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금요일]하느님의 손가락 (루카11,15-26)

2018. 10. 12. 오후 7:20:01

글자


[연중 제27주간 금요일]하느님의 손가락 (루카11,15-26)



바오로 사도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며,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 갈라 3,7-14)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당신을 반대하는 자고, 당신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라고 하신다. (루카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제1독서 (갈라3,7~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주셨습니다.

 성경에 "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3)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지적했듯이, 율법은 그 특성상 모든 율법 조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히 지킬 것을 요구하는데,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결국 율법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살 수 없음을 반의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율법의 저주아래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3장 13절의 상반절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로 번역된 '엑세고라센'(eksegorasen)

원형 '엑사고라조'(eksagorazo)'되사다','대가를 지불하여

타인의 지배에서 소유권을 되찾다', '몸값을 치르고 되찾다'

의미를 갖는 동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도록 우리를 '속량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 우리에게 선포한 단죄의 판결과 그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 대해(신명30,15.19; 요한3,36; 로마5,12; 에페2,3) 대가를 지불하심으로써,

우리를 되찾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대속(탈출21,30)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그 속전은 바로 무죄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피였다

(1코린6,20; 7,23; 묵시록5,9).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신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 53장 6절"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이미 하느님의 깊으신 계획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대속적인 것이며,

그를 믿는 자로 하여금 의로움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5,21)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

 

신명기 21장 23절 인용한 부분이다.

그런데 신명기는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로 표현하여 저주를 내리는 주체가 '하느님'임을 명확히 제시

주고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하느님께'에 해당하는 '휘포 테우'

(hypo theu; LXX 70인역) 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결코 하느님에 의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적인 생략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신명기의 인용구 자체가 직접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의 처형 방법은 로마 시대에 보편화된 것이며,

모세 당시에는 생소한 것이었다.

 

오히려 신명기는 형을 집행하고 난 뒤, 죄인의 시체를

기둥이나 나무에 매달게끔 되어있는 관습을 반영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시체의 매달림이 저주를 의미한다는

구약의 관습적 사상을 들어서, 나무에 달린 채 죽어가는 십자가 형벌은

두말할 나위없이 저주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1,15~26)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25~26ㄱ)

 

'말끔히 치워지고'에 해당하는 '세사로메논'(sesaromenon; it swept clean)

'빗자루로 쓸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사로오'(saroo)

현재 완료 분사로 사용되었다.

 

또한 '정돈되어 있는'로 번역된 '케코스메메논'(kekosmemenon;

garnished; put in order)'정리하다',  또는 '질서를 잡다'

의미를 지닌 '코스메오'(kosmeo)의 현재 완료 분사이다.

 

따라서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다'는 표현은 이미 청소가

완전하게 끝났고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새로운 그 무엇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신적, 종교적, 영적 공동(空洞) 현상은

바로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아무런 방해없이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사탄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루카 복음 11장 26절원문에는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다른'을  의미하는 '헤테라'(hetera; other)가 더 첨가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은 '자기 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이라는 매우 강조된 의미가 된다.

 

성경에서 사용된 일곱이란 숫자는 수나 크기, 혹은 양이나 강도에 따른

증가적 추세는 물론, 더 바랄 것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도 악한 영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었거나, 그 악함이 그보다

할 수 없는 영을 묘사하기 위해 이 숫자가 사용되었다고 본다.

 

이런 묘사는 이 사람이 일곱 악령이 들었을 때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하게 변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결국 이러한 비극적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악한 영이 나간 자리를

공허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성령으로 채우지 아니했기 때문이다(루카11,13).

 

악령이 나간 자리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반드시 도래해야 하고(루카11,20),

그곳은 성령과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루카11,28).



 




마귀를 물리치는 길

반영억라파엘신부

 

마귀라는 말은 중상자, 고자질쟁이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느님에 대적하는 이 세상의 왕 또는 악한 세력입니다(루카4,6. 2고린4,4). 그래서 하느님을 사칭하고(2테살2,4) 하느님 일에 반대하며(마태16,23), 악인을 조종(에페2,2)합니다. 인간을 모함(욥기1,9-11)할뿐 아니라 유혹(2코린11,3)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유혹(루카4,5-7)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좆아 내셨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 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고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군중의 반응은 이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일을 하고도 뺨 맞는 격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귀의 속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악 안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지만 마귀는 선한 것 안에서 악한 것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참과 거짓의 대립을 놓고 심판관을 자처한다면 아마도 그곳은 지옥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 중상, 모략의 마음을 버리고 사랑이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는 상태는 이미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번 만이라도 천국을 생각하면 이 지상의 집착과 애정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가슴 안에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지 내 뜻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루카4,1-14)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12장 28절에는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가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에페4,26-27)...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 하십시오(에페6,1)하고 권고합니다. 묵시록에서는 우리 형제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진리의 힘으로 그 악마를 이겨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묵시12,11)고 말합니다. 결국 마귀를 물리치는 길은 말씀과 성령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며 살고 있다면 그를 천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흉보며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선으로 볼 수 있고 악을 악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길 희망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사람 되시길 빕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