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차 남가주 성령안의 생활 세미나
제 1 가르침 : 소개 세미나
강사-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고, 짧은 시간이지만 주님께서 저를 도구로 삼아 여러분께 꼭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오신 이유는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그 이유와 동기는 다양하지만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저 자신도 생각지도 않은 성령지도 신부가 되어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는 은혜로운 자리에 불러주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제가 성이 ‘반’씨 입니다. 그래서 반밖에 못 합니다. 나머지 반은 여러분이 알아서 하셔야합니다. 제가 보조개도 반쪽밖에 안 들어갑니다. ‘한’씨는 하나로 들어갈 텐데 말입니다. 반에다 반을 합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도 여전히 반입니다. 여러분을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이번 시간은 전체적인 소개 시간입니다. 강의 전 제가 준비한 교재를 받으셨을 텐데 교재에 충실하면서 제 삶의 이야기를 덧붙일 것입니다.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누어 드린 교재는 틈틈이 읽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왜냐하면 이 교재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아주 충실하게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먼저 1쪽에 보면 성령 송가가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의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이 깊은 손님. 생기 돋아 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 위로를,
지복에 비치시어
우리 맘 깊은 곳에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우리의 삶 그 모든 것 이로운 것 없으리.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주고
참마음 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가 여러분에게 처음 인사할 때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신부가 된 지 만 17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된 지 2년이 조금 넘어서부터 “사랑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미사 전에, 강론 전에 항상 “사랑합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있는데 가장 큰 계명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 즉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지닌 숭고한 의미를 지닌 아가페的 사랑을 말합니다. 서로가 사랑을 하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함을 일깨우고자 제가 항상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아주 어색해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많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참사랑이 무언인지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피정기간 동안의 인사는 “사랑합니다.”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빌미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고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기쁨과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번 피정기간 동안은 서로서로 인사할 때 그 의미를 생각하며 “사랑합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박수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랑의 박수입니다. 짝짝! 짝짝짝! 그다음에 “사랑합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옆 사람에게 하는지 보겠습니다. 자, 사랑박수 시작~. 우리 천주교 신자는 보통 형제님, 자매님 이렇게 서로를 부릅니다. 다 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한 가족이라고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늘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남입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서 서로를 형제님, 자매님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남남으로 살아온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형제, 자매라는 가족관계를 새롭게 형성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어머니에게 제자들을 소개하시며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9)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다른 성경구절에도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50) 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행할 때 비로소 아버지라고,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아버지, 성모 마리아님 이렇게 입으로만 부르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형제자매입니다. 형제자매로서의 우애, 따뜻한 사랑, 이런 관계를 이번 모임을 시작으로 더욱 가깝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밖에 나가서도 그 사랑을 전하지, 여기서도 어색하고 서먹서먹한데 어떻게 그 사랑을 밖에서 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사랑합니다.”하고 인사할 때 온 마음을 담아 주님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보통 “찬미 예수님.”하고 인사하는 데 ‘찬미 예수님’ 안에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바로 그분에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3,27)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이며 아낌없이 당신을 우리에게 몸으로 내어주셨는데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그 몸을 모시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성체를 모신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주님의 몸입니다. 거기에다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쁘게 서로 서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상본 하나씩 받으셨습니까? 이 성화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홀만 헌트 (William Holman Hunt, 1827- 1910)가 그린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 이라는 그림입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문에 문고리가 없습니다. 홀만 헌트의 또 다른 그림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리고 계신 그림도 있고, 예수님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드러나는 그러한 모습의 그림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요한 묵시록 3장 20절의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주제로 그린 것입니다. 밖에서 주님이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시는데 문고리가 없으므로 안에 있는 우리들이 그 문을 열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안이 있는 사람이 자기 일에 바빠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문을 열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너무 시끄러워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항상 문을 두들기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그 문을 활짝 열어 주기를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님이 나에게 문을 두드리고 계시므로 내가 그 문은 열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릴 때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을 반드시 주십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오신 동기는 아주 다양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 여러분이 바라는 것, 그것을 여러분이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받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주님께서 원하는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주기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내 보이고, 그 다음에 주시는 것은 그분의 뜻대로 주시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미나에 임하면서 특별히 마음의 문을 잘 여시기 바랍니다. ‘성령 세미나’, ‘성령 새 생활 세미나’ 하면 부담 가지는 분들 많이 계십니다. 그런 곳에 가면 손뼉치고 노래하고 이상한 소리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나 부담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주님은 꼭 우리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오심으로 걱정하거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세미나에 임하는 동안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강의를 하는데 강의 주제에 따라 일곱 번을 나눠서 할 것입니다. 보통 7주간 하는 것을 함축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서에 따라 7번의 강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강의를 듣고 나면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서로 느꼈던 것, 강의 주제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나눔의 시간에 자기의 마음을 열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나눔을 하고 난 후에는 서로에게서 들은 것들은 거기서 끝을 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뒷이야기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도로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내놓았는데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다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의 이야기들은 하느님께서 각자의 입을 통해 열어 주시는 것이기에 “저건 잘못됐다,” “저런 것은 아니다.”라고 우리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내놓고 있는 그대로 들으면 됩니다. 남의 이야기를 절대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강의를 듣고, 함께 나누고, 그다음에는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아채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묵주를 돌린다든지, 시간을 내서 기도문을 모두 외우는 등, 이런 것들을 기도라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란 하느님의 뜻을 내가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헤아렸으면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거기에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듣고 나누고 그다음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 안에 무엇을 주고자 하셨는지 그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강의가 끝나면 그다음에는 성령 안수식이 거행됩니다. 안수를 받기 전에 면담이 있고, 고백성사가 있습니다. 면담은 신부님, 수녀님들이 몇 분 오실 것입니다.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쌓였던 것, 상처라든지 아픈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때 따로 면담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한 준비 과정 안에서 내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내놓고 나머지 부분은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고, 안수를 받은 후 받은 은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파견미사를 끝으로 세미나를 마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딱딱해 보입니까? 부드러워 보입니까? 또 연약해 보입니까? 강하게 보입니까?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이번 강의는 제 이미지에 맞게 부드럽고 편하게 진행할 것입니다. 어렵지 않게 이해하기 쉽도록 진행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교재를 읽겠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체험 이야기도 곁들여서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담을 갖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구절을 읽겠습니다. 교재 14쪽 요한복음 7장 37-39절 말씀을 마음을 담아서 읽겠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시는 주체는 바로 나, 나 자신입니다. 주님께서 커다란 은총의 선물을 우리에게 잔뜩 갖다 놓고 마셔라 하셨으면 마시는 것은 내가 마시는 겁니다. 그분이 떠먹여 줄 때까지 기다리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기로 준비되어 오신 그분을 마음을 열어 받아 모시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몫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실 수 있지만, 반드시 인간의 협력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그 자유의지를 통해 협력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의 어떤 기적 행위들을 보여주실 때도 항상 그분의 능력과 나의 응답으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 기적은 하느님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응답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셔라.”라고 하면 여러분은 마셔야 합니다. “아! 이게 정말 그럴까?”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은총의 효과는 더디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셔라” 그러면 서슴없이 마셔야 합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동사입니까? 명사입니까? ‘믿음’은 명사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동사입니다. 믿는 대로 행해야 함으로 행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셔라.” 하면 바로 마시기 바랍니다.
아까 어떤 분이 “떠밀려서 왔다.” 또는 “혼자 있고 싶어서 왔다.” 하셨는데 그것이 내 의지대로 왔든 그렇지 않든 여기 오게 된 동기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부르심을 통해서 이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불러주셨는지는 3박 4일을 지내시면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나는 자격도 없는데 불러주셨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부르심 자체가 자격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만 하시면 됩니다. “예, 부르셨으니 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라 하시니까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 됩니다.
응답은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정 안에서 여러분이 능력을 체험하려면 응답을 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응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셔라.” 하면 마시기 바랍니다. 아낌없이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영적으로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양식을 제공하는데 그 양식을 맛있게 잡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 말씀에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잘 받아 마실 때 성령을 깊이 모실 수 있고 또 그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고자 나를 불러주셨고 꼭 필요한 말씀을 나에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재를 보면 그림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죄를 지은 인간, 구세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 새 생활의 원천이신 성령, 이런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당신이 손수 빚어 만드시고, 그 빚어 만든 물체에다 숨을, 당신의 영을 직접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생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숨을 불어 넣어주신 그 생명을 잘 성장시켜야 하는데 성장시키지 못하고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입니다. 그렇기에 죄로 기울어지려는 성향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해 주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의 승리의 모습으로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그러고 난 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느끼는 만큼 새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느끼지 못한다면 새 생활에 자꾸 주춤주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이 새 생활 세미나를 통해서 받습니까? 아니, 이미 받았습니까? 그런데 왜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받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그것은 아직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피정을 통해 이미 받은 성령, 우리 안에 역사하신 성령이 좀 더 활성화 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받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꽉 묶어놔서 활동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것을 풀어 드리는 것이 피정입니다. 이렇듯 첫 소개 모임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음의 문을 열어라. 받아 마시라면 마셔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동사이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한 복음 21장을 보면 제자들이 밤새껏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데 아침까지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못 잡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른편에 던져라.”그러면 그대로 던지는 것입니다. 믿으면 그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순명’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을 배반하며 살지만 그 배반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죄가 있든 없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오늘 우리를 여기 불러 주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무늬만 종교인이 늘어나고 있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는다고는 하지만 삶에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교포 신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까?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미국 교포 사회의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체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늘어나고 개신교 신자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리스도를 닮은 환경과 여건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환경과 여건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지만 생활 안에 그것을 적용하며 살아가는 신자는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10대는 철모르고 살고 20대는 28 청춘으로 환상적으로 산답니다. 30대는 삼삼하게 살고, 40대는 사랑하면서 죽기 살기로 살고, 50대는 오기로 산답니다. 자식 다 키운 것 같은데 또 대학 보내고 그러면서 오기로 살고. 60대는 주책으로 산답니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사는 게 주책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아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토마스 형제님께서 “모든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하셨습니다. 그걸 머리로만 이해하면 안 되고 마음을 온전히 맡기고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내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변해야 거기에 좋은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이 거기서 성장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탓을 남에게 돌립니다. 실제로 세상이 혼탁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혼탁한 것입니까?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혼탁하니 세상이 혼탁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니 좋았다.” 하셨습니다. 그 좋은 세상을 허물어 놓은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탓을 남에게 돌릴 필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그 성령을 받은 만큼, 그리스도를 닮은 만큼 그 삶을 살아야 환경이 바뀌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데 누가 환경을 바꿔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와 능력 이런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려고 이 자리에 불러주셨다는 걸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1 가르침, 소개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 서로서로 침묵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방해하지 않는 예의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체 조배를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 조배를 통해 하느님께서 정말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사랑을 주셨는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또 나눔의 시간에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것을 기꺼이 들어내어 여러분을 도구 삼아 하느님께서 역사 하실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꼭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문을 꽉 닫고 있으면 전체 분위기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려고 그러는데 역사하실 밭이 안되어 있다면 역사 하실 수 가 없습니다. 아무 걱정도 근심도 하지 말고 여러분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기도해야 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오셔서 저의 모든 것을 주관해 주시고 또 저를 통해서 당신이 친히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하는 그런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