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7주간 목요일]소금 (마르9,41-50)
야고보 사도는 부자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울라고 한다. (야고5,1-6)
1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2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3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4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5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6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작은 이들을 죄 짓게 하는 자는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하신다. (마르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45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47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야고5,1-6)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2-3)
야고보서 수신자들이 살던 지역의 당시 부자들이 축적한 부의 대상물은 곡식, 호화스러운 옷, 값비싼 금과 은들이었다. 여기서 '재물'로 번역된 '플루토스'(pllutos; richedl wealth)는 당시 부의 척도가 되었던 '곡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것들 모두가 '썩었고'('세세펜'; sesepen; are corruptes; has rotted), '좀 먹었으며'('세토브로타 게고넨'; setobrota gegopen; are moth-eaten; moths have eaten), '녹이 슬어버렸다'('카티오타이'; katiotai; is corroded; is cankered)고 말한다.
여기서 그들이 축적한 부의 쓸모없음을 표현한 '썩었고'로 번역한 '세세펜'(sesepen)과 '좀 먹었으며'로 번역한 '세로브로타 게고넨'(setobrota gegonen), 3절에서 '녹슬었으며'로 번역된 '카티오타이'(katiotai) 동사 모두가 완료시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완료시제는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완료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재물은 썩었고'라는 것은 불의한 부자들이 자신의 곡식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않고 그것들을 창고에 쌓아 놓기만 해서 쓸모없이 이미 썩어버렸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썩어서 버릴 만큼 많은 재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옷은 좀먹었습니다'라는 것은 입지 않고 옷장에 보관해 둔 옷이너무 많아 좀 먹을 정도였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당시 의복은 재산 중 큰 가치를 차지했는데(마태5,40; 사도20,33) 좀이 먹어 입지 못할 정도로 옷이 많았으며, 자신에게 필요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그들의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야고2,2).
그들이 소유한 것들은 모두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저 이 세상에 살 동안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게 될 아주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함에도, 그들은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 것처럼 아끼고 또 아꼈다.
그래서 야고보는 '썩었고', '좀먹었으며', '녹슬었으며'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바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부가 궁극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루카12,16-21; 사도20,35; 마태6,19-21참조).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부자들은 금과 은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야고보는 그것들이 모두 녹슬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금은 녹이 슬지 않는 물질이다. 여기서 '카티오타이'(katiotai)라는 동사는 분명히 금속이 녹이 스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따라서 3절의 이 표현은 상징적 표시로서, 불의한 부자들이 다량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이 가난한 자들 및 필요한 자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하여 일한 자들에게 나누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쓸모없게 되어버렸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불의한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이 그것을 주신 하느님의 본래 의도에 맞게 쓰여지지 않았으며, 그런 자들은 하느님 대전에 그들이 인정받는데 어떠한 효용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 녹이'에 해당하는 '호 이오스 아우톤'(ho ios auton)은 '그것들의 녹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복수 인칭 대명사는 그들이 활용하지 않은 재물들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되고'에 해당하는 '에스타이'(estai)는 직설법 미래 시제 동사로서 확실하게 발생하게될 미래의 사실을 지칭한다.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의 녹이 그들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는 표현은 후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때에 바로 그것들이 부자들을 고발하고 단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그것들이 불처럼 그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이라는 직유법의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것들로 인해 부자들이 철저하게 파멸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불'로 번역된 '퓌르'(pyr; fire)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상징이며 형벌의 도구로서 지옥불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결국 불의한 부자들은 부정하게 축적한 부 때문에, 약자들을 착취하고 남을 짓밟으면서 쌓은 재물 때문에, 또한 주위에 그들의 도움을 호소하는 자들을 외면해 버리고 자신들의 배만을 채우는 데 소비한 물질 때문에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재물은 그들을 파멸에 빠지도록 재촉할 뿐, 결코 그들을 구원할 수단이 못된다는 말이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시제는 부정 과거 시제이므로, 미래에 있을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가 이미 목격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지막 때'에 해당하는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eschatais hemerais; the last days)는 야고보 사도가 살고 있던 초대 교회 당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때' 앞에 붙어 있는 전치사 '엔'(en)은 '~을 위해' 보다는 '~안에'로 번역해야 하고, 신약 성경 여러 곳에도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에 (사도2,17; 2티모3,1; 히브1,2; 2베드3,3), 야고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종말이라고 칭했으며, 바로 그런 때에 불의한 부자들이 재물을 쌓았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종말은 실로 주님을 찾아야 할 때이며, 그 때 이 세상의 형상과 발자취는 지나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1코린7,25-31참조). 종말은 하느님의 심판이 찾아오는 때이며 불시에 닥치는 성질의 것이다.
“행동을 통해서 수확하는 것은 습관이고, 습관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성격이며 성격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듭니다.”그러니 좋은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덕이 되고, 좋지 않은 습관은 그야말로 악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표양으로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9,4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이 약한 사람을 죄짓게 하여 신앙을 저버리게 한다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발이 너를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마르9,45-47). 이렇게 섬뜩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악한 행동은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섬김의 자세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서 버려질 뿐입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옛 말이 스쳐지나갈 말이 아니지요.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매순간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권력과 돈과 허영을 쫓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이끄시는 그리스도인의 길은 봉사와 겸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세속적인 유혹’을 이겨내고 출세와 출세를 위해 타인을 망가트리고 싶은 유혹에 잘 맞서야 한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보다는 무늬만 신앙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환경은 좋아졌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정도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환경과 여건, 처지가 어려웠지만 믿음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상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늘어만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4,18). 그러므로 영원한 것을 잡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9,41-50).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소금은 보존하기 위한 소금이 아니라 주기 위한 소금입니다. 소금은 자기 맛을 느껴지지 않게 하고 오히려 각 음식의 맛이 좋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자신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하면 소금 맛만 느껴지고 다른 식재료의 맛은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매 순간 단호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영원한 것을!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시길”(에페5,10)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민수18,19)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이웃에게 해야 할 일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크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이지요. 다른 이에게 사랑과 자선을 베풀면 이것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도 남을 돕기는커녕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경향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엄하게 이르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자신이 죄짓는 것도 나쁘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더 나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드는 악의 유혹을 다 뿌리 뽑아야만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혹하리만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이 말씀은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간격을 만드는 것이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근절하라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나의 잘못된 습관이나 쾌락들을 끊어 버려야만 합니다. 이 일이 마치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 따른다 하여도 참된 생명과 평화를 얻으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