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세벨의 가르침 (묵시2:18-29)

2021. 4. 16. 오전 10:21:32

글자

 

 

공동번역성서

 

(21) 이세벨의 가르침 (묵시2:18-29)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타락한 인간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진짜 목적은 자기의 세상 적인 유익을 위해, 자기의 배를 위해 엉터리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이라는 두 영역 속에서 살아갑니다. 제한된 이성의 인간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과 공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합니다. 물질과 공간 속에서 감지되지 않는 하느님을 굳이 물질과 공간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 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나는 정말 바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혹시 나는 이기적인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당 안에서 아피스의 암소하돌의 황소를 숭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지하게 여러분의 신앙을 돌아보십시오.

(묵시2:18-29)

18 티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지신 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 19 '나는 네가 한 일들을 잘 알고 있고 네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네가 처음보다 나중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20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 여자는 예언자로 자처하며 내 종들을 잘못 가르쳐서 미혹하게 했고 음란한 짓을 하게 했으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다. 21 나는 그 여자에게 뉘우칠 시간을 주었지만 그 여자는 자기의 음행을 뉘우치려고 하지 않는다. 22 이제 나는 그 여자를 고통의 침상에 던지겠다. 그리고 그 여자와 간음하는 자들도 뉘우치지 않고 그와 같은 음란한 행위를 계속한다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버리겠다. 23 그리고 그 여자의 자녀들을 죽여 버리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각각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

24 그러나 티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비밀을 배우지 않은 나머지 사람 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으니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간직하고 있어라. 26 승리하는 자, 곧 나의 일을 끝까지 수행하는 자에게는, 여러 민족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지팡이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로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내가 샛별을 주겠다. 귀 있는 29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난 시간에 티아디라 교회를 좀 먹고 있던 이세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책망을 받았던 에페소 교회와는 달리 네 나중 행위가 더 많다라고 칭찬을 받았던 티아디라 교회에 그렇게 전혀 다른 이교 적 신앙 행위를 하고 있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그 이유가 꼭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한 쪽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근거로 한 행위이고, 다른 쪽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자기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종교 행위를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타락한 인간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진짜 목적은 자기의 세상 적인 유익을 위해, 자기의 배를 위해 엉터리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죠.

(필립3:18-19) 18 내가 벌써 여러 번 여러분에게 일러 준 것을 지금 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

 

(로마16:17-18) 17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배운 교훈과는 달리 남들을 분열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뱃속을 채우고 있으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언사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당 안에서 자기 배를 위해 하느님을 우상화 시켜놓고 섬기는 자들을 우리는 이세벨의 가르침에 빠진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 배만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까? 심지어 성당에서도 자기의 필요를 따라 자기가 만들어 놓은 신을 하느님이라 이름을 붙여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합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은 인간을 절대 홀로 살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께 절대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을 쫓아내 버렸고 인간은 그 때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문명과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 스스로의 행복을 쫒고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타락한 카인의 후예들이 인류 문명의 조상으로 묘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4:16-22) 16 카인은 하느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 동쪽 놋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17 카인이 아내와 한 자리에 들었더니, 아내가 임신하여 애녹을 낳았다. 카인은 제가 세운 고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애녹이라고 불렀다. 18 애녹에게서 이랏이 태어났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 라멕은 두 아내를 데리고 살았는데,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요,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실라였다. 20 아다가 낳은 야발은 장막에서 살며 양을 치는 목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 유발은 거문고를 뜯고 퉁소를 부는 악사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실라가 낳은 두발카인은 구리와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가 되었다. 두발카인에게는 나아미라는 누이가 있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이 이렇게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려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때때로 자기들 힘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현상이나 사건들을 볼 때 즉, 지진이나 폭풍이나 홍수나 일식이나 월식이나 죽음 같은, 자기 힘으로 control(통재, 조절)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볼 때, 그들이 하느님과 완전히 단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을 가진 어떤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 마다 인간들은 하느님이 아닌 자기들에게 유익을 주고 자기들을 보호 해 줄 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만을 위할 줄밖에 모르는 인본주의 아래서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들은 아주 인간적입니다. 그러한 한 예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 신화를 읽거나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제우스, 아폴로, 헤라, 포세이돈, 헤라클레스 같은 신들이 나오지요? 그런데 그 신들은 우리 인간들처럼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울고 웃고 슬퍼하고 시기하고 사랑에 빠지고 실연을 당하고 그럽니다.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것은 아주 강한 힘이 있다는 것과 올림푸스 산에서 ‘nectar()’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술을 마셨다는 것 정도만 다릅니다. 그래서 그 신들은 인간에게 전혀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호메로스라는 시인은 너희들은 신을 존경하고 복종하되 본 받지는 말라고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신들은 인간의 필요를 채워줄 엄청난 힘만을 소유한 질투도하고 시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하는 괴물들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무당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달래기 위해 눈물겨운 치성을 드립니다.

수많은 그리스도교의 문패를 단 이단들이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과 전도를 합니까?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교회의 성당 안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엄청난 힘만을 소유한 정신 연령 20세의 하느님을 만들어 놓고 얼마나 그 신을 조롱합니까? 그 신은 조르고 조르면 언젠가 고집을 꺾고 자기의 말을 들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평소에 그 신을 잘 달래놓지 않으면 그 신은 언제든지 자기의 삶에 내려와서 깽판을 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일 聖修도 잘하고 헌금도 열심히 해 주고 때 맞춰 선교도 열심히 가주는 그런 엉터리 신앙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히려 그 하느님 머리 위에 올라서서 자기의 계획과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당신은 당신이 가진 힘으로 나를 열심히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는 완성 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신앙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구약에 보면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스라엘도 계속해서 자기들의 유익을 위한 신을 만들어 냅니다. 그 중 우리가 잘 아는 금송아지 사건을 한번 보겠습니다.

 

(출애32:1-4) 1 백성은 모세가 오래도록 산에서 내려 오지 않자, 아론에게 몰려와 청하였다.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 주시오. 우리를 에짚 트에서 데려 온 그 어른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너희 아내와 아들 딸의 귀에 걸린 금고리를 나에게 가져오라.' 하고 대답하자 3 백성이 모두 저희 귀에 걸린 금고리를 떼어 아론에게 가져왔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수송아지 신상을 부어 만들자 모두들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에짚트에서 데려 내 온 우리의 신이다.'

 

여러분이 잘 아는 구절이지요?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신을 만들어 내는 존재인지를 너무나 확연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이스라엘에게 고했습니다. 십계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율례를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그랬더니 백성이 이구동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출애24:3-7)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야훼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자세히 일러 주자, 온 백성은 입을 모아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야훼의 말씀을 다 기록한 다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밑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표시하는 돌기둥 열 두 개를 세워 놓았다. 5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야훼께 번제를 올리게 하고 수송아지들을 잡아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받아 항아리에 담아 놓고, 그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리고 나서 계약서를 집어 들고 백성에게 읽어 들려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 하고 다짐하였다.

 

보세요, 이렇게 맹세하고 딱40일 만에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금송아지를 가리켜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낸 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섬기던 풍요의 신 아피스의 암소하돌의 황소의 형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기들의 풍요를 위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간에 시나이산 위에서는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러한 계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출애20:3-5)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하느님께서 계명을 주시는 그 시간에도 자기를 위한 신을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다른 어떤 죄보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러한 우상을 만들어 내는 자들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하느님은 물질과 공간 속에 갇혀 계신 분 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이라는 두 영역 속에서 살아갑니다. 제한된 이성의 인간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과 공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합니다.

시간은 단지, 그것이 흘러가면 물질이 늙어지고, 훼손되고, 죽음으로 향한다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인간에게 두려운 영역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공간과 물질 속에 숨는 것입니다. 마치 이 공간과 물질이 전부인양 시간을 외면하는 것이지요. 물질과 공간은 시간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사는 연습과 훈련을 하기 위해 공간과 물질 속을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공간과 물질 속에서 행복을 찾고 심지어 공간과 물질로 하느님의 형상까지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매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 존재 하시기에 물질로 하느님의 형상을 공간 속에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질과 공간 속에서 감지되지 않는 하느님을 굳이 물질과 공간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 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로마1:18-23) 18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인간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19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21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22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23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자기들의 배를 위한 해결사로 하느님을 만들어 버리는 것에 대해 진노하신다고 하십니다. 오늘날도 성당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하느님을 아피스의 암소하돌의 황소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분명 하느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필립4:19) 19 한량없이 풍요하신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도우시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주시는 은혜의 방편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하느님이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도우신 것은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적은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출애19:5-6) 5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6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줄 말이다.'

 

하느님은 온 세계에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통해 알리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를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알려서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게 만드시려는 목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그들을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은혜의 방편을 목적으로 삼아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그러한 것을 채워 주는 잡신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게 야훼 든, 금송아지 든 자기들의 필요만 채워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성당에서 벌어집니다. 하느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시키시는 것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그 길에 하느님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자기들의 필요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어찌 바른 순례자이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데나 발길 닿는 데로 가는 순례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은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짧은 여정일 뿐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영원 속에서 끝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바라보며 열심히 하느님의 뜻을 쫒아 이 대 장정의 길을 성실하게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순례의 길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다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늘 본부에서 공급되는 지급품이 조금 불편하고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나는 나이키를 원했는데 본부에서는 그 것의 십분의 일 가격인 나이카를 주었다고 해도 우리는 허허 웃으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걷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그까짓 신발짝이 아니니까요.

(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땅의 순례 길에서 필요한 것들만을 졸라대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들을 이세벨의 가르침에 빠진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진짜 순례자인지 아니면 이세벨의 가르침에 빠진 가짜 순례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첫 번째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필요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 하는가 확인해 봐야 합니다.

 

(하바3:17-18) 17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18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17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비록 내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도 하느님만으로 기뻐 할 수 있는 자가 진짜 순례자입니다.

(2)두 번째로 여러분이 확인해야 할 것은 내가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느님을 안 그 첫날부터 매일 매일 그 하느님을 알고 싶어야 합니다. 그분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하느님을 추구하는 소원과 갈망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호세6:1,3,6) 1 '어서 야훼께로 돌아 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3 그러니 그리운 야훼님 찾아 나서자. 그의 정의가 환히 빛나 오리라. 어김없이 동터 오는 새벽처럼 그는 오시고 단비가 내리듯 봄비가 촉촉이 뿌리듯 그렇게 오시리라.' 6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재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

 

(베후3:17-18)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은 이것을 미리 알고 무법한 자들의 속임수에 빠져 들어 가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18 여러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고 또 그분을 앎으로써 계속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왜 우리는 하느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모르면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언제든지 우리의 욕심을 투사해서 스스로 신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느님을 알아 가는 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정확히 알아야 엉뚱한 만들어 놓고 치성 드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전래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가 장에 가시면서 요즘 늑대가 마을에 출몰해서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하니 엄마 이외 에는 절대 문을 열어 줘서는 안 된다고 신신 당부를 하고 가십니다. 어머니가 장에 가시자 어김없이 늑대가 찾아왔습니다. 늑대는 밖 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누구세요?’ 늑대가 대답합니다. ‘나다, 엄마다

아이들은 그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엄마의 목소리를 연습해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문 밑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역시 늑대의 발과 엄마의 손의 차이를 아는 아이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늑대가 흰 밀가루를 묻혀서 엄마의 손처럼 꾸몄습니다.

늑대는 참으로 집요합니다. 아이들을 잡아먹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덤빕니다. 그 때 아이들이 엄마와 늑대의 구별을 잘 못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금방 문을 열어 주었겠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에 대해 정말 잘 알고 계십니까? 마귀가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정확히 구별해서 문을 안 열어줄 그런 분별력이 있으십니까?

오늘날도 이세벨이 발람이 니골라파가 끊임없이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거짓 가르침에 절대 문을 열면 안 됩니다. 더욱더 긴장하시고 더욱더 진지해 지세요. 혹 이 다음에 저 천국에서 지옥을 내려다보며 성도님 왜 거기 계세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왜 거기서 그렇게 타고 계세요?’ 이런 슬픈 해후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가르침인 그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세벨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여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나중에 고통의 침대, 환난의 침대, 심판의 침대에 던져지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의 신앙을 재확인하세요. 하느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정말 바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혹시 나는 이기적인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당 안에서 아피스의 암소와 하돌의 황소를 숭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지하게 여러분의 신앙을 돌아보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