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목요일]성령 .(루카 11,5-13)

2018. 10. 11. 오전 5: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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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목요일]성령 .(루카 11,5-13)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는지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는지 묻는다.(갈라 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악한 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냐고 하신다.(루카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성 바오로 탄생 2천년(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 프레스코화)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3,1~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 (5)

 

사도 바오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이 전한 너무나도

분명한 믿음을 통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진리를 저버린

갈라티아 교인들의 영적 우매함을 반어법적 질문을 통해 통렬히

3장 1~5절에서 책망하고 있다.

 

즉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 교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이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져 믿음을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으로 회귀한 영적 어리석음을 범한데 대하여 반어법적 질문을 통해

질타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다시 바른 신앙을 회복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3장 1절에 그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확실하게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과는 상관없이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키려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이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에 따른 행위'와 '복음을 듣고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의 불완전하고 나약한 본성의 소유자인 우리는

율법을 지켜 자력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해 죄를 짓고,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우리의 죄를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대속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께 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길이 열렸고,

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 안에서의 이웃 사랑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입은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 율법을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서 율법의 정신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으로 번역된 '운(un)'그러므로'란 뜻인데, 문장에서 결론을

내릴 때와 문장들을 논리적으로 함께 연결할 때 사용되는 접속사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서 3장 2~4절의 내용을

3장 5절에서 요약하여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그리고 '주시고'에 해당하는 '에피코레곤'(epishoregon)

'그리하시는 것입니까'에 해당하는 '에네르곤'(energon)은 각각

'공급하다'(콜로2,19)란 뜻을 지닌 '에피코레게오'(epishoregeo)

'행하다'란 뜻의 '에네르게오'(energeo)현재 분사형이다.

 

모두 관사 '호'(ho)의 지배를 받는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각각 '주시는 이', '행하시는 ~ 일이'란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두 단어가 모두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된 것 지금 현재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일하심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다'란 의미로 번역된 '에피코레게오'는 일반적으로

'주다' 란 뜻을 갖는 '디도미'(didomi)동사와 달리 '값없이 제공하다',

'선사하다' 란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받은 위로자요, 변호자이신 성령께서

값없이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3장 5절 원문에는 문장 구성상 동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3장 5절이 앞에서 언급한 3장 2~4절을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본문의 완성된 문장을 추론해 낼 수 있다.

 

3장 2절에 '여러분은 ~받았습니까'에 해당하는 '엘라베테'(elabete)

3장 4절에 '여러분은 ~ 체험했습니다'에 해당하는 '에파테테'(epathete)

그 해답의 열쇠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본문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그 성령을 여러분이 받은 것이(엘레베테),

그리고 하느님께서 행하신 그 능력들을 여러분이 체험한 것이(에파테테),

율법의 행위에서인가, 복음을 듣고 믿음에서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너무나 당연한 후자의 대답이 나오는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갈라티아서 수신자들이 직접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1,5~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르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10)

 

루카 복음사가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11장 5~8절에서

'한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를 들고, 기도 응답에 대한 보다 분명한 확신

주기 위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받으며,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된 11장 9~13절을 첨가한다.

 

11장 9절'청하여라'로 번역된 '아이테이테'(aiteite; ask)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청하는 것 뜻할 때 사용되는 '아이테오'

(ai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아들의 신분인 하느님의 자녀가 위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 동사가 현재 명령법으로 사용되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청할 것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으며, 또한 능동태로 사용되어

자신이 직접 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단어가 '기도'관련해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루카10,13; 마태18,19; 마르11,24).

 

한편 '주실 것이다'로 번역된 '도테세타이'(dothesetai; it will be given)

'주다'를 뜻하는 '디도미'(didomi)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미래 직설법미래에 반드시 발생할 어떤 사건에 대한

강한 확신을 뜻하므로, 여기서는 하느님께 청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

강한 확신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찾아라'로 번역된 '제테이테'(zeteite; seek)는'발견하기 위해서

애써서 찾는 것'을 의미하는 '제테오'(ze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제테오'(zeteo)되찾은 은전의 비유(루카15,8),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에도 사용되었고, 하느님을 찾는 데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신명2,29; 이사55,6; 65,1; 사도17,27), 천국의 잔치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루카13,24).

 

따라서 '찾아라'는 것은 단지 성도 개인에게 필요한 것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을

찾으라는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얻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휴레세테'(hyuresete; you will find)

미래 능동태로서 '너희들이 능동적으로 발견할 것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생겨나는 을 암시한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예레29,13~14ㄱ)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로 번역된 '크루에테'(kruete; knock)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안되게끔 열성을 다해 간절히 두드린다

의미를 가진 '크루오'(kr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가 구하는 실제 내용이

하느님께 상달되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문을 하느님께서

반드시 확실하게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열릴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노이케세타이'(anoigesetai; will be opened)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anoigo)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이것은 멀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어 주고,

또한 수동태로서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느님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루카 복음 11장 9절'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점점

적극성을 띠는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이같은 집요함과 끈질긴 인내, 그리고 열성이 담긴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카 복음 11장 10절에서는 11장 9절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 '가르'(gar; for; 왜냐하면)로 시작하여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준다.

 

11장 10절의 원문은 모두 동사가 현재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의

기도의 응답이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일이라는 것을

생동감있고 실감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찾아가 필요한 것을 간청할 수 있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좋은 선물을 받으려면 우리가 청하는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욕심에서 나온 것인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을 갖고 주님께 간청할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청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아 보이더라도 좋지 않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간청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우리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그 간청을 물리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려고 우리의 마음이 맑아져 더 좋은 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느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면 ‘성령 안에 사는 삶’이 가장 커다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과 함께 머무는 사람은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을 언제나 잘 받을 수 있도록 채비를 차립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세속적 욕망이 가득 차면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행위와 업적에 따라 성령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따라 성령의 은총이 내려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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