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는가?

2012. 8. 26. 오전 8:03:40

글자

Q: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는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 복음 19,23-30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길이 정말 없을까요????
만일 있다면, 이디에 있을까(성경)요???

A: 
박윤식 ( (2012/08/26) : 없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있다면 거짓말이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그래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 꿈도 꾸지마라. 단, '부자'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자는 그곳에 갈 수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까! 김종업 님 질문에 답이 됩니까? 감사합니다. ^^+ big-llight)


A: 부자 청년(마태오 19장)과 부자 자캐오(루가 19장)의 차이

송두석
(peterfe12)     2012-02-29 오후 5:29:05    자유게시판  185521

부자 청년은 스스로 의로움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나, 반면에 자캐오는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까워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넘겨 줄 수 없었으나, 반면에 자캐오는 주님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고백합니다.

부자 청년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재산이 아까워 주님을 멀리한 채 주님으로부터 떠나갔으나 반면에 자캐오는 주님께서 부르시자 얼른 돌무화과 나무에서 내려와 주님을 집 안으로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부자 청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자캐오에게는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다."

그토록 의로운 체 하던 부자 청년이 못하던, 가난 구제를 어떻게 자캐오는 하게 되었을까요?  그토록 계명을 잘 지켰던 부자 청년이 못들어 간 하느님 나라(구원)을 자캐오는 어떻게 얻었을까요?

주님이 함께하시면, 이웃과의 나눔이 일어나게 되는 실례를 우리는 자캐오와 관련된 복음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복음서에 부자이면서 구원받은 유일한 케이스가 바로 자캐오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악덕 세관장인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시자(자캐오의 심령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자) 자캐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루카복음 19장5-9).
예수님께서  위를 쳐다보시며 그(자케오)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서를 잘못 이해하면,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할 수 없듯이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자캐오의 실례에서 보시듯이 주님께서는 분명히 자캐오의 집에 구원이 내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설령 자케오가 악덕 세관장으로 불의한 재물을 모았다 할지라도 주님 전에 회개하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주고(나눔이 일어남), 횡령한 것의 네 곱절을 갚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었다 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자인 자캐오는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할 수 없듯이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는데,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자캐오와 함께 하시자 자캐오에게 변화가 일어나 재산을 이웃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캐오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주님이 함께 하시어 주님으로부터 감동을 받고 하느님이신 주님의 사랑이 자캐오의 심령을 어루만져주시어 자캐오는 구원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지 못할 인색한
부자라도 하느님의 성령이 내리시면 변화되어 이웃과 재물을 나눔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캐오가 한 일이 아니고(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함께 계실때 일어나는 일이므로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시어 부자라도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캐오의 예화에서 보듯이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의화 성화)으로 일어나는 선행이 그 사람을구원하게 함을 알게 됩니다.
또한 주님으로 인해 구원을 입은 그 사람에게서는 당연히 선행이 따라오게 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구원(구속, 속량)이 먼저 임하고 선행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구원받은 사람에게서는 선행이 나오게 되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함에도 선행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거짓 믿음으로서 그사람을 살리지 못한다고 야고보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야고보 사도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서로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선행이 나오게 되어있으므로 두 분 사도의 말씀이 영적으로 보면 동일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행동이
뒤따르지 않음에도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개신교의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구원, 믿음, 선행의 의미를 깨달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부자가 나눔으로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캐오와 함께하시자 실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고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이웃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탐욕이 오직 주님(성령)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때 이웃을 한 몸으로 보게되어 나눔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주님께서 함께하실 때 은총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재산을 팔아서 하느님 나라에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자캐오에게 기적이 일어나듯이 우리는 자발적으로 선행을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오 19장 26절).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나에게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가난구제를 위하여 헌금을 하게 됩니다.

부자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마치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지 못하듯이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만,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캐오와 함께 하시자 자캐오는 재산의 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내놓겠다 라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자캐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총이 나를 움직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비입니다.
그 신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느님 나라 입성이 허락되는 것이지 나의 노력이나 나의 선행, 나의 의로움으로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비로 말미암아 재산을 다 판 것도 아니고 겨우 절반을 내놓은 자캐오는 주님으로부터 구원(하느님 나라)를 선물받은 것입니다.
내가 하는 그것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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