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월요일]벙어리 (마르9,14-29)
야고보 사도는, 지혜로운 사람은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야고 3,13-18)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 아버지가 간청하자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기도가 아니면 나가게 할 수 없다고 하신다.(마르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3,13-17)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며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4-15)
야고보서 3장 13절에서 야고보는 온유 안에서 드러나는 선행으로 참된 지혜를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야고보서 3장 14~16절은 이와 반대로 시기와 이기심이라는 특징을 지니는 세상의 악한 지혜에 대하여 말한다.
야고보는 13절 후반절에서 언급된 온유한 사람과 대조적으로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은 사람을 14절에서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모진 시기와 이기심'은 타락한 본성에서 맺어지는 열매이다.
먼저 '시기'로 번역된 '젤론'(zellon)의 원형 '젤로스'(zellos)는 '열심', '열정'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시기', '질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 단어가 신앙을 유지함에 있어서 하느님께 대한 의인의 거룩한 열심이라는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지만(요한2,17; 로마10,2; 2코린9,2; 11,2; 필리3,6; 히브10,27) 여기서는 잘못된 열심 즉 그리스도인을 대항하는 유다인의 열심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사도5,17; 13,45; 로마13,13; 갈라5,20등).
그리고 이 단어를 수식하는 '모진' 혹은 '독한'으로 번역될 수 있는 '피크론'(pikron)은 3장 11절에서 '쓴 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하다.
모진 시기는 남에 대한 열등감에서 오는 시기심, 또는 남의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되어 비방을 일삼는 태도를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악한 감정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시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심'으로 번역된 '에리테이안'(eritheian)의 원형 '에리테이아' (eritheia)는 '이기적 야심', '파당심', '강한 당파 근성'이라는 뜻으로서 자신만을 내세우려고 저급한 술책도 불사하는 이기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 악은 또한 '모진 시기'와 같이 갈라티아서 5장 20절에 열거되어 있는 육체의 열매 중의 하나로 거기서는 '파당'의 의미를 갖고 번역되었다.
사실 인간이 모인 모임에서 그 조직체를 붕괴시키는 가장 큰 암적 요인은 이와같은 이기적 야심에서 비롯되는 파당심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적인 중심 인물인 야고보는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기와 이기심의 추악함을 본 서간의 수신자들에게 부각시키는 것이다.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당시 교회 안에는 모진 시기와 이기심, 즉 이기적 야심이 가득한 사람 중에 자신이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진 시기와 이기심 자체가 이미 그들의 지혜가 거짓됨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의 진리의 가르침과 유배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에게 야고보는 경고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마십시오'로 번역된 금지 부정의 '메'(me)는 '자만하거나'로 번역된 '카타카우카스테'(katakauchasthe)와 '거짓말을 하지'에 해당하는 '프슈데스테'(pseudesthe)를 모두 지배한다.
그런데 '카타카우카스테'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여기서 숨겨진 목적어는 교사가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지혜'(13절)이다.
모진 시기와 이기심이 가득한 자가 자신에게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지혜를 모독하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은 단순히 교사는 교회 안에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다면 그가 가르치는 진리에 역행하여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 기도
어느 날 신자 한분이 “신부님은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얼른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실은 기도를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는 기도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기도를 소홀히 하였으니 속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실은 누가 기도를 부탁하면 “예, 기도해 드리죠.” 하고 대답하고는 잊어버린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죄송한 마음으로 그 잊었던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왕 기도할 바에야 효과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저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11,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지 못하였다는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면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저 반신반의 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요한 사도는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5,15).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기도에 집중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인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기웃거리거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성 치쁘리아노). 따라서 기도를 하려거든 믿음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고, 믿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께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9,28-29).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힘은 바로 기도에서 나오는데 기도란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능력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보면 복음에 바탕을 둔 믿음이 아니라 기복적인 믿음, 또는 신심 위주, 활동중심의 믿음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고,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며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내 멋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이르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잘못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음 하는 가운데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기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던히 참아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다시 그분에께로 돌아서야 하겠습니다. '저의 불신을 이기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기도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마르 9,17-18).”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 6,7).”
그리고 제자들은 그 권한을 사용해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이미 많은 마귀를 쫓아냈던 제자들이었는데,
어떤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벙어리 영’을 쫓아내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8-29)”
기도하지 않아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씀은,
제자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그 영을 쫓아내려고 시도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권한과 능력을
자기들의 것으로 착각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주신 것은 아주 넘겨주신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을 대신하라고 위임해 주신 일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받은 권한과 능력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고,
그 권한과 능력을 사용하려면, 우선 먼저 기도해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마귀는(더러운 영은) 인간들에게는 복종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것들은 하느님과 예수님께만 복종합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려고 했으니,
그 마귀는 제자들의 명령에 복종하기는커녕 제자들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비웃기만 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다행이고,
자칫 잘못했으면 그 아이에게나 제자들에게 더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마르 9,21-24).”
여기서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라는 말은,
‘나쁜 기도의 예’입니다.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라는 말은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지만,
“하실 수 있으면”이라는 말은 믿음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바치는 기도는 기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주님을 ‘믿기 때문에’ 주님께 말씀을 드리는 일이고,
그래서 기도는 ‘믿음으로’ 주님께 바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바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믿음이 없는’ 것과 ‘믿음이 부족한 것’을 구분해서 표현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두 가지는 별로 다를 것 없는 한 가지 상태입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믿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것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과 당신이 동등한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따라서 하느님께 직접 바치는 기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와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는 모두 같은 기도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는 말은,
“믿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믿음을 도와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했던 사람이
이제는 믿음의 은총을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믿음이 없긴 하지만,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 달라는
저의 간청을 들어주십시오.” 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아이의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이야기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었던 어떤 사람이 아들의 일을 계기로
새롭게 믿음을 갖게 된, 즉 신앙인이 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신 일도 은총이고,
아이 아버지를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신 일도 은총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여기서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에서 생기고, 믿음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 5,14-15).”
여기서는 ‘주님의 뜻에 따라’ 라는 말이 중요한데,
우리는 ‘나의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주님의 뜻’에 따라서
내가 청한 것보다 더 크고 더 좋은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 머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만나려면 산과 같이 외지고 조용한 곳이 좋습니다. 모든 것을 접고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웃을 떠나 자기 홀로 거룩하게 살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면을 조화시켜야 합니다. 때로는 산에 있는 것처럼 고요한 시간을 통해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로써 일상생활의 모든 문제를 더 잘 해결하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지요. 동시에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는 실천적인 사랑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도 악령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곤경에 빠진 제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의 문제에도 모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주신다는 점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흔히 우리는 큰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사소한 일은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거나 외면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사소한 일을 소홀히 다룬다면, 큰일을 시작하고서는 끝을 맺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 점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끝맺으십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기도란 하느님과 통교함으로써 하느님의 힘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