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38) 누구와의 전투인가? (묵시8:6-9)
(묵시8:6-9)
6 그 때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채비를 차렸습니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우박과 불덩어리가 피범벅이 되어서 땅에 던져져 땅의 삼분의 일이 타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탔으며 푸른 풀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바닷물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속에 사는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모든 선박의 삼분의 일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지막 일곱 번째 인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팔 재앙의 서론 부분을 공부했지요?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그 안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합해서 하느님께 올려드리고 그 기도를 받으신 하느님께서 그 향로에 불을 담아 땅에 쏟으시는 장면을 통해 이 땅에,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쏟아지는 환난과 고난과 재앙은 모두 우리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거룩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으로 수렴되어져야 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재앙과 환난의 내용은 전부 우리의 거룩과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시간에도 잠깐 언급을 해 드렸지만 이스라엘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전투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스라엘의 나팔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을 해 드리면서 나팔 재앙의 서론 부분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나팔의 개념을 잘 정리를 해 놓으면 이 나팔 재앙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①이스라엘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을 뿐만 아니라 대적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릴 때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여호수6:4-5) 4 사제 일곱이 각기 수양뿔나팔을 들고 궤 앞에 나서라. 이렛날에는 이 성을 일곱 번 돈 다음 사제들이 나팔을 불어라. 5 그 수양뿔나팔 소리가 나면 백성은 다 같이 힘껏 고함을 질러라. 그러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때 전군은 일제히 쳐들어 가거라.'
이 나팔 재앙에서 일곱 천사가 나팔을 들고 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붙들고 불 준비를 하는 모습이 흡사하지요? 일곱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 철옹성인 예리고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나팔 재앙 은 그렇게 악의 완전한 소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언제 나팔을 불었는가하면, ②기쁨을 동반한 예배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민수10:10) 10 또 축제 때와 매달 초하루 행사로 모여 즐기는 날, 너희는 번제와 친교제를 드리며 나팔을 불어라. 그러면 너희 하느님 야훼가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너희 하느님 야훼이다.'
그러니까 이 나팔재앙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이 되어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그 때를 향한 나팔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같은 내용이지요. 그리고 ③왕이 등극을 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열왕상1:39) 39 거기에서 사제 사독이 기름 담은 뿔을 장막에서 꺼내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런 뒤, 그들이 나팔을 불자 전국민이 '솔로몬왕 만세' 를 외쳤다.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우리 하느님께서 영원한 왕이 되셔서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그 날을 위한 나팔인 것입니다. 역시 같은 내용이지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나팔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 우리 주님의 대관식의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묵시11:15-17)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과 그분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영원무궁토록 군림하실 것이다.' 16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 네 원로도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7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전능하신 주 하느님, 우리의 감사를 받으소서. 하느님께서는 큰 권능을 떨치시며 군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④이스라엘의 새해인 7월1일에 (티쉬리 월 1일)나팔을 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날을 나팔 절 혹은 신년 절로 지킵니다. 모든 어두운 것들, 묵은 것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레위23:24) 24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칠월 초하룻날 너희는 쉬어야 한다. 나팔을 불어 거룩한 모임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이 나팔 재앙은 새로운 창조의 완성을 향한 나팔인 것입니다. 그리고 ⑤회개를 촉구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요엘2:12-15) 12 '그러나 이제라도, 야훼의 말이다,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 오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13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 오라. 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14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고 복을 내리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너희 하느님 야훼께 바칠 곡식과 포도주를 내려 주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15 시온산 위에서 나팔을 불어라. 단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하느님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느님 나라가 완성이 되니까요. 그리고 ⑥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스바1:14-17) 14 야훼께서 오실 무서운 날이 다가 왔다. 득달같이 다가 왔다. 야훼께서 오실 날, 역마보다 날쌔게 오는구나. 군인보다도 잽싸게 닥치는구나. 15 그 날은 야훼의 분노가 터지는 날, 모두들 죽도록 고생하는 날, 폭풍에 휩쓸려 가는 날, 먹구름이 뒤덮이는 어두운 날, 16 나팔소리 울리며 함성이 터지는 날이다. '저 든든한 성을 쳐라. 귀퉁이에 솟아 있는 망대를 쳐라.' 17 '내가 사람들을 몰아 치리니, 그들은 소경처럼 더듬거리다가 피를 땅에 뿌리고 배알을 거름덩이처럼 쏟으리라. 그들이 나에게 죄를 지은 탓이다.
(예제33:2-4) 2 '너 사람아, 네 겨레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어떤 나라에 적군이 쳐들어가게 한다면, 그 나라 백성은 저희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 보초를 세울 것이 아니냐! 3 그는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백성에게 비상 나팔을 요란하게 불어 줄 것이다. 4 그런데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다가 적군이 쳐들어 와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탓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불라고 하신 것은 모두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상징하는 의식이나 절기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 즉, 우리의 인생에 닥치게 될 환난과 고난과 같은 재앙의 내용과 의미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에 대한 경고이며, 악한 세력과의 싸움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들의 거룩을 완성해 가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배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새 해에 나팔을 불었던 것처럼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인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의 새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팔 재앙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그러한 삶의 질곡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이 나팔재앙을 통해 읽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곱 재앙의 내용을 잘 읽어 봤으면 알겠지만 이 일곱 재앙은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일곱 나팔의 첫 번째 재앙인 우박은 애굽의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이지요. 일곱 나팔의 두 번째 재앙으로 물이 피가 되지요? 그리고 세 번째 나팔 재앙으로 물이 쑥이 되어 못 먹게 됩니다. 출애굽 때의 첫 번째 재앙이지요. 나일 강이 피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든 사건도 생각 이 나시지요?
그리고 네 번째 나팔로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집니다. 출애굽 아홉 번째 재앙입니다. 깜깜한 암흑이 애굽을 덮지요? 그리고 다섯 번째 나팔의 황 충(메뚜기) 재앙은 출애굽의 일곱 번째 재앙이지요? 그리고 일곱 대접의 첫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은 애굽에 내렸던 두 번째 재앙입니다.
요한은 지금 하느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리셨던 재앙의 내용을 인용해서 교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열 가지 재앙은 하느님께서 당시 악을 상징하고 있던 애굽의 파라오에게 전쟁을 선포 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일곱 재앙들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가지 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재앙들을 통해서 애굽의 파라오를 무릎 꿇게 하심으로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시며 참 왕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러한 재앙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신명4:34-35) 34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에집트를 어떻게 치셨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모두들 두려위 떨게 하고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며 억센 손으로 치고 팔을 뻗어 싸우면서 한 민족을 딴 민족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고 나선 신이 있었느냐? 35 야훼께서는 너희로 하여금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요 다른 신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이 일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전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요한은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을 완성하기 위한 하느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냥 처음부터 장남들을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었는데 굳이 아홉 가지 재앙을 다 겪게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팔 재앙의 내용이 좀 더 확실해 졌지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첫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두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세 번째 나팔은 무엇인가 거기에 궁금증을 갖기 전에 먼저 이러한 재앙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리는가, 그리고 그 재앙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define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재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되지만 왜 그 재 앙이 임하는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삶에 닥치는 환난이나 고난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의 이유, 환난의 이유가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나팔 재앙의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원리를 잘 기억해 두세요.
하느님은 유일하신 천지의 주관자이십니다. 그 누구도 그 앞에 적으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서 악과 싸우신다는 표현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하느님은 악과 싸우십니다. 그러나 악이 하느님의 대적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두 팔 걷어 부치시고 싸우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악에 빠진 하느님의 백성들에게서 그 악의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시는 것을 ‘하느님이 악과 싸우신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하느님께 패배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이미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싸우고 계신답니다. 그 말의 뜻은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를 도와 우리의 순결함, 순전함, 거룩함을 만들어 내시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결국에는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일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함께 싸우자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싸움은 믿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교회 봉사 열심히 하고, 선교 열심히 하고, 또 훌륭한 사람 되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미 유다 안에 마귀가 들어갔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귀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절대 세상보다 더 잘 되어서 세상 사람을 내 발 밑에 깔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와 같은 거룩한 자로 만들어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1:2-9) 2 '내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너는 이제 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떠나 이 요르단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 가거라. 3 너희 발바닥이 닿기만 하면 어디든지 그 곳을 모세에게 약속한대로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 4 이 광야에서 시작하여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고 거기에서 헷족의 땅을 거쳐 해지는 쪽 대해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5 네 평생에 아무도 네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6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내가 이 백성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차지하여 이 백성에게 나누어 줄 사람은 바로 너다. 7 용기 백배, 있는 힘을 다 내어라. 그래서 내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법을 한눈 팔지 말고 성심껏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8 이 책에 있는 법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9 너는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노예 출신들인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들과 철기로 된 무기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과의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애굽은 지리학상 성이 필요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와서야 성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막강 한 성을 공략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하시면서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떻게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까?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무기를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율법을 지키고 율법 책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율법은 ‘토라’입니다. 토라는 단순히 율법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모세오경을 가리켜서도 토라라고 합니다. 지금 여호수아서에서 토라를 지키고 토라를 묵상하라고 하는 것은 그 앞의 성경인 ‘모세 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다른 말로 여호수아서 앞의 모든 성경을 묵상하고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은 그것입니다. 대적을 박살내기 위해 실력과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따라 살도록 힘써 행하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정말 강한 존재입니다. 가나안의 거인들, 철 병거를 가진 군사들처럼 강한 존재입니다. 성벽 위로 마차 두 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철옹성 같은 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면 마치 메뚜기 같을 정도로 우리의 대적은 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대적은 하느님이 맡으십니다.
왜 예리고 성에 망치질 한번 못하게 하십니까? 왜 수십만의 미디안 군사 앞에 모여 선 삼만 이천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을 다 흩으시고 기드온과 삼백 명만 남기십니까? 그 전쟁은 하느님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재앙들은 전부 그 하느님의 전쟁입니다. 결국 승리하실 하느님의 전쟁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치시는 하느님의 전쟁을 보고 배우면서 실제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한 발 한발 성숙하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징이 가나안이지요? 그런데 왜 안식의 상징인, 하느님 나라의 상징인 가나안에 계속해서 전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통해서 조금 씩 조금씩 얻어가게 만드십니까?
하느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구원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어요. 그런데 전쟁을 통해서 갖게 만드세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점점 확실하게 알아가게 되고 그 분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조금씩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나에게 주어진 천국의 안식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천국의 안식을 이 땅에서 직접 체험하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던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의 삶 속에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다면 당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셨습니다.(리차드 백스터의 ‘회심’중에서) 그 분들은 그러한 전쟁을 열심히 치러 내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더욱더 많이 깊이 맛보고 가신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하느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이 전쟁을 겪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고 감격스럽지도 않고 평화가 없는지 아세요? 홍해를 건너긴 건넜는데 자기 안에 있는 대적들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매일 그 적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은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4:8-13)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뒤에 하느님께서 또 다른 날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 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10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 간 이도 그의 일손을 멈추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니 우리도 그 안식을 누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옛 사람들처럼 순종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 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13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안식을 향한 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한 전투를 매일 매일 치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평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역동적입니다. 다이나믹이 있습니다. 구원은 역사성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신분적이며 운명적이며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은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 가는, 거룩해져 가는, 성숙을 위해 열심히 전투를 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초대 교회 때 그 엄청난 박해 속에서 이 일곱 재앙의 이야기를 읽고 가슴 벅차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감격이 오늘 동일하게 이곳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