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22절에서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 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선악을 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질문은 하느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언뜻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선악과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따먹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을 괴롭히시고 복잡하게 만드시는가? 라고 하느님께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에게 말대답을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로마9:25)라고 말씀합니다. 절대로 말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선과 악을 도덕적인 선과 악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도덕적인 선악을 아신다 하면 하나님이 도덕적인 죄를 짓는 분이십니까?
하느님께 악한 요소가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전제는 하느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이 악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인간은 선도 행할 요소가 있고 악을 행할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선을 행할 요소가 있고 악을 행할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선악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 예수님은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고 하셨습니다. 바로 선과 악을 생명과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곧 죽을 권리도 있고 살 권리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22절에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하셨는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중 누가 죽었습니까? 바로 죽음을 경험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삼위 중에 죽음을 경험한 유일한 분이십니다. 정말 그는 죽음을 경험할 권리가 있고 생명의 부활을 경험할 권리가 있는 분이십니다(요한10:18).
이처럼 인간이 삼위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우리도 죽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나 서신서를 잘못 이해하면 바로 우리 죄로 인하여 주님이 죽고, 그 다음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살았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냉정하게 깊이 이해한다면 주님께서 죽으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죽었고, 주께서 사시는 것같이 우리도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선악을 아는 일에 삼위 중 하나같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악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
창세기 3장 22절의 영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영생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삶이죠. 죄 이전에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죄를 지었고 인간은 죄의 세력에 지배당하며 하나님과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죄가 있는 상태에서 영원히 살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지옥 아니겠습니까? 종말론적으로 볼 때도 신자와 불신자는 다 부활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시죠? 그러나 신자는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고 불신자는 지옥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실과를 먹는다면 스스로 지옥을 파는 것이고, 하나님의 에덴동산을 만드신 섭리와도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나 하나님께 또 한번의 저주요 슬픔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막으신 것이지요.
가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 중에 그렇게 탄식조로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짧은 삶도 지겨운데 무슨 영원히 살 것을 바라냐 난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 말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해결되지 않은 세상의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스럽고 허무하기에 그런 죄를 그대로 안고서 영생한다는 것은 그가 생각해도 끔직한 것이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 원인이 죄라는 것을 그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실과를 지키게 하신 것은 지금은 안되지만 언젠가는 이리로 와서 먹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과 소망을 보여주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킬 것이 아니라 파내서 없애버려야죠.
결론적으로 생명나무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시고 지키게 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사랑 때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언젠가 만유를 회복하시고 그 생명나무실과 잔치자리로 님을 초대하실 것입니다. 아멘
![]()
선악을 아는 일이란 하느님외 다른 신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22절 본문에 "우리가운데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라고 되어 있는데 그 우리란 하느님과 또 다른신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한국교회는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과악을 안다는 것을 처음 말한 것은 뱀(사탄의 조종을 받은)입니다.하느님은 단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만 하셨는데 뱀이 그 이유를 말하되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라고 말합니다.
마치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이 하느님처럼되는 것이고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 곧 선과악을 알게되는 것으로 교묘히 말장난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뱀이 여자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선악과를 먹은 남자와 여자가 먹기전과 달라진 것은 자신들의 나체와 성기를 인식하고 부끄러움을 알게된 것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써 모르고 있어야할 것을 알게됨으로 이제 하느님(선)이외의 다른신(악)을 알게되고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을 염려하시어 에덴동산에 인간을 내 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아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십계명중 첫번째 계명이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한국교회는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과악을 안다는 것을 처음 말한 것은 뱀(사탄의 조종을 받은)입니다.하느님은 단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만 하셨는데 뱀이 그 이유를 말하되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라고 말합니다.
마치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이 하느님처럼되는 것이고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 곧 선과악을 알게되는 것으로 교묘히 말장난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뱀이 여자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선악과를 먹은 남자와 여자가 먹기전과 달라진 것은 자신들의 나체와 성기를 인식하고 부끄러움을 알게된 것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써 모르고 있어야할 것을 알게됨으로 이제 하느님(선)이외의 다른신(악)을 알게되고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을 염려하시어 에덴동산에 인간을 내 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아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십계명중 첫번째 계명이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개신교에서 발췌하여 약간 수정한 자료입니다.
누군가는 개신교에서 가져왔다고 시비할라,
다만 배우고 익혀서 알건 알고(취할것과 버릴 것),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살롬.
에덴 동산 [Garden of Eden]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성서상의 지상낙원.
첫번째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해 추방당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창세기〉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동산'이라고도 불리며, 〈에제키엘〉에는 '하느님의 동산'으로 되어 있다. 에덴이라는 용어는 아카드어의 에디누(edinu)에서 유래한 듯한데, 에디누는 수메르어로 '평지'라는 뜻의 에덴(eden)에서 빌려온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타락설화에 따르면, 이스라엘 동쪽의 강들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세상의 4곳으로 흘러간다. 수메르인의 기록에도 이와 비슷한 설화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지상낙원에 관한 이야기가 고대 근동지역 신화의 일부임을 시사한다. 에덴 동산 설화는 인간이 죄없고 행복한 상태에서 죄·불행·죽음을 아는 현재의 인간상황으로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신화적 주제를 신학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
에덴 동산(히브리어: גַּן עֵדֶן Gan ‘Ēden)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야훼가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를 위해 만들어 살게 했다는 이상향의 이름이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의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이 정원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가장 잘 알려진 존재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낙원의 대명사로서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낙원상으로 인식되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네 줄기의 강(피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과 근처의 세 지역(하윌라, 에티오피아, 아시리아)을 언급하면서 정원의 지리적 위치가 나와 있다.
아직도 에덴이 어느 곳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일부 기독교인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체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만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것으로 추측하지만, 또 다른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비유로 만든 가공의 존재라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