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⑦라오디게아 교회 (묵시3,14-22)

2021. 4. 16. 오후 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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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전체 요한묵시록의 요약입니다그 내용을 점진적이며 반복적으로 기술을 해 가면서 영광스러운 결론을 맺는 것이 요한묵시록의 내용입니다. ‘아멘 하느님에 들어있는 내용은 하느님은 한번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언약의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우리는 말씀 때문에하느님의 그 언약 때문에 기쁘고 안전감을 느끼고 부요함을 느껴야 하는 자들입니다말씀 때문이 아닌 나의 환경과 나의 열심으로 맺은 결과물들을 보며 안전감과 부요함을 느끼는 자들을 주님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하십니다사랑의 반대말이 뭡니까미움인가요무관심입니다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왜 책망하고 징계합니까다 사랑해서 그러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책망과 징계가 있는 삶은 하느님께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책망과 징계는 하느님의 열심의 증거입니다.


(묵시3:14-22) 

 14 라오디게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아멘이시며 진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며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차라리 네가 차든지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16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18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너는 나에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나에게서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눈을 떠라.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그러므로 너는 열심히 노력하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20 들어라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21 승리하는 자는 마치 내가 승리한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옥좌에 앉은 것같이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 일곱 교회에 보내시는 일곱 편지는 끝이 납니다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내시는 일곱 편지는 사탄이 교회시대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미혹할 것인가에 대한 충고와 조언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했지요?

우리는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이파리만 풍성한 행위(바른 복음에 근거한은혜로 말미암은 자발적이요 자연적인 성도로서의 행위가 아닌 가식적이고 외식 적인 그러한 행위)가 교회를 엉터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사탄은 환난과 핍박과 궁핍으로 교회를 좌절시키고 낙담시키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환난과 핍박과 궁핍에 굴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을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베르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사탄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 같은 잘못된 교리와 교훈을 교회로 스며들게 해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하게 만든다는 것도 배웠습니다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그저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만을 좇다보면 언제든지 그러한 잘못된 교리에 현혹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두 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사탄이 교회를 이세벨의 가르침인 우상 숭배나 신비주의기복주의 같은 엉터리 교리로 미혹한 다는 것을 배웠지요?

그리고 사르디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사탄은 교회에게 하느님과 관계없는 많은 일을 하게 만들고사람도 많이 모아 주고 물질도 풍성하게 공급해서그 자체에 만족하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로 만들려고 우는 사자처럼 교회를 미혹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필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공부하면서 사탄은 가난과 궁핍과 초라함으로 교회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의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으로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을 바라보며 이겨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전체 요한묵시록의 요약입니다그 내용을 점진적이며 반복적으로 기술을 해 가면서 영광스러운 결론을 맺는 것이 요한묵시록의 내용입니다그럼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한절 한 절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였고 인구도 많았습니다그래서 은행업이 발달해 있었고 아주 유명한 의술 학교와 의료 시설이 있었던 도시입니다그 의료시설에서는 안질을 낫게 하는 훌륭한 안약이 생산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6마일 떨어진 곳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히에라 폴리스라는 도시가 있었고 남쪽으로 10마일 떨어진 곳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차가운 생수로 유명한 골로새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바오로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보낼 때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도 읽게 하라고 당부를 할 정도로 아주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는 식수가 형편없었습니다석회처럼 보이는 진흙이 물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이웃 도시인 히에라 폴리스의 온천물과 골로새의 차가운 생수를 수로를 통해 끌어다가 사용했을 정도였습니다그런데 그 물이 긴 거리를 오면서 미지근해 졌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토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이러한 배경이 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의 이해에 아주 도움이 됩니다.


(묵시3:14) 14 라오디게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아멘이시며 진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며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느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아멘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확실하고 참되다라는 말입니다이 단어는 하느님을 묘사하는데 쓰이는 단어입니다이 구절은 이사야서 65장으로 가 보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사65:16) 16 그리하여 지난날 암담하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내 눈앞에서 스러지리니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겠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맹세하리라.


이 이사야서 65장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할 것이며 그 중 하느님의 백성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시겠다는 내용입니다그리고 우리가 지금 읽은 16절이 나오는 것입니다여기서 진리의 하느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를 히브리어로 보면 이트바렉 벨로헤 아멘입니다정확히 번역을 하면 아멘의 하느님으로 복을 빌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하느님으로 맹세하리니도 잇사바 벨로헤 아멘입니다. ‘아멘 하느님으로 맹세할 것이라라는 뜻입니다하느님을 아멘 하느님이라고 표현을 합니다그러면 아멘 하느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읽은 16절은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내시리라는 언약을 하셨으므로 복을 구하는 자들은 아멘 하느님께 복을 구하고 맹세를 하는 자들도 아멘 하느님께 맹세하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아멘 하느님에 들어있는 내용은 하느님은 한번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언약의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언약의 하느님께서는 어떤 언약을 이루실 것인가?


(이사65:17-18) 17 보아라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18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나는 '나의 즐거움예루살렘을 새로 세우고 '나의 기쁨예루살렘 시민을 새로 나게 하리라.


그 언약의 하느님아멘 하느님이 무엇을 이루실 것이냐 하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 하실 것입니다오늘 묵시록 본문에서 주님을 아멘이시요라고 묘사를 한 것은 그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느님의 백성들의 새 마음을 창조하시는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그 분이 진짜 약속대로 이 땅에 오셔서 그 새 창조 사역을 완성 시키시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멘이시오’ 다음에 충성되고 참된 증인’“(마르튀스)이라고 붙여 놓은 것입니다이 아멘 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70인 역에서 헬라어로 피스토스’ 나 알레띠노스’‘신실한진실한참 된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그래서 아멘이시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충성되고 참 된 증인이시오라는 말은 아멘이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를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분을 하느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합니다여기서 근본이라고 번역이 된 하르케라는 말은 시작’ 혹은 원인이라는 뜻입니다그 단어를 곡해해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첫 번째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거기서 쓰인 단어 하르케는 수동형 명사가 아닙니다능동형 명사입니다예수님께서 피조물 중에 시작이다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역동적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시는 창조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능동형 명사입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피조물이 아닙니다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창조의 근본’‘하르케 테스 크티세오스라고 묘사를 한 것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예수께서 창조의 시작이십니다창조의 근본이십니다창조의 원인이십니다.

예수께서 창세기 1장 2장에서 우주와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던 그 장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죄인들의 마음속에 뚫고 들어오셔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새 창조를 하실 것임을 예고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그분은 아멘의 하느님이십니다. 아멘의 하느님은 한번 하신 언약을 확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그분이 창조를 시작하시고 6일 만에 마치시고 일곱 번째 날 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시작된 그 새 창조의 사역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끝날까요실패 할 수가 없지요그분이 이미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마르튀스,martyr)오셨다 가시지 않았습니까그뿐아니라 창세기의 창조 때 보증으로 서 계셨던 성령께서 똑같이 보증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서두에 나오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를 보면 이 교회에 보내시는 편지의 내용은 새 하늘과 새 땅과 그 안에 들어갈 하느님의 백성의 창조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14절 다시 한 번 읽어보지요.


(묵시3:14)14 라오디게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아멘이시며 진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며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이해가 가십니까이제 15절 16절로 넘어갑니다.

 

(묵시3:15-16)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차라리 네가 차든지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16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이 구절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입니다. ‘차가울 거면 확실하게 차던지 더울 거면 확실하게 뜨겁든지 미지근하게 믿지는 말라’ 그러니까 믿으려면 확실하게 열심히 믿고 안 믿을 거면 확실하게 관두라는 말로들 많이 이해를 하고 계시지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지근하게 믿는 사람보다 차갑던 사람이 돌아서면 더 확실하게 돌아 선다는 것이지요예수님께서 정말 그런 의미로 말씀하셨을까요?

문맥을 잘 보시면 찬 것이나 더운 것이나 둘다 좋은 것입니다단지 미지근하지만 말라는 것입니다히에라 폴리스의 온천수와 골로새의 차가운 생수를 수로를 통해 대다 먹던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 그 말뜻을 금방 이해했을 것입니다그럼 미지근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차든지 뜨겁든지 할 수 있겠지요그들을 미지근하다고 말씀하시는 근거가 17절부터 나오는 내용입니다.


(묵시3:17) 17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을 부자라 했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했습니다그게 왜 미지근한 신앙의 근거가 되느냐? ‘부자라 부요하여에 쓰인 단어 페플루테카는 직설법 완료시제입니다. ‘나는 부자인데 나를 부요하게 만든 것은 나다라는 뜻입니다그 말은 자기의 힘으로 부자가 되어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그걸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호세아서로 가서 부연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호세12:9) 9 '나는 정말 부자가 되었다한 몫 단단히 잡았거든이 손이 닳도록 벌었는데누가 나를 부정축재했다고 하랴라고 에브라임은 말한다마는,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심지어 신앙의 성숙까지도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의 종교행위를 자랑하고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경제적이며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모든 결과들을 마치 자기 것인양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호세2:10) 10 내가 곡식과 햇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으나 그것도 모르고재산을 불려 주었더니금과 은으로 바알을 만들었다.


(호세13:5-6) 5 그 메마른 땅 사막에서 내가 너희를 보살펴 주었건만, 6 목장에서 풀을 뜯어 배가 부르자우쭐대다가 이 백성은 나를 잊었다.


하느님께서 에브라임이 배부르고 등 따스우니까 하느님을 잊었다고 말씀하십니다에브라임이 정말 하느님을 잊었나요에브라임은 하느님께 계속 예배를 드렸고 순교도 했습니다그런데 하느님은 그들이 하느님을 잊었다고 하십니다여러분우리가 얼마든지 왕성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얼마든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풍성하고 부요한 행위를 만들어 내신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놓치고 내가 순교했고 내가 열심히 종교행위 했고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헌금했다로 가는 것을 하느님을 잊었다미지근한 신앙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러한 자들이 실상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굉장히 풍성한 열심과 노력과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는데 주님은 그 것을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모8:11) 11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세상은 하느님의 부요와 하느님의 복을 아주 교묘하게 흉내를 냅니다그런 것으로부터 안전감도 느끼게 해 줍니다.여러분돈 좋아하시죠돈은 참 편리함을 줍니다온 세상이 그 돈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 같아요제가 미국에 와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끼니를 걱정할 만큼 빈곤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차도 800불짜리 중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하니까 사람 참 우습게보더라고요돈은 그렇게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그리고 은근히 자기는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그것은 자칫 잘 못하면 진짜 영적인 부요와 안전을 놓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때문에, 하느님의 그 언약 때문에 기쁘고 안전감을 느끼고 부요함을 느껴야 하는 자들입니다. 말씀 때문이 아닌 나의 환경과 나의 열심으로 맺은 결과물들을 보며 안전감과 부요함을 느끼는 자들을 주님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는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작고 더러움을 더욱더 발견하게 되어서 하느님 혹시 저 가짜 아닙니까?’이런 반응이 나올지언정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거든난 진짜 잘하고 있어신앙적인 면이나 사생활이나 난 참으로 부요하고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반응이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이 아무리 많고우리를 통해 맺혀지는 열매가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는 부요한 사람이라고 자평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우리를 낙심케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적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앞으로 점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추악한 모습이 빛이신 그 분 앞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주님께서 그러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들에게 이런 처방을 주십니다.


(묵시3:18) 18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너는 나에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나에게서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눈을 떠라.


첫째로 불로 단련한 금을 사고흰옷을 사서 입고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하십니다그렇게 하면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지요그럼 미지근하고 가난한 신앙이 아닌 뜨겁든지 차든지 하는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이 무엇인지 한번 보자고요먼저 그 세 가지를 누구로부터 사야하는지를 보겠습니다.


 (묵시3:18) 18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너는 나에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나에게서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눈을 떠라.


누구에게서 사라고요예수님에게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십니다우리는 부자라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실상은 너희가 가난한 자들이니 내게 금을 사서 부요해져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그 금은 그냥 금이 아니라 불로 단련된 금입니다그럼 불로 단련된 금이 무엇인지 한번 보지요.


(말라3:1-3) 1 '보아라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보아라이제 그가 온다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2 그가 오는 날누가 당해 내랴그가 나타나는 날누가 버텨 내랴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주가 홀연히 임할 것인데 그 주님은 금을 단련하는 자의 불과 같이 임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3절에는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만드시기 위해 금은 같이 그들을 단련하신다고 하십니다왜요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하느님께 드리게 만드시기 위해서...주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로 단련을 하십니다그들을 깨끗케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로운 제물을 하느님께 드리게 만들기 위해서...


(즈가13:9) 9 그 하나마저도 불 속에 넣어 찌꺼기를 거르고순은과 순금을 갈라내듯 하리라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하고 내가 그들을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면 그들은 '야훼께서 우리 하느님이시다.' 고 하리라.'

하느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하신다구요시험하신 답니다은같이 단련하고 금같이 시험하신 답니다.

(베전1:6-7) 6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련은 왜 주어진다는 것입니까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해서 단련하신다는 것입니다.

 

(호세2:8) 8 내가 그 앞을 가시로 막고담을 둘러쳐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음하고 부끄러운 곳으로 가는 길을 가시로 막고 담을 쌓아 못 가게 막아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입니다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고난과 환난으로 보여 질 수가 있는 것이죠그것이 바로 불로 단련한 금입니다.

그런데 그 불로 단련 한 금은 주님으로부터 사야하는 것입니다그럼 그 시험과 고난은 바로 주님이 겪으신 주님의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배반당하고모함을 받고나를 죽여서 남을 살리고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오해를 받고원수를 사랑하고’ 하는 주님의 고난이 바로 불로 단련 한 금입니다

그 불로 단련 한 금이 없는 자들이 가난한 신앙을 가진 자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불로 금을 제련할 때 2000도가 넘는 불로 제련을 합니다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지요우리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져 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그 불로 단련되어지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의 나쁜 성품우리가 가진 악한 습관들버릇들 모두 불로 태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얼마나 변하기 어려운 존재들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의 변모 산 사건을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마태17:2) 2 그 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


(마르9:2-3)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다그 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변화 산상에서 주님의 옷이 심히 희어졌습니다변화 산 사건은 주님께서 낙심해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심으로 그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사건입니다.


(마태16:28) 28 나는 분명히 말한다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


바로 이 말씀을 하시고 변화 산 사건이 그 뒤에 붙은 것입니다그러니까 변화 산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그 영광스러운 부활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것이지요그러니까 벌거벗었다는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교리가 부실하다는 것이지요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그 십자가의 삶이 영광스러운 부활로 가는 길임을 깨달아 참된 부요의 삶을 살라는 충고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십니다. 안약으로 유명했던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갔을 것입니다그리스도에게서 사야 하는 안약은 뭘까요? 예수께서 안약이 되셔서 소경을 고쳐주시는 사건이 복음서에 여러 번 나오지요그 중에서 요한복음 9장의 사건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요한9:1-7)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자기 죄입니까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빛이신 주님께서 오셔서 흑암에 갇혀있는 죄인들을 부르셔서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안약이 되셔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을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표현 합니다.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 뭡니까창조입니다예수께서 안약이 되셔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새 창조의 사역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미지근한 신앙이요 눈 먼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이렇게 호되게 꾸중을 하시면서도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묵시3:19)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하고 징계도 한다그러므로 너는 열심히 노력하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그렇게 야단치고 책망을 하신 라오디게아 교회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요사랑하신 답니다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하십니다사랑의 반대말이 뭡니까무관심입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왜 책망하고 징계합니까다 사랑해서 그러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책망과 징계가 있는 삶은 하느님께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책망과 징계는 하느님의 열심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19절 후반부에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는 구절은 하느님께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끌고 가실 것이므로 이제 그만 항복하고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쫓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느님의 책망과 징계가 오거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십시오라오디게아 교회는 비록 많은 책망을 들었지만 이렇게 그 가운데 샘솟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 하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묵시3:20) 20 들어라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을 전도할 때 많이 쓰지요?‘“문을 여세요그러면 주님이 들어가십니다주님을 영접 하세요그럽니다정말 우리가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십니까구원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까구원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무슨 문을 두드립니까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주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여러분이 문을 열어서 구원을 받으셨나요아니죠그럼 이 구절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루가12:35-40)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36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 37 주인이 돌아 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39 생각해 보아라도둑이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알고 있었다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40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많은 책망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그들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지금 루가복음 12장 35절 이하도 바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그럼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문은 누구네 집 문입니까우리 집 문이 아니라 주님 집의 문입니다. 36절 보시면 너희는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주인이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그리고 주권적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묵시3:20) 20 들어라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그 구절은 에안이라는 헬라어로 시작되는데 영어의 ‘If 절입니다이 단어에 듣고열면이 다 걸리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은 두 동작이 아니라 하나입니다듣는 사람은 열게 되어있다는 뜻입니다내가 문을 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열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당연히 문을 열게 된다는 것이지요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문을 열어 주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맞아들이고 우리는 그의 종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여전히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문을 열지 않은 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정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문은 주님께 활짝 열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자는 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자들과 주님께서 함께 식사를 나누시겠다고 하십니다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 입니다그들은 아무나 하고 한 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대우해주며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으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함께 먹는다는 것이 그러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문을 연 자들은 우리 주님과 그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의 삶에 주님께 산불로 단련한 금이 있으십니까주님으로부터 산 흰옷을 입고 계십니까주님으로부터 산 안약으로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 있습니까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그런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을 기쁘게 따라 갑니다그 길이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고 세상 적인 부요의 길도 아니고 삐까 번쩍한 황금 길이 아닐 지라도 주님이 가자하면 가는 사람들이 진짜 부요한 자들인 것입니다그렇게 이기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혀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묵시3:21) 21 승리하는 자는 마치 내가 승리한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옥좌에 앉은 것같이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한 책망만 받은 교회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느님의 진정한 위로와 복이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 주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가능하고 연약하여 책망만 받아 마땅한 자들이지만 그러한 우리를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감싸시고 책망하시며 징계하시며 결국은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만들어 내시고야 마신다는 하느님의 열심을 읽을 수 있는 편지인 것입니다

힘내십시오우리의 신앙의 성패가 우리의 열심과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실패 할 수밖에 없지만 하느님의 열심이 우리를 끌고 가시기에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실력과 여러분의 소유로 여러분의 안전의 근거를 삼지 마시고 하느님의 열심으로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의 근거를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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