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수요일]파견 (루카 9,1-6)

2018. 9. 26. 오전 8: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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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수요일]파견 (루카  9,1-6)

 


잠언의 저자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청한다. (잠언 30,5-9)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르신다. (루카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잠언30,5~9)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7~9)


잠언 30장 2~4절에서는 인간의 보편적 무지와 한계를 지적하고, 잠언 30장 5~6절에서는 하느님 말씀의 완전성에 대해 고백하였다.

이것은 결국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 인간이 하느님 말씀과 그 말씀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제 이러한 맥락으로 잠언 30장 7~9절까지는 지혜의 추구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두 가지 간구를 하고 있다. 특히 이 간구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전제로 한다.


잠언 30장 7절 후반절에서 아구르'제가 죽기 저에게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do not refuse me before I die)라는 표현을 한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 간구의 간절함을 더해주며, 하느님께 대한 진실한 마음이 이 간구안에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의탁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허위나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잠언 30장 8절에서 아구르는 하느님께 두가지를 간구하는데, 하나는 인간 내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외면의 환경적 조건에 대한 간구이다. 

결국 아구르는 자신의 전적인 무능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내, 외면 모두를 하느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의탁하고 간구하고 있다.


그중 첫번째 간구에서 '허위'에 해당하는 '샤웨'(shawe; vanity; falsehood)'공허함', '허무', '거짓'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거짓말 이상으로 하느님 대전에서나 사람 앞에서의 가식이나 이중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거짓말'에 해당하는 '우데바르 카자브'(udebar kazab; and lies)에서 '카자브'(kazab)잠언 30장 6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보태는 자들을 꾸짖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태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허위와 거짓말'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태도와 말씀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자세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멀리하여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하르헤크'(harheq; remove far)'멀리하다', '옮기다', '제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하크'(rahaq)의 사역 명령형으로서 하느님의 주도적 역사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아구르는 자신의 마음조차도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하느님께서 그 자신을 정직하게, 또한 말씀을 진심으로 의지하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이제 아구르는 두번째 간구에서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십시오'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구르는 '가난'과 '부유'를 동일선상에 놓고 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요함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잠언의 여타 표현을 감안하면 이채로운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는 것 부요함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물질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재물보다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절대적으로 우선시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의 삶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앞의 부분이 소극적 의미의 간구라면, 여기서는 적극적인 의미의 간구가 제시된다. 먼저 '정해진'에 해당하는 '훅키'(huqi)'규정된', '할당된'이라는 의미를 지닌 '후크'(huq)1인칭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 '저에게 정해진 몫의 양식을 먹이소서' 또는 '날마다의 양식을 저에게 주소서'이다.

여기서 '정해진 몫의 양식''날마다의 양식'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양의 양식으로서 일종의 중도의 삶(via media), 중산층의 수준을 영위하는 것으로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연상하게 한다(마태6,11).


이러한 간구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육신의 필요와 하느님께서 인생의 모든 과정에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그 모든 삶을 철저히 의탁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육신의 필요를 부정하는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철저히 하느님을 의지하는 하느님 중심의 삶의 전형을 나타낸다.


'그렇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 30장 8절에서 아구르는 부와 가난을 동일선상에서 부정하면서 날마다의 양식을 간구하였다.

이제 잠언 30장 9절에서는 부와 가난 모두를 부정한 이유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충성과 순종과 관련되어 있다.


부와 가난 자체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하느님과의 관계에 미치는 결과에 근거하여 부정한 것이다.

여기서 '배부른 뒤에'에 해당하는 '에스빠으'(esbah)의 원형 '사바으'(sabah)'만족하다', '포식하다', '실컷먹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육체적 욕구의 만족과 인간적 행복과 번영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구르가 예상하는 자신의 모습'주님을 모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불신자가 되어'에 해당하는 '웨키하쉬티'(wekihashithi; and I deny you)'카하쉬'(kahash)의 강조형으로서 '속이다', '거짓으로 부인하다'라는 뜻의 표현이다.

하느님을 알 만한 내적, 외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불신앙적 태도'주님이 누구냐?'라는 직접 인용문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그 존재조차 무시하는 교만하고 완고하며 사악한 생각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사는 악한 자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구르는 인간 본성이 얼마나 약하고 부패한 것인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으며, 특히 그것을 오염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물질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가난하게 하시지 말기를 간구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서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웨타파스티'(wethaphasthi; and take in vain; and so dishonor)원형 '타파스'(thaphas)'붙잡다', '다루다', '얻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도둑질하고 나서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이름을 두고 거짓 맹세를 하거나, 도둑질을 하고 나서 하느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도둑질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해하든지 아구르는 자신이 물질적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연약한 인간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아구르의 분명한 자각은 그로 하여금 더욱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간구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복음(루카9,1~6)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3~5)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8절 이하와 비교해 볼 때 루카 복음에는 '빵도 돈도 지니지 말며'에 해당하는 '메테 아르톤 메테 아르귀리온'(mete arton mete argyrion)에서 '돈'에 해당하는 '아르귀리온'의 원형 '아르귀로스'(argyros)는 '은'(silver)을 새성경은 '돈'으로 번역했다.


먹을 것과 돈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불의하게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또한 루카 복음 9장 3절에 기록된 지팡이여행 보따리여벌 옷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인데, 이것을 지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 stick)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bag for the journey)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였고,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당신 백성을 이끌고 갈 복음 전파자들을 준비시키는데 있어서, 아무 소유 없이 그들을 파견하는 것은 금욕적 삶을 실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말씀을 듣는 이들의  환대에만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의 양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복음 전파자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는 말씀은 복음 전파자가 육신의 편안을 위해 더 나은 숙식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겨 복음 전파자의 관심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 있다는 사실이 희석되게 하지 말라당부와 더불어, 복음 전파의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복음 전파자들을 충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아 한 곳에 머물기를 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 취급을 하라는 말씀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이교도 지역의 흙을 묻혀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신발을 터는 관습이 있었다.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에서 '털어 버려라'에 해당하는 '에크티낙사테'(ektinaksate; shake off)'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흔들다'는 의미의 '티낫소'(tinasso)가 결합되어 '흔들어 분리시키다' 뜻을 지니는 '에크티낫소'(ektinass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명령형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끝내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이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단호하게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거절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의 숙박을 거부한 것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행위로서,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는 결국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마태10,15참조).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은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저 받은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쁘게 전했는지, 오로지 전할 복음의 내용에 충실하며 자신의 전존재와 미래를 온전히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현세적 생계 수단과 돈벌이를 포기한 복음의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 위해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의 열의 하나를 봉헌하는지도 물어 보아야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곧 복음을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나도록 당부하시지 않습니까? 여행하는 데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지팡이나 여행 보따리, 빵이나 돈마저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의도는 선교 활동 자체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능력이 부족한데, 나는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핑계를 대지 말고, 그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열정을 가지고 행하라는 당부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생각하고 싶은 점은 복음 자체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 선교 활동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선교하려는 지역의 문화나 전통을 무시하고, 그저 그리스도교만 강요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 결과 박해의 빌미를 주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뿌리내리려면, 그 전에 그 지역의 문화나 관습, 종교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복음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문화나 풍습, 언어 등 모든 것을 놓아두고 빈손으로 가야만 합니다. 선교 지역에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새롭게 배우며, 그들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친교를 나누어야 하지요. 그 뒤 예수님 말씀을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맞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과거 선교사들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을 오늘날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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