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1.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죄인을 부르러(마태 9,9-13)
성 마태오 사도는 세리로 일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마태오 복음서’를 쓴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증언의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복음서가 서술하는 나자렛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서 입문’ 참조)이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사도는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고한다.(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부르시어 세리와 죄인과 한 식탁에 앉으시고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4,1-7.11-1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7)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1-6절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권면과 교회 일치의 근거 및 당위성에 대해 제시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전환의 접속사 '데'(de; but)가 사용된 에페소서 4장 7절 이후로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총을 받은 교회 구성원들의 독특성을 말하며, 나아가 그들의 다양한 봉사의 직분으로써 하나된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구성원 각 사람에게 분량에 따라 은총을 주셨음을 밝힌다.
여기서 '은총'으로 번역된 '헤 카리스'(he charis; grace)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죄의 용서'의 의미가 아니라, 성도에게 주어진 '봉사의 직분'을 가리킨다. 이 봉사의 직분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므로 '은사'(charisma)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부르시는데, 각 지체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각 은사를 통해(1코린7,7 ; 고유한 은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된 교회를 위해 효과적으로 봉사하게 하셨다(로마1,11).
에페소서 4장 7절을 새 성경은 능동태로 번역했지만, 원문은 수동태이다. 직역하면 '그러나 이 은총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But to each one of us grace was given)이다.
여기서 '은총'('헤 카리스'; he charis; grace)이 주어로 사용된 것은 은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주어졌다'('에도테'; edothe)라는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은사 분배자이신 그리스도의 시혜성(施惠性)을 드러낸다.
또한 이 시제는 부정 과거 시제인데, 이것은 은사의 분배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편에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테스 도레아스'; tes doreas; of the gift) 양에 따라'
이것은 성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은총이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분량에 따라 주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양에 따라'에 해당하는 '카타 토 메트론'(kata to metron)은 '알맞게 측정된 것에 따라서'(according to the measure)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측정하시고, 그에 적합한 봉사의 직분을 주신다는 것이다 (Christ apportioned it).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이진 은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은사만을 높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다른 사람이 잘 알아주지 않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불평하거나 평가 절하해서도 안된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로마8,29) 나에게 가장 알맞은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 은사를 자랑하거나 불만삼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로써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지체를 위해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에페4,12).
"그분께서는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11)
에페소서 4장 7-10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에게 저마다 분량대로 은총을 베푸셨음을 말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에페소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은혜의 선물의 분량을 따라 각 지체에게 부여된 각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공통의 목적을 갖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에페소서 4장 11절에는 초대 교회 당시 있었던 대표적인 직분들을 나열한다. 먼저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루스'(apostolus)는 원형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복수형이다. '아포스톨로스'는 '사명을 주어 자신의 대리자로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apostell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파견된 자'(使者)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칭하였으며(루카6,13)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셨다(마태10,1-8). 그런데 예수님의 사도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마태10,5; 갈라1,1).
둘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이를 증거할 사명을 맡은 사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격증인) 이어야 한다(사도1,21.22).
셋째, 성령님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요한14,26).
이러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먼저 부르신 열 두 제자 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의미로서의 사도는 이들로 제한되고 국한된다.
그런데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목매어 자살한 뒤에, 열한 사도는 그를 대신하여 마티아를 제비뽑아 빈 자리를 보충했다(사도1,15.16). 그리고 그 후에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사도의 대열에 들어섰고(사도14,4; 갈라1,15-17) 주님의 동생이라고 여겨지는 야고보도 사도로 불리워졌다(갈라1,19).
다음으로 '예언자', 즉 '프로페타스'(prophetas)의 원형 '프로페테스'(prophetes)는 '~앞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프로'(pro)와 '말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페미'(phe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미리 말하는 자'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며 장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약에서는 이 용어가 개별적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사도'라는 용어와 자주 함께 언급된 것을 보면(에페2,20; 3,5; 묵시18,20) 예언자의 역할은 사도의 그것과 유사했으며, 또한 두 직분은 초대 교회를 세우는 양대 기둥의 역할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도의 메시지가 일반적이고 교리적이었다면, 예언자의 메시지는 실질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인도하는 일에서 주도권을 가진 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신약의 예언자는 사도들의 사목을 도와 교회내에서 '덕을 세우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하였다(1코린14,3).
신약 시대의 유명한 예언자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유다와 실라스(사도15,32) 등이 있었고, 이러한 예언자의 역할은 A.D. 2세기 경까지 이어졌다.
또한 '복음 선포자'는 선교사처럼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스타스'(euanggellistas)의 원형 '유앙겔리스테스'(euanggellites)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유앙겔리조'(euanggellizo)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단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사도행전 21장 8절에는 필립포스에게, 그리고 티모테오 후서 4장 5절에는 티모테오에게 사용되었다.
한편, 사도(apostles), 예언자(prophetes), 복음 선포자(euanggelistes)는 원문에서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
계속해서 교회 내의 다양한 봉사의 직무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스'(poimenas; pastors)의 원형 '포이멘'(poimen)은 본래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양치는 목자', '가축지기'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하셨을 때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요한10,11).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포임네'(poimne)가 '양떼'를 의미한다는 것(루카2,8; 1코린9,7)이 '포이멘'이 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자임을 잘 나타낸다.
그 다음 '목자'를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교사'를 가리키는 '디다스칼루스'(didaskalus; teachers)앞에 관사 '투스'(tus)가 없다는 점에서, '목자'와 '교사'를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견해를 따르면 '목자'는 곧 '가르치는 자'(교사)라는 것이다. 코린토 전서 12장 28절에서 사도와 예언자 다음에 교사만 언급하는 점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목자'와 '교사'를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경우에는 '목자'를 감독과 원로로 나뉘어서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으로 보고, '교사'를 성경을 해석하고 그 내용을 가르쳐 영적으로 인도하는 직분으로 본다.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마태9,9-13)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12)
이 구절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를 비난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침을 가하시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메시야이신 당신의 사명이 바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이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건강한'에 해당하는 '휘기아이논테스'(hygiainontes; healthy; whole)는 '건전하다', '바르다', '참되다'는 뜻을 지닌 '휘기아이노'(hygiaino)의 현재 분사로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다'는 뉘앙스를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건강한 이들'이란, 종교적, 윤리적으로 올바른 이들이 아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스스로 올바르다고 자부하면서, 인간의 영적 악함을 깨끗하게 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불필요하다고 하며 거부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바로 당시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모두 지칭하며, 그 외에도 예수님을 필요하지 않다고 거부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병든'에 해당하는 '카코스'(kakos; sick)도 육체적으로 병들고 허약한 것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에, '병든 이들'이라는 표현에도 '죄인들'이라는 뜻이 있다.
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정해 놓은 종교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하느님 대전에 진실로 구원자를 필요로 하여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을 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
'의사'에 해당하는 '이아트루'(iatrou; a physician; a doctor)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위해 오신 분이며, 마태오 복음에서 잔치에 초대되어 온 모든 죄인들도 그 중에 포함될 것이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이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은 예수님께 선택 받을 수 있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계속해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율법주의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선택에서 영원히 제외될 것이다.
'회개시키러'로 번역된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을 고치다'라는 동사 '메타노에오'(metanoe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이다.
루카 복음 5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막연히 죄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님을, 루카 복음 5장 32절에서 죄인들을 선택한 목적을 분명하게 언급하시면서 밝히신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를 인식하고 참회하는 죄인들의 마음을 고쳐서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부정하게 여겨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죄인들과 함께 친교를 나눔을 밝히신 것이다.
마태오는 세리였기에 일반 민중으로부터 미움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살아가는 데 어떤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력과 재산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태오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영적 갈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태오는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럼으로써 마태오는 안정된 직업을 잃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생명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는 바리사이들이 비난합니다.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비난에 예수님께서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은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런 만큼 하느님을 더 절실히 찾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의미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려면 자신을 영적인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아프면 곧바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이 병든 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지요. 의외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늘 남의 티끌만 바라보며 다른 이들 탓만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편함과 불만마저 품게 되지요. 따라서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나의 삶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