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나는 몰랐었다. 빛이 어떤 것인지도 나는 몰랐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다. 그러므로 여는 사람들처럼 보고 싶은 것 마음대로 보며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었다. 그러나 눈만 멀었을 뿐 다른 데는 모두 성했다.
두 다리는 튼튼했고 손발도, 코도, 입도, 귀도 모두 제 구실을 넉넉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튼튼한 발이 있었지만 눈이 없으니 언제나 더듬거렸다.
손도 눈이 없으니 언제나 허공을 휘저어야 했다.
귀에 들이는 온갖 소리도 눈이 없으니 답답함과 짜증만 더 보태 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런데로 나는 살아왔다. 산다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이 세상이 처음부터 암흑이었으므로 빛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조차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나하고는 아예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끝끝내 나의 몸에는 와 닿지를 않는 그 빛에 대하여 내가 안타깝게 그리워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몸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고 어둠만이 나의 유일한 세계였다.
길짐승이 문득 날지 못함에 대하여 아쉬움에 젖는 순간이 있긴 했겠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온 나는 성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뭇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비참덩어리인 양 대했다.
부모들은 나를 측은하게 여기다가 마침내 지겨워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그들의 죄 탓으로 소경이 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제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제 죄 때문이지 어째서 제 부모의 죄 때문이겠느냐는 소리도 있었다. 그것은 참 흥미있는 논쟁거리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내가 그다지 비참하다고 여기지도 않는 나의 삶을 가장 비참한 삶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참에 대하여 그들은 논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들이 나에게 대하여 그럴 권리는 없었다!
왜 남들은 보는 하늘을 나는 보지 못하는가?
왜 남들은 보는 꽃과 나비와 새들을 나는 보지 못하는가?
그것은 그들한테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에게는 헤어아릴 수 없는 아품이요 슬픔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내 몸에 체질화되어 앙금처럼 가라 앉았고, 그래서 마침내 슬프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흡사 아품을 느끼지 못하는 문둥이의 문드러진 손가락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누가 진짜 문둥이였던가?
그들과 한 마을에, 한 시절에 태어나 길거리에서 쓰레기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마비된 아픔과 슬픔을 보면서 태연하게 그에 관한 해답 없는 논쟁이나 하고 있던 그 사람들의 마음은 성한 사람의 마음이었을까?
이웃의 아픔을 보면서 저신은 눈꼽만치도 아프지 않는 그런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회생불능의 문둥이가 아닐 수 없다.
나를 낳아 준 부모를 포함하여 모두가 나를 볼 적마다, 도대체 저 비참덩어리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궁금하게 여기고, 저건 부모의 죗값이다, 아니다 저신의 죗값이다 하며 끝없는 논쟁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한 치도 나아가지 않는 수레바퀴를!
그러던 어느날 그 분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가 나타났을 때 물론 나는 그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 그가 누군지를 알 턱도 없었다. 다만 그와 동행하던 사람들이 그를 랍비라고 부르고 있는 걸로 보아 그가 그들의 스승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 이르러 그들의 스승을 나에 관한 논쟁 속으로 끌여들었다.
“랍비,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
나는 호기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어느새 나에 관한 그들의 논쟁에 빠져 있었던 것도 같다. 실제로 나의 비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뿌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기대였을 뿐이다.
나는 이미 나 자신의 어둠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고 거기서 꼭 탈출해야겠다는 의지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랍비가 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무슨 말로 대답 할 것인지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가 말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인 것은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닙니다.”
아니, 이 랍비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놀랄 사이도 없이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다만 이 사람한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오.”
그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오래 찾아다니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는 나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느낌만으로도 그것은 크고 힘센 손이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윙 소리와 함께 돌아가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나의 이 비참함이 무엇을 위한 것이라니?
무엇 때문에 빚어진 비참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마련된 비참이라니?
그렇다면 나의 인생에도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인가의 결과가 아니라 무엇인가의 목적이란 말인가?
아아, 나도 무엇엔가 쓰일 데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리고 그 무엇이 바로 하느님이라니? 그의 영광이라니?
생각이 이에 미치는 순간 나의 앞 못 보는 눈에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다.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그것은 나의 순수였다.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마음, 그것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의 눈에다가 그가 차가운 것을 발라 주었다.
자기의 침으로 반죽한 진흙이었다. 이어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형제여, 오랫동안 견뎌 왔소. 이제 눈을 뜨시오.
이 길로 실로암 못으로 가서 그 물에 눈을 씻으시오.
형제의 운을 덮고 있던 어둠이 씻겨 나갈 것이오. 어서 가시오!”
나는 허둥지둥 실로암 못으로 달려갔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힌 듯, 나의 몸은 마음보다 더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에 눈을 씻자 과연 내 눈을 덮고 있던 어둠이 벗겨지고 가볍게 떨고 있는 눈꺼풀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나의 세계에 빛이 들어오자 그것은 곧 나에게 허락된 천지 창조가 되었다.
나의 눈이 열린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열린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웅성거리는 소리는 전에도 듣던 소리였지만 전혀 다른 웅성거림이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가축들의 발짓 소리……,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나에게는 새로운 소리였다.
나는 잔잔하게 물결치고 있는 실로암 못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수천수만 개의 햇빛 조각이 반짝러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나는,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로 몰려왔다. 그들 역시 나에게는 새로운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새로워진 세계가 그들한테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여전히 낡은 세계였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의 눈에 띈 것은 소경이었던 한 거지가 눈을 뜨게 된 기적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아 오던 이 세상에서는 기적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쯤 이상하다는 눈으로 구경하고 말면 그뿐인 그런 것이었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온 세상을 밝게 비추어 준 저 밝은 빛이 오히려 그들을 눈멀게 하여 저토록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고 놀라운 하늘의 기적을 끝내 알아보지 못하게 했던 것일까?
사람들은 나를 금방 둘러쌌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관찰 대상이었고 논쟁거리였다.
“이 사람은 전에 길거리에서 구걸해 먹던 그 소경이 아닌가?”
“맞았어. 바로 그 소경이야.”
“아니야. 얼굴은 좀 닮긴 했지만 그 소경은 아니야.”
나는 그들이 나를 두고 마음대로 떠들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전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그러자 그들은 “그것봐. 내가 뭐랬어?”
자기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에 우선 의기양양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소? 자초지종을 말해 보시오.”
그들에게 길게 설명할 자초지종이라는 것도 없었다. 나는 내 눈을 뜨게 해 준 그 사람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랍비라는 사실밖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내 눈과 부딪히는 뜨거운 눈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다만 나를 구경하는 제삼자들의 냉랭한 눈동자였다.
더듬거리며 내가 말했다.
“랍비 한 분이 진흙을 제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그대로 했더니 눈이 뜨였어요. 그뿐입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소?”
“모릅니다. 나는 그의 얼굴도 몰라요. 그러나 목소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긴 장식 옷을 입고 이마에 성구갑(그 조그만 상자 안에다 성경 구절을 적어 넣는다는 사실은 물론 나중에야 알았다)을 매단 사람들이 다가왔다. 누군가가 그들을 이리로 데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오?”
“맞습니다. 조금 전에만 해도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소경 거지입니다. 자기 입으로 인정했지요.”
그들이 다시 나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가? 어떻게? 어떤 경위로? 그것이 그들에게는 문제였다.
당사자인 나는 눈을 떴다는 사실에 압도당하여 까마득하니 잊고 있던 그 경위가 그들한테는 그토록 중요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 차이점이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다시 내가 눈을 뜨게 된 짧은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그분을 모르다니! 그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절할 수가 없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송구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눈길과 부딪혀 불꽃으로 타오르는 그런 눈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경꾼들 사이에 그분은 섞여 있지를 않았던 것이다.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그들이 바리사이들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돌아서서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데, 들어 보니 그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것 같았다.
“보시오. 이번에도 역시 그 사람의 짓일 게요. 오늘이 안식일인데도 이런 일을 했으니 그는 틀림없는 죄인이오. 그에게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죄인이 어찌 이토록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사람들 말대로 그는 예언자일는지도 모르오.”
“그렇지 않아요. 그는 명백하게 모세 법을 어긴 죄인이오.”
“좀 더 자세히 사실을 알아봅시다.”
“그렇게 합시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는 회당이다. 하느님의 법을 일고 가르치는 곳이야. 그러니 우리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라.
네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은 하느님의 법을 어긴 죄인이다. 자네는 그가 죄인임을 증명할 증인이고…….”
그분이 죄인이라니? 나의 눈을 뜨게 해 준 그 랍비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짐작건데 오늘이 안식일이고,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안식일에 금지된 치유 행위를 했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식일은 이레 뒤에 또다시 오겠지만 나의 몸에 찾아온 이 광명은 오늘 오지 않았다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주위에 둘러서 있는 잘 차려입은 인간들에게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너희는 나를 구경거리로 삼았고, 나의 비참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고, 나의 눈뜸을 또한 구경했고, 마침내 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가? 너희는 나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지도 않았고 나의 하늘 같은 기쁨에도 오히려 돌처럼 차갑기만 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아, 너희가 진정 사람이냐? 이것이 눈을 뜬 인간들의 모습이라면 나는 다시 눈을 감으리라.
그때 나는 내 귀를 울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마치 등 뒤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아 돌아다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제여, 그대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오. 아무도 알지 못하던 그대의 아픔과 슬픔으로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할 하느님의 찬란한 비단을 짜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보이는 대로 보시오. 생각나는 대로 말하시오. 시간은 우리를 위하여 더디 가 주지 않는 법이라오.”
나는 그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말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인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자네한테 무슨 일을 했는가?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느냔 말이다.”
“내가 아까 말했잖습니까? 그때는 듣지 않더니 왜 거듭 묻지요?
생각이 달라지기라도 했나요?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은 겁니까?”
물론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발끈 성을 내며 나를 윽박질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 자네는 그자의 제자이겠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우리는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알아요. 그분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내 눈알이 그분을 증거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결코 이런 일을 이루지 못하실 것이오.”
그들은 화를 내며 나를 회당에서 내쫓았다.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감히 우리를 훈계하겠다는 거냐?”
그들의 회당에서 쫓겨나 다시 옛날처럼 길거리의 오가는 구경꾼들 틈에 섞여 이제부터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분이 내 앞에 나타났다.
“형제여, 무엇이 보이는가?” 아아, 그 음성! 바로 그 음성이었다.
나는 곧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이 보입니다.”
“일어나시오, 형제여. 당신 앞에 서 있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오. 사람의 아들을 믿겠소?”
“믿습니다. 믿습니다.”
“어서 일어나시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소. 이제 당신은 사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됐으니 눈을 뜨고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눈으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오. 아버지께서 당신을 기뻐하실 것이오. 샬롬-.”
나는 돌아서서 그를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 누구십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사람의 아들이오. 얼마 안 있어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아들을 보게 될 것이오.
그러나 물론 당신의 눈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함께 찬란한 생명도 보게 되겠지.
당신의 눈은 그걸 볼 수 있을 것이오, 형제여.”