영적 영역에서 볼 때, 아무런 소망없이 고통과 절망 가운데 처한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특별히 여기서 사용된 '앉아 있는 이들' 해당하는 '요셰베'(yoshebe)의 원형 '야샤브'(yashab)는 '거주하다', '머무르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잠깐이 아닌 계속 이러한 상태에 있는 자들임을 나타낸다.

칠흑같이 어두운 감옥에 갇힌 죄인이 혼자 힘으로 그 곳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메시야의 활동으로 여기에서 능히 벗어나게 될 것임을 본문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성주간 월요일(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하나의 장례처럼 여기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향유를 붓는 행위는 장례 의식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마태 26,12; 마르 14,8; 요한 12,7 참조).

고대 유다교 전통에서도 장례는 당시 유다인들과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권장되었던 선행 가운데 하나였습니다(토빗 1,17-18; 사도 9,36-37 참조).

후대 유다교 라삐들에게 장례는 단순한 자선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산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에게 베풀 수 있는 선행으로 이해되었습니다(마태 25,35-45; 마르 15,42-47; 사도 8,2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합니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 한 리트라, 곧 320그램 정도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예언적 행위이며,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선행을 상징합니다.

마리아의 이 선행은 예수님께서 늘 제자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종말론적 행위를 의미합니다(마태 26,11; 마르 14,7; 요한 12,8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유다,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를 하나의 ‘표징’으로 확인하려고 몰려든 유다인들, 그리고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그분과 함께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하는 수석 사제들이 있습니다.

 성주간 월요일에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가운데 누구에 가깝습니까?

 

김상우바오로 신부

 


 

 


  [성주간 월요일] 

 

우리의 삶이 여섯임을 알아야.

 

(요한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엿새(6), 안식(7)이 없는 곳에 안식을 주시려 가셨다는 뜻이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 행위 신앙에 열심이었던 마르타는 계속 시중드는 일에 열심 한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깨달음의 신앙을 살았던 마리아는(루가10,38-42참조) 그 행위의 신앙이 아닌 주님의 발(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깨달았다.

 

(루가10,41-42)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얻는 비싼 향유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함을 아는 그 자기 버림(否認)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힘, 안식의 주인(주님)으로 믿는 그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마르타는 자기 열심, 힘으로 살아가기에 그에게는 안식이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로마(肉)로부터의 해방을 이루려했다. 죄에서 해방, 곧 인간의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주님, 그분의 길, 말씀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도둑인 것이다.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마리아가 한 일이 예수님의 길,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이 진리임을 믿는, 그 진리를 간직한 행위였다는 말씀이시다. 마리아가 슬기로웠던 것이다. 행위에 열심했던, 그래서 기름을 간직하지 못한 마르타가 어리석은 처녀다.

 

(마태25,3-4.10)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교회)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자신)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 기름, 진리가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는 곧 성령이시다.

 

(요한16,13)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 라자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되면 안 된다. 곧 보이는 현상(표징, 기적)이 아니라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인 ‘부활이요 생명, 안식의 주체(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1코린1,22-24)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천주의 성령님! 저희에게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대속이 구원의 진리임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성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2,1~11)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3)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3절에 예수님을 위한 잔치의 식탁에서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 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린다.

요한 복음 12장 5절에는 그 값어치가 300 데나리온어치라고 말한다. 건강한 노동자가 안식일을 제외하곤, 거의 1년 동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총수입에 해당한다.

'리트란'(litran)은 '한 근'을 말하는 중량의 단위로 대략 340g(12온스)정도이다. 마르코 복음 14장 3절에는 '한 근'이 들어가는 '옥합'으로 나온다.

 

그런데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은 향유를 머리에 부은 것처럼 묘사하고 (마태26,7; 마르코14,3), 요한 복음은 향유를 발에 부은 것으로 묘사한다. 왜 그럴까?

마리아는 당시 귀한 손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관습따라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그런데 이 기름은 양이 적지 않아 몸을 타고 내려와 두 발까지 적셨다. 이것은 아마도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에서 맨 처음의 기름을 머리에 부은 동작이 시작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요한 복음에서는 기름을 부어 발에 떨어진 결과를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가 언급한 발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체 부위 가운데 발이 가장 천시된 것과도 관련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값비싼 향유와 발을 대비시킴으로 마리아의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는 것이 수치로 여겨졌던 당시에, 마리아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기 시작했다. 희랍어의 'ekmasso'(엑맛소)는 '씻다'(wash)의 의미가 아니라 '닦아내거나 문지르는 것'(wipe)을 나타낸다. 

 

마치 미용사나 우리 자신이 화장품을 얼굴에 골고루 성의를 다해 문질러 주듯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를 골고루 문질러 드린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뜨거운 마음과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취한 아름다운 행동이었다.

열 두 사도의 당가를 맡고 있었으나 돈도둑이었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요한 12,6),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 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하고 가증스런 발언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사랑으로 한 행위에 쓰여진 기름이 당신 자신의 장례(죽음)날을 위하여 준비되어 온 기름임을 밝히신다(요한12,7).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가장 값진 것을 주님께 드린다. 그래서 향유의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게 된다.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7절의 앞에 나오는 동사 '그냥 놔 두어라'에 해당하는 '아페스' (aphes; let alone)는 그 원형 '아피에미'(aphiemi; 용납하다, 허락하다)의 명령형이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동사인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 she has kept)는 그 원형이 '테레오'(tereo; 지키다, 간직하다)인데, 여기서는 가정법의 구조로서 '~하도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명령형이 아니고 가정법 문장으로서 '그녀를 버려 두어라, 나의 장례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할 수 있도록'으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이미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려 그것을 예수님께 부음으로써 다 소비해 버렸다는 문맥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다소 의역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는 이 구절의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동사에 대해서, 가정법을 인도하는 접속사 '히나'(hina; ~하도록)을 생략하고, 이 '테레세'동사 대신에 3인칭 단수 직설법 완료형'테테레켄'(tetereken)으로 썼다. 

이 완료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간직하여 왔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하면, 'Leave her alone; for the day of my burial she has kept this'이고,  번역하면,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그녀는 나의 장례 날을 대비하여 이것을 간직하여 왔다.'이다. 

 

당시 마리아는 존경하는 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금까지 간직하여 온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었다. 하지만 천주성(神性)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큰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평소 돈 도둑이었던 유다가 '가난한 자' 운운하며 그것이 아깝다고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가난한 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톤 프토콘'(ton ptochon)인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극빈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항상 그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보다 당신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평소 강조하신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에 반(反)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 시기에 무엇이 더 본질적으로 우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며, 열두 사도단의 당가(살림, 재정)를 맡아 돈을 빼 돌리기 위해 가난한 자의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유다의 사악한 마음의 심중을 찌르는 말씀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 빈부의 양극화를 보면서 특히 재벌들의 회개가 많이 필요한 시기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자신은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하이 클래스로 살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서민 운운, 비정규직 운운, 절대 빈곤 퇴치 운운'하는 것을 본다. 

사랑도, 나눔도, 자선도 자기 밥통 안에서 말보다 행함으로 먼저 나와야 된다. 

 

예수님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며, 애덕 실천의 여부가 최후 심판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계시하신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간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존재와 생명의 근본이며 목적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제외되어 있으면 안된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한 구속의 효력이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 예수님의 보배롭고 거룩한 피가 가난한 자도 부자도 영혼의 때를 씻어내지 못한다면, 현세적 재화의 나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화폐로 환산될 수 있는 외적, 물질적 재화가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소위 우리의 나눔이라는 것도 언제가는 없어지고 말 이 세상과 현세만을 위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0260330일 월요일

[성주간 월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파스카 축제 엿새 전,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되살아난 라자로와 함께 식탁에 앉아 계셨습니다.

마르타는 묵묵히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립니다. 마리아는 어떤 셈도 없이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모셨고, 예수님께서는 그 행동을 당신 장례를 준비하는 예언적 사랑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유다는 가난한 이를 핑계로 마리아를 비난합니다.

그의 말은 옳아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탐욕과 위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향유는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응답이었고, 유다의 태도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는 배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두 마음 사이에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성주간은 우리 안의 욕심과 이기심을 비워 내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주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

주님께 향유의 향기처럼 사랑을 드리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셈을 하는가?”

이번 한 주간만큼은 마리아처럼 온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갑시다.

성주간의 여정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고,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 눈을 밝혀 주시고,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우리를 풀어 주시며,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빛으로 끌어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셈 없는 사랑으로 온 세상을 촉촉이 적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성주간 월요일]

 


주님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복음(요한12,1-8)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 베다니아- 아람어 ‘비참한 사람의 집’  파스카의 제물- 곧 죄의 대속(代贖)을 위한 희생양(예수)의 비참한 죽음으로 살아난 라자로가 있다는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 잔치는 기쁨의 축제다. 곧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제사를 완성하시고, 우리 죄인들에게 하늘의 의(義),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 예수님을 위한 잔치인 것이다.

우리 미사(Missa)의 모습이다. *미사(Missa) -‘파견하다’ -에스까리우스띠아 ‘감사제’

 

(요한4,23)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 그런데 마르타는 계속 율법 행위로 시중을 들고 있고, 라자로는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어있다.’

 ‘이미와 아직’ 그사이에 끼어있다는 말이다. 곧 구원, 새 계약의 말씀이 (이미) 디 이루어졌음과 (아지) 이루어질 것이다. 그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느님의 의로움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직인 율법신앙에 멈추게하는, 곧 새 계약을 율법에 팔아 헛되게 하는 도적(도둑)인 것이다.(요한10,7-8 참조)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주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분리하신 말씀이다. 곧 유다의 뜻이 신앙의 목적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신앙(信仰)의 목적은 ‘자신의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가져와서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림으로 기름을 간직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기름은 성령을 뜻한다)

곧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로 죽으실 것을 알았기에즉 예수님께서 육()이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한 일그 한 가지 일만을 하실 것을 알았기에 온전히 육()의 것을 버리고 의탁한 것이다그것이 신앙의 목적지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그래서 자신을 부인(否認), 버리는자신을 예수님께 쏟아 붇는 것이 신앙인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행위이다마르타와 달리 마리아는 어떻게 알았을까물론 말씀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루가10,39-42)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율법의 섬김을 행하라는 것)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마르타야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주님께서 하신 ‘한가지 일’을 깨닫기 위해서는 온갖 종교(宗敎)행위가 아닌 ‘말씀 안에 머무는 그 한 가지’ 뿐이다. 믿음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또한 진리의 성령께서 함께 하심도 깨닫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하느님께서 창세 전 계획하신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구원, 생명의 말씀(물)으로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대속으로 제사를 이루시고 생명(물)을 주셨음을 성령께서 그 모든 일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신다.

 

(요한14,26) 26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15,26)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삼위 하느님의 뜻이 하나로 모아짐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보호자이신 진리의 성령님!

열심히 자기 의()를 행하는 마르타사람의 일을 고집하는 유다그리고 말씀 안에 머무름으로 진리를 깨달은 마리아그중에 우리가 어느 단계에 끼어 있는지 보게 하소서말씀 안에 머물러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감사의 예배(禮拜), 기쁜 잔치의 미사(Missa)를 드리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새 계약)아버지의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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