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
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2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마르코9,1-2)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마르14,32-34)
32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마르14,32-34)
32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Q: 예수님께서는 성경 여러군데에서 특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다니시면서 특혜?를 주시는듯한데 왤까요????
A:
▶베드로(6.29)◀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야고보(7.25)◀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요한(12.27)◀
성 요한(Joannes)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동생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겐네사렛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삯군들과 배를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이들 형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또 흥분을 잘 하였기 때문에(마르 10,35-41), 예수님은 그들을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마르 3,17).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중요한 행적, 예를 들어 예수님이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을 때(마르 5,37; 루가 8,51),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마태 17,1; 마르 9,2; 루가 9,28), 게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기도(마태 26,37; 마르 14,33)와 같은 극히 중요한 시기에 베드로(Petrus)와 함께 예수님 곁에 있었다. 또 성서 여기저기에는 요한이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라는 인상을 주며, 최후의 만찬 때에 스승의 가슴에 기댔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셨다(요한 19,25-27). 뿐만 아니라 부활 아침에는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고(요한 20,1-5), 그분의 부활을 믿었으며,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사도행전에서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며 투옥당하기도 했다. 성 바오로(Paulus)는 야고보와 게파(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 2,9). 후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진리를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Patmos) 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묵시 1,9), 에페수스(Ephesus)에서 여생을 지내다가 그곳에서 수를 다하고 선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성 요한은 너무나 연세가 높아서 군중들에게 설교할 수 없었고, 다만 간단한 말만 하였다고 한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신약성경의 네 번째 복음서와 서간 3개 그리고 묵시록은 성 요한의 저작물이라고 전해져온다. 사도 요한의 문장은 독수리이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서의 서두가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안드레아(11.30)◀
어부 요한의 아들인 시몬 베드로(Simon Petrus, 6월 29일)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Andreas)는 공관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 출신이고(마르 1,21-310, 요한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 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다(요한 1,35-42). 얼마동안 그들은 간헐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주님이 갈릴래아로 되돌아 오셨을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시면서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Scythia)와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아카이아(Achaia)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에 그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것은 안드레아 사도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의 꿈에서 지시된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는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베드로(6.29)◀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야고보(7.25)◀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요한(12.27)◀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야고보(7.25)◀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가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요한(12.27)◀
반드시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그를 죽일 수 있다. 증인 한 사람의 증언으로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신명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