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22) 티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 (묵시2:24-29)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전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없어 보일 때 ‘이제 기독교는 세상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 해서 지리멸렬해 버렸구나.’ 할 때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들은 여기저기에서 구원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남 은 자’ 교회라는 것이지요. 권세라는 말 ‘엑수시아’라는 말은 ‘엑스’‘ 무엇 무엇으로부터’라는 말과 ‘우시아’‘본질’이라는 말 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 안에 있는, 인격과 삶, 내 본질로부터 나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인데 그 힘은 상대방 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상대방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잘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권세’라고 합니다. )
(묵시2:24-29)
24 그러나 티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비밀을 배우지 않은 나머지 사람 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으니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간직하고 있어라. 26 승리하는 자, 곧 나의 일을 끝까지 수행하는 자에게는, 여러 민족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지팡이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로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내가 샛별을 주겠다. 귀 있는 29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난 시간까지 티아디라 교회에 대한 책망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엉터리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티아디라 교 회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칭찬과 격려를 듬뿍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두아디라에 남아있는 자’‘남 은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만이 진짜 인 것입니다. 그들만이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나은 자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 은 자’라고 하는 단어를 보시면 어떤 뉘앙스가 느껴집니까?
‘많은 무리 중의 소수’라는 느낌이 드시지요? 성경은 구약서부터 계속해서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은 자’라고 표현을 합니 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고 그 중의 남은 자 몇이 바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 회 안에도 남은 자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가 갈라져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보셔야 합니다.
굳이 성경이 그 사람들을 남아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두아디라 교회의 대다수가 가짜였다는 말입니다. 24절부터는 주님께서 바로 그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타락을 하고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전부 하나님과 등을 돌리고 다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멸망의 길 을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 어떤 자들을 계속해서 남겨 가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셋을 남기시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유기 시켜 버리시고 노아를 남기시고 나머지는 다 쓸어 버리십니다. 셈을 남기시고, 아브라함을 남기시고 이삭을 남기시고 야곱을 남기십니다. 이렇게 아주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겨 가십니다.
그들 전체를 가리켜‘영적 이스라엘’‘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 없이 창세 이후로 우주의 종말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건져내어지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며 할례를 행하는 자기들만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행위들이 자기들을 의롭게 만들어 줄 것 이라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를 비롯한 그의 서신에서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이스라엘처럼 행 위로 의인이 되려 하는 자들은 오히려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을 박살을 내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을 설명하는 모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들은 유대인들이 ‘그러면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 버리시는 것이 냐?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하고 반응을 할 것에 이렇게 자문자답해 줍니다.
(로마11:1-5) 1 나는 또 묻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한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고발하면서 한 말을 여러분은 성서에서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3 그가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을 모조리 헐어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 하나뿐인데도 제 목숨마저 노리고 있습니다.' 고 하자 4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나에게는 아직도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다' 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5 이와 같이 지금도 은총으로 뽑힌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구절은 열왕기상 19:14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지요?
(열왕상19:14-18)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읍니다. 이 백성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읍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읍니다.' 15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다마스커스 광야로 해서 돌아 가거라. 다마스커스성에 들어 가거든 하자엘을 기름부어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16 님시의 아들 예후를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기름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7 하자엘의 칼을 피하여 살아난 자는 예후에게 죽을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한 자는 엘리사에게 죽으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맞추지도 않았던 칠천 명을 남겨 두리라.'
하느님의 백성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 남겨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 앞에 유대인, 헬라인 그런 구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택하신 자들만 열심히 건져내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에 왜 이방 사람들이 계속해서 구원을 받는 모습을 기록해 놓으셨는지 아세요? 이방사람 욥이, 모압 여자 룻이, 가나안 여자 라합이, 아람 장군 나아만이 하느님께 구원을 받는 모습을 왜 기록해 놓으셨겠습니까? 그리고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 대부분이 유기 되어 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십니까? 하느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만 태어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전혀 하느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없어 보일 때 ‘이제 그리스도교는 세상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해서 지리멸렬해 버렸구나.’ 할 때도 하느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들은 여기저기에서 구원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 교회라는 것이지요.
바울로는 로마서 11장 서두에서 이스라엘은 바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하느님의 언약 또한 그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아직도 유대인의 천년왕국을 기다립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덤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이제 곧 유대인들만을 위한 천년 왕국이 온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지금은 유대인들이 전혀 구원을 못 받습니까? 지금은 오로지 유대인들을 제외한 덤으로 구원받는 교회만을 위한 교회 시대입니까?
사도 바울로가 로마서 11장에서 ‘아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씨다. 베냐민 지파다. 내가 구원받았다.’라고 합니다. 바울로는 유대인이지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잘 못된 믿음으로 다 버려지는 것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회개 했습니다. 다 누굽니까? 유대인입니다.
(사도2:38-41)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그들을 설득시키고 이 사악한 세대가 받을 벌을 면하도록 하라고 권하였다. 41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 날에 새로 신도가된 사람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다. 4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사도21:20) 20 그들은 그 보고를 듣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바울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시겠지만 유다인들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들은 모두 율법을 지키는 데 골몰한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바울로가 갔을 때 야고보와 원로들이 바울로에게 한 말입니다. 그 때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수 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대인들 중에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나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덤으로 구원을 받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나중에 천년왕국에 들어갈 유대인입니까?
이스라엘, 남은 자는 ‘교회’입니다. 이 남은 자 사상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Key입니다. 하느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 남은 자 사상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을 ‘스알 야숩’이라고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그 뜻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내내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피력하십니다.
(이사10:20-21)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가문의 생존자는 자기들을 치기나 할 자를 다시는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느님 야훼를 진심으로 의지하리라. 21 남은 자가 돌아 온다. 용사이신 하느님께로, 야곱의 남은 자가 돌아온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9:27-29)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으리라. 28 주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신속히 그리고 엄격히 이 세상에서 다 이루시리라.' 29 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전능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시지 않았던들 우리는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요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하느님은 남은 자만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그 남은 자들의 자격이 뭡니까? 자격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 남기십니다.
(로마11:5-6) 5 이와 같이 지금도 은총으로 뽑힌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6 그 사람들은 자기 공로로 뽑힌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뽑힌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무슨 공로가 있어서 뽑힌 것이라면 그의 은총은 은총이 아닐 것입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9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이 에사오보다 착하고 잘나서 남기신 것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서 남기신 것 아닙니다. 그가 하느님께 택해 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존경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드신 하느님을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무가치하고 무자격한 자들입니다. 남은 자들은 하느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스 1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군의 젊은 장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청 년 장교였습니다. 그는 부대의 재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크게 도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간에 걸쳐 조금 씩 조금 씩 부대 공금을 잃은 게 나중에는 도저히 채워 놓을 수 없는 금액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 대에 감사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젊은 장교는 자기가 그동안 잃은 돈의 액수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천문학 적인 돈이었습 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돈은 다시 채워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청년 장교는 모두가 잠이 들면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 로 결심을 했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자기 막사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하고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그는 종이에 이런 저런 자기의 심경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 가?’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는 가끔 일반 사병의 군복을 입고 사병들의 막사를 방문했다고 합니 다. 그날 밤에 니콜라스 1세는 마침 그 청년 장교의 부대를 방문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유독 불이 켜져 있는 한 막사를 발견했습니다. 니콜라스 1세는 살그머니 그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권총을 들고 잠들어 있는 청년 장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낙서를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니콜라스 1세는 그 젊은 청년 장교가 자살을 하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청년 장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 장교가 써 놓은 그 글 아래에다가 ‘나, 니콜라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인을 하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 청년 장교는 아침이 되서야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종이에 이상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이 빛을 갚을 수 있는가?’라는 글 아래에 ‘나 니콜라스’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군 기밀문서를 다룰 때 보았던 황제의 사인이 거기에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 장교는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 황제가 오셔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셨구나, 그런데 그 황제께서는 나를 벌하시는 대신에 자기가 그 빚을 대신 갚겠다고 하신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황제의 궁정에서 돈 가방을 실은 마차가 그 막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의 감사에 부족액을 정확하게 채워 놓고 갔습니다. 이제 그가 갚아야 할 것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죄 지은 것밖에 없는데 황제는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재산을 들여 그를 살려 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니콜라스 황제는 러시아 정교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은혜를 그 청년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남은 자들이 티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묵시2:24) 24 그러나 티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비밀을 배우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으니
유일하게 그들만이 그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유일하게 사탄의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전2:10) 10 하느님께서는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계시된 순전한 진리가 아닌 엉터리 가르침들 즉, 사탄의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알지 못한, 우크 에그노산’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빠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정말 자기가 바르게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그 분들은 남은 자들은 아닙니다. 남은 자들은 절대 ‘우크 에그노산’ 엉터리 가르침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내가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짐이라는 것이 뭡니까?
(마태23:3-5)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사도15:10)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의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하지 못했던 멍에를 그 신도들의 목에 메워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간섭하려 드는 것입니까?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행위를 거기에 보태려하는 것은 저주받을 짓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는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 아무 것도 우리 가 보탤 게 없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그 감사가 여러분의 행실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이제 짐과 의무와 부담이 아닌 기쁨과 감사의 거룩한 행위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것을 짐으로 여기고 있는 분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세요.
(묵시2:25)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간직하고 있어라.
너희에게 있는 것이 그들이 받은 복음,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생긴, 그들이 칭찬 받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굳게 잡으라는 것은 가만히 서서 자기 방어나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된 남은 자들 아, 너희에게 이미 주어진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점점 자라가게 하라’는 말입니다. 자꾸 노력해서 발전시켜라가 아니라, 이미 완성품으로 주어진 너희의 것을 점점 밝히 확인하고 깨닫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매일 매일 오늘 주님이 오신다는 마음으로 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쓴 요한 서신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요일3:2-3)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
이 것이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한 자,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에게 있는 것을 굳게 지키는 자를 26절에서 이기는 자,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 라고 표현을 합니다.
(묵시2:26) 26 승리하는 자, 곧 나의 일을 끝까지 수행하는 자에게는, 여러 민족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지팡이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렇게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받은 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디서 본 구절이지요?
(시편2:7-9) 7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8 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9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시편입니다. 그러니까 남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분과 연합되어 구원받은 자들이니까요. 그리고 그 분과 공동 상속자가 된 자들이니까요.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다고 하는데 그 권세가 어떤 권세일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아니, 여러분이 남은 자들이라면 지금 그 권세를 누리고 있어야 하고 발휘해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이 그 권세를 발휘하고 있나요?
우리가 ‘권세’하면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우리에게 주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그런 권세가 아닙니다. 권세라는 말 ‘엑수시아’라는 말은 ‘엑스’‘ 무엇 무엇으로부터’라는 말과 ‘우시아’‘본질’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 말은 내 안에 있는, 인격과 삶, 내 본질로부터 나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인데 그 힘은 상대방을 변화시키 고 그 변화된 상대방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잘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권세’라고 합니다. 이런 권세는 하느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권세입니다.
권세를 부리고 싶은 사람들이 이 권세가 없으니까 그 권세를 흉내를 냅니다. 총과 칼과 무력으로 그 권세를 흉내 냅니다. 공산주의, 군사독재, 조폭,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권세를 흉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외모나 힘은 사람을 변화시켜 진심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만들 수 없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역사를 통해 세상 적인 권세를 가진 자들을 수없이 세우시고 저물게 하시면서 진짜 권세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진짜 권세가 어떤 권세 인지 빌립보서를 가서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필립2:5-10)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그 예수님의 권세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권세는 하느님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세인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켜 나에게 굴복시키는 권세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생기는 권세인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권세가 없는 줄 아세요? 왜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항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 앞에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권세가 발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남은 자들에게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묵시2:28)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로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내가 샛별을 주겠다.
그 새벽 별이 뭡니까? 발람의 예언에 그 힌트가 나옵니다.
(민수24:16-17)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말이다. 지존하신 이의 생각을 깨치고 하는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환상을 뵙고 엎어지며 눈이 열려 하는 말이다. 17 이 눈에 한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나 당장 있을 일은 아니다. 그 모습이 환히 보이는구나. 그러나 눈앞에 다가 온 일은 아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게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 사람들의 관자놀이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는데 그 메시아를 별이라고 묘사를 합니다.
(묵시22:16) 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모든 교회에 이 모든 것을 증언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에서 돋은 그의 자손이며 빛나는 샛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남은 자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졌습니다. 여 러분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셨고 여러분은 그 분과 함께 이 광야의 삶을 통과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 광야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더위와 추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만나와 생수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되셔서 여러분을 도우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께 와 계신 것입니다.
외롭다고 생각될 때, 너무 힘이 든다고 생각 될 때, 절망과 좌절의 구렁에서 이제 빠져 나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 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분을 의지하세요.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순종과 섬김과 사랑과 인내와 겸손의 권세로 세상을 굴복시켜 나가십시오.
세상이 여러분에게 굴복하지 않거든 더욱더 하느님께 매달리세요. 그리고 그 분께 여러분을 항복시키세요. 그 길만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굳게 또 굳게 잡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